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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143)
경험을 토대로 작성한 답사의 모든 것

 


1. 답사와 답사의 종류

내력 있는 곳을 찾아가서 삶의 흔적을 더듬고 역사를 되새김으로써 그 지역의 자연․역사․문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며, 나아가서 자신을 돌이켜보는 기회를 만드는 일이다.

문화유적지 답사, 역사유적지 답사, 향토유물 답사, 종교유적지 답사 등이 있다. 대표적인 문화유적 답사에는 고궁, 수원 화성, 중원 문화유적지, 박물관 및 전시관 탐방 등이 있으며, 역사유적 답사에는 서대문독립공원, 동학농민운동이나 임진왜란의 사적지,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알 수 있는 강화도 탐방 등이 있다. 향토유물 답사에는 남도 문화와 역사, 진도 사람의 삶과 문화, 섬 문화와 섬 사람들, 도자기 굽는 마을 탐방, 방언이나 옛날 이야기 수집 등을 테마로 한 기행이 있고, 절두산성지, 양화진, 제암리 교회, 발암 시장, 여수애양원 등이 종교유적 답사지의 대표격으로 꼽힌다.(네이버 지식인 참고)

 

2. 우리나라의 현재 답사문화의 문제점

우리나라 사람들은 답사의 개념이 정확하지 않는 것 같다. 답사와 여행의 의미를 혼돈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가장 처음 답사를 하는 것이 바로 초등학교 수학 여행일 것이다. 물론 요즘은 부모님과 함께 유명한 곳을 찾아가기는 하지만 정식으로 공부를 목적으로 하는 답사는 바로 초등학교 수학여행이라고 생각된다.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경주를 수학여행지로 정하고 있다. 물론 경주가 우리나라 최고의 수학여행지 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 목적지에 대해 별도의 공부를 하는 학교는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아이들은 주로‘경주는 옛날 신라의 수도였다.‘라는 얇은 지식을 가지고 목적지에 가게 되는 것이다. 수학여행은 2박 3일 동안의 짧은 여행이지만 초등학생들에게 주는 의미는 그 이상으로 아주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뿐 아니라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여행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면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여행지는 모두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의 답사문화는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길러진다. 그냥 그 곳에 다녀왔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인 것이다.

“나도 천마총 갔었는데……. 좋더라.” 우리는 이런 대화를 하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이런 대부분의 답사는 천마총이 경주에 있다는 것밖에 모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한번 가 보았다면 그곳에 대해서 모두 다는 몰라도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져야 하지만 현재 우리의 답사문화는 그러하지 못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손에 들고 다니며 쓰는 것을 싫어한다. 초등학교 때 잠깐 선생님의 권유로 연필을 준비한다. 하지만 해외 여행을 가서도 그냥 보기만 하지 무엇을 적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 머리는 컴퓨터가 아니다. 한번보고 그 것을 모두 다 기억하기는 힘이 든다. 그리고 우리가 답사하는 곳이 보통 서너 군데가 넘을 것이다. 그 많은 곳을, 그 많은 곳의 유물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제 이런 답사 문화는 우리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보다 효율적이고 알찬 답사를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를 알아보도록 하자.

 

3. 올바른 답사를 위한 제안.

 

1) 답사의 주제 정하기

논설문도 아니고 답사의 주제를 정한다는 것이 의아하다는 생각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답사에도 주제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우리는 오랜 시간 답사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답사를 위해서 주제를 정하는 것이 좋다.

‘천년 신라의 경주’, ‘아름다운 섬 제주’와 같이 주제를 너무 크게 잡는다면 주제를 정하는 의미를 상실 할 수도 있다. 주제는 일정과 맞게 작을수록 더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경주의 신라고분들’,‘제주도의 향토음식’과 같이 좀 더 구체적으로 잡는 다면 분명 답사에서 얻어 오는 것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2) 답사 전 자료조사

답사의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맞는 답사를 하기 위해 답사 전 자료조사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답사 전 자료 조사를 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보다 많은 사실과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답사 전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유적이나 유물을 본다면 이해력이 매우 떨어질 것이다. 예를 들면 천마총을 모르는 상태에서 답사했다면 그냥 신라인들은 무덤을 크게 만들었다는 것밖에는 모를 것이다. 하지만 사전 자료조사를 하면 천마총이 천마도가 나와서 천마총이라는 것과 천마도는 신라의 흔하지 않는 회화작품이라서 더욱 귀중하다는 것, 그리고 무덤형태는 적석목곽분이고 천마총 안에서 금제 허리띠. 금관등 많은 금제 유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간다면 감동은 열 배가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주제에 맞는 장소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답사의 목적은 신라의 고분인데 그냥 자료조사 없이 여행한다면 천마총을 비롯해서 대릉원, 무열왕릉, 김유신 묘, 오릉 등 무수히 많은 고분들을 지나 칠 수도 있다. 이처럼 답사 전 자료조사는 답사를 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다.

 

3) 답사 예산 및 답사 일정

우리가 집을 나서면 돈이 들게 마련이다. 물론 답사를 할 때도 돈이 든다. 우리가 부자가 아니라면 알뜰하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답사가 되어야한다고 생각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치밀한 답사일정과 거기에 맞는 예산을 적절히 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전 자료 조사는 답사의 유물과 유적지뿐만 아니라 예산과 관련한 식비. 숙박비, 교통비와 같은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일정표와 예산표를 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일정․예산표

시각

장소

수입

지출

잔액

09:00

경주역

회비5만원 * 4명 =20만원

0

20만원

09:30

대릉원

 

입장료1500원*4명=6000원

19만4천원

11:00

 

자전거 5천원*4명=2만원

17만4천원

11:30

김유신장군묘

 

입장료500원*4명=2000원

음료수1000원*4명=4000원

16만8천원

12:30

점심식사

 

10000원 *4명=4만원(음료)

12만8천원

13:30

무열왕릉

 

입장료1000원*4명=4천원

12만 4천원

 

위의 예산․일정표는 예로 간단히 짜 보았다. 일정표와 예산은 아주 자세히 짜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예산은 조금 넉넉히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답사 중 예상치 못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정표 역시 약간 넉넉히 하는 것이 보다 좋은 답사가 될 것이다.

 4) 준비물 준비

꼼꼼히 준비물을 준비하는 것은 답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메모지와 필기 도구, 카메라는 기본일 것이다. 그리고 지도는 준비해 가는 것이 좋지만 답사하는 곳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왜냐하면 그 지역의 알맞은 지도는 그 곳에서 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상약을 준비하는 것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계절에 맞는 의복과 여벌의 옷 등 여행을 할 때와 같이 꼼꼼히 준비 해야할 것이다.

 5) 답사 중 주의점

자신이 철저한 준비와 자료조사가 되었다면 이제 답사하는 것만이 남았다고 생각된다. 답사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그 보다 더 값진 것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냥 보는 것 외에 사진을 찍어 그 모습을 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유적에는 유적을 설명하는 팻말이 붙어 있다. 이 것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의문나는 점이 있으면 안내원이나 그곳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문의하는 것 또한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우수한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행위나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 고분이나 잔디밭에 올라가는 행위는 우리가 답사를 하는 동안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중 하나이다. 박물관이나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공공장소에서 휴대폰 통화나 시끄럽게 떠드는 행위도 주의해야 할 점이다.

많은 것을 얻어오는 답사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꼭 지켜야하는 답사예절이라고 생각된다.

 6) 답사를 다녀와서

답사를 다녀와서 “아! 다녀왔는데 좋더라”로 끝이 나면 안될 것이다. 답사보고서나 기행문을 쓰면서 다시 한번 답사의 감동을 느끼는 것, 또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올바른 답사를 위한 제안 중 하나 일 것이다. 자신이 전문성을 가지는 답사를 했다면 보고서를, 전문성보다 감동을 주는 답사를 했다면 기행문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사진 자료를 잘 정리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아쉬운 점을 기록하고 다음 2차 답사를 준비하거나 다른 답사를 할 때 유용하게 쓰면 더욱 알찬 답사가 될 것이다.

 4. 결론

지금 까지 나름대로 올바른 답사문화에 대한 제안을 해 보았다. 물론 힘들겠지만 이렇게 한다면 보다 좋은 답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올바른 답사문화에 대한 제안’을 하면서 나름대로 하나의 정의를 하고 싶다. 답사란 세 가지가 중요하다. 답사 전 철저한 준비, 답사 중 올바른 답사 행위, 답사 후 답사를 정리하는 보고서나 기행문. 이 세 가지가 완벽하게 이루어진다면 가장 이상적인 답사가 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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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리에 사용된 황제 어새 보물 확정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이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의 보물 지정을 확정하고 내일(9월 1일) 관보에 지정 고시한다고 합니다.

 이번에 고시하는 보물 제1618호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는 전체높이 4.8㎝, 가로 5.3㎝, 세로 5.3㎝, 무게 794g의 크기로 합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손잡이는 거북이 형태이고 인면에는 ‘황제어새'(皇帝御璽)라는 글씨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어새와 함께 보물이 된 내함은 황동으로 만들어졌으며 특이하게 내부에 인주함이 들어 있습니다.

 문화재청측은 "이번 '황제 어새' 보물 지정은 고종 황제가 일본의 국권침탈 위협에 대항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펼친 주권수호운동의 중대한 역사를 증명하고, 이 시기 우리 역사의 실체를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데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습니다.




<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 사용례>


 (1) 1903년 11월 23일 이탈리아(義國) 君主에게 보낸 親書

 (2) 1904년 7월 1일 러시아 황제에게 보낸 친서

 (3) 1904년 9월 6일 러시아 황제에게 보낸 친서

 (4) 1904년 11월 20일 러시아 황제에게 보낸 친서

 (5) 1905년 1월 10일 러시아 황제에게 비밀리에 보낸 친서

 (6) 1905년 4월 3일 러시아 황제에게 보낸 친서

 (7) 1905년 11월 18일 이후 알렌 주한 공사에게 보낸 백지 친서

 (8) 1906년 1월 독일 황제에게 보낸 친서

 (9) 1906년 6월 22일 호머 헐버트를 친서 전달 특별위원으로 임명하는 위임장

 (10) 1906년 6월 22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5개국 국가원수들(러시아, 이태리, 프랑스, 오스트리- 헝가리, 독일)에게 보낸 친서(5점)

 (11) 1906년 11월 1일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12) 1907넌 4월 20일 러시아 황제에게 비밀리에 보낸 친서

 (13) 1909년 1월 1일 호머 헐버트에게 미국에 유학 간 조카(조남복)를 잘 돌보아줄 것을 요청하는 서신

 (14) 1909년 10월 20일 상하이 독일계 은행에 예치한 재산을 찾기 위해 호머 헐버트에게 준 친서 위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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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섹시한 스포츠 유니폼 BEST 5

 스포츠팬들이 생각하는 가장 섹시한 스포츠 유니폼은 어떤 종목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테니스복이 가장 섹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스포츠 전문 블로그에서 실시한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섹시한 스포츠 유니폼은?'이라는 설문조사에서 35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이 가운데 1500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테니스복'을 꼽았다.

 2위는 의외의 복병이 차지했다. 바로 골프복. 최근들어 '얼짱' 골퍼들이 증가함에 따라 골프복도 새로운 섹슈얼 코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000여 명의 네티즌이 골프복을 선택했다. 네티즌들은 "골프복이 갈수록 타이트해지고 미니화되고 있는 추세"라며 "골프보는 또 다른 재미"라고 입을 모았다.

 


 3위는 수영복. 항상 수위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던 수영복이 최근들어 섹시함을 잃어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수영복을 입은 미녀스타의 급감을 지적할 수 있다. 한 네티즌은 "수영복 입은 미녀스타가 없다"며 "덩치좋고 어깨가 딱 벌어진 무시무시한 여성을 보면 수영복이 섹시하다는 생각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4위는 육상복. 짧고 타이트한 육상복의 특징이 잘 반영된데다, 최근 육상쪽에서도 미녀 선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순위가 급상승했다.


 이밖에 '해변가의 꽃' 비치발리볼은 5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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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자의 다이어트 비법?



대한민국은 이미 남녀노소 거의 모든 국민들이 다이어트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인데요.
오래 전 조선시대, 그것도 세자가 다이어트를 했다는 기록이 발견돼 화제입니다.


바로 조선왕조실록에 다이어트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었습니다. 기록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世宗常命大臣曰: ‘世子多膚, 常令習步內庭, 乘馬後園, 至令放鷹, 以通血氣。’ 今上常居深宮, 未嘗行氣, 故一有動勞, 便至違豫, 當散步宮內, 或時御馬, 常常行氣,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께서 항상 신하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세자는 뚱뚱하니 항상 궁궐에서 걸음을 걷게 하고, 후원에서 말을 타게 하며, 매를 놓아 사냥하는데 참여하도록 하여 혈기를 통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성상께서 항상 깊은 궁중에 계시고 일찍이 운동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몸을 한 번 움직여 피로하게 되면 바로 병환이 나십니다. 마땅히 궁궐 안에서 산보를 하시고 때로는 말을 타시어서 항상 운동을 하시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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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가끔 엿볼 수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사실 현실속에서, 특히 우리나라의 상류층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기대하는 사람은 몇 안될 것이다.

 혹시 조선시대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비슷한 개념이 있었을까?


 놀랍게도 있었다. 조선왕조 실록 정조편에 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사례가 잘 나타나 있다.

우연히 발견한 조선왕조의 독특한 기록을 읽으며
대한민국의 상류층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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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남성 출산휴가가 있었다?

출산휴가, 남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까요?

관련 법 조항을 살펴보니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 3장 18조의 2(배우자출산휴가)에따르면,
1.사업주는 근로자가 배우자의 출산을 이유로 휴가를 청구하는 경우에 3일의 휴가를 주어야한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대기업을 비롯한 일부 기업에서는 3일의 휴가를 인정해주고는 있는데
그렇지 못한 곳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21세기에도 생소한 남자들의 출산휴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면 믿으시겠어요? 


놀랍게도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남자도 출산휴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노르웨이 같은 복지 선진국들처럼 우리나라의 출산휴가도 확대된다면 출산 장려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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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선수들의 능력치


이운재: 순발력50 세이브50 체중80 소리치기99 박수치기98 은퇴0

김진규: 디펜스50 바지올리기90 허벅지98 슈팅정확도1 신경질88

이호: 볼키핑30 시야5 백패스96 종패스1 버로우89 벤치:40

송종국: 디펜스50 커버링5 롱패스1 농촌크로스20 2002시절99

김정우: 패스50 백테클80 킬백패스97 경기장악능력5 경기쇄신능력1

이동국: 스피드50 발리슛욕구96 발리슛찬스3 자리지키기90 산책99

이천수: 스피드90 프리킥의욕99 슈팅의욕99 입방정88 호감4 방출1

허정무: 머리스타일80 인터뷰95 조재진신임99 자신감100 허접1

우성용: 제공권90 헤딩90 포지셔닝5 존재감1 나이35 은퇴1

김동진: 디펜스25 오버래핑10 안정도5 공격욕구99 공격찬스1

강민수: 디펜스50 횡패스90 백패스98 패스스피드3 유명도2

조재진: 헤딩90 슈팅88 이동거리3 볼터치1 수염관리99 감독신임99

김두현: 중거리슛88 선제골90 경기운영5 K리그능력99 국대능력15 군대26

김상식: 디펜스30 실수능력99 패배원인90 미니홈피문닫기85

최성국: 스피드40 크로스의욕90 크로스성공2 다리길이7

오범석: 돌파력70 파울80 드로인속도2 일단손들고심판보기99

김치우: 디펜스50 오버래핑55 단발머리89 드로인정확도2

이근호: 골결정력80 드리블85 박지성사랑99 호감1

김용대: 디펜스80 안정감85 청대시절95 이운재저주99 선발1

박주영: 개인기70 정확도80 골결정력50 배치기98 피부3 기도99 as모나코선수자부심:2

박지성: 체력99 패스력89 스피드80 투혼98 피부1

설기현: 크로스능력85 정주행60 역주행90 역습찬스진정효과99

안정환: 간지90 슈팅20 2002월드컵자부심95 파마99 페널트킥성공률5

이영표: 스피드90 헛다리90 신앙심95 헤딩0 외관상키165

김남일: 중원장악80 홀딩85 진공청소기98 나이트가고픈욕구99

고종수: 프리킥80 부상빈도99 자기관리1 리니지(게임)능력100

이을용: 태클80 왼발80 오른발1 을룡타99 급흥분98 얼굴3

차두리: 체력90 스피드89 몸빵95 골결정력1 해설99

차범근: 현역시절99 감독시절70 삑사리98 국제전화는00700

한준희(아나운서): 지식99 해설80 침착성1 샤우팅99 옥타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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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디에이터, 어디까지가 진짜?


 로마의 오헌제 시대를 이룩한 다섯 명의 황제들 중 네명은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다섯 번째 황제이자 철학자로도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아들인 어리석은 콤모두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남겨줍니다. 이 콤모두스가 바로 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나오는 악당 황제입니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에서는 사실 황제가 막시무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넘겨주려고 했지만 그 사실을 안 콤모두스가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독살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는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이 이야기는 픽션이지만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아들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로마에서는 황제의 혈육이 아니더라도 황제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면, 황제는 그 사람을 양자로 삼아서 제위를 물려줄 수 있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콤모두스는 네로와 비슷한 폭군으로 충분히 아버지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콤모두스의 죽음은 영화와 역사적 사실히 완전히 다릅니다. 영화에서는 콤모두스가 막시무스에게 죽지만, 실제로는 목욕탕에서 암살자에게 목졸려 죽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지수는 바로 막시무수예요. 그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지만 실존인물인지는 알 수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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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 로마인 이야기를 11권까지 한 번 보고 다시 6권까지 봤는데.. 가물가물 합니다. -_ -;;;;;
  • 비공식 우수 블로거 앰블럼은 뭥미? ㅋ
  • corblo
    콤모두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자리를 차지했다는 설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오는 의혹이었으나 근거없는 일종의 음모론으로 허구에 불과합니다. 글쓴 분의 말대로 오현제 시대엔 전임황제가 능력있는 사람을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삼는 방식으로 유능한 군주들이 연이어 통치를 했습니다. 이것은 이들에게 친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는 콤모두스라는 친아들이 있었기에 세습을 결정했습니다. 아들을 권력에서 배제해서 후일 분란의 씨앗을 만들기 보다 후계자로 삼아서 안정적인 제위계승을 하기로 결정한 거지요. 물론 결과는 대실패였지만요. 로마제정에서 제위의 세습은 제도적으로 정착되진 않았지만 친아들이나 가까운 친족이 제위를 물려받는 것은 자주 있엇던 일입니다. 실제로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어린 아들에게 차기황제에게 부여하는 카이사르 칭호를 주었고 호민관 특권을 부여했으며 부자가 공동으로 집정관에 취임하는 등 제위를 물려받기 위한 일들을 마치고 죽었습니다. 가만 있으면 다음 황제가 자기일텐데 무리수를 두면서 아버지를 죽일 이유가 없지요.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임종할 당시 중신들과 장군들을 불러 자기 아들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을 요구한 것만 보아도 제위에서 콤모두스를 배제할 생각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또한 즉위할 당시 콤모두스는 이십대의 젊은 나이였고 그 전까지 제위계승자로서 결격사유를 딱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위에 오르고 나서야 그런 변화가 나타나고 결국 역사에 남는 악제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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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밍 제인 (Watching 'Becoming Jane')

 

It is said that chatting or love stories in the Victorian Age(eighteen century) in small towns in England had a big influence on society as nowadays popular culture or mass media does.

Especially romance of the upper and middle class shows society itself, a view of love, or old customs. Jane Austin, the originator of these days love stories, wrote six novels like <Emma>, <Sense and Sensibility>, <Pride and Prejudice>, <Mansfield Park>, <Persuasion>, <Northanger Abbey>, and all of them have being read, loved and sometimes made into dramas or movies. This time a new movie, <Becoming Jane> comes out. What makes this movie special is this movie shows Jane Austin's real life. But personally I am sorry that I can't find any big difference from any other movies.

Generally writers use both their real experience and imagination when writing books. Through this movie, we can go into Jane's real love, and life and find out why she became a writer, why she didn't get married, and how her novels reflect her life. I think those factors make movies attractive. Because of our mortality, when we see a movie, we can experience others' lives. Furthermore, we can make our own opinion about diverse situation that we are not really in.

When I see this movie, I can notice that her real sweetheart, Tom Lefroy behaved arrogantly just like Darcy in her novel, <Pride and Prejudice> and the scene where Jane left Lefroy reminded me of one in her another novel, <Persuasion>. Despite the fact that this movie is about her real life, there are some differences between this movie and her own romance. It's sad that we can't find out enough evidence to prove the facts. Her sister did her best to cover up her private life. After Jane died, she got rid of many of Jane's letters. That's why written stories that we can reach are not relevant. Furthermore, Jane used lots of metaphor in her letters and that makes hard for us to understand them.

Unlike nowadays when women also are respected because of her own capacity, in the Victorian age, a woman who could have a propose from a nobleman and save her family from poverty was considered lucky. Although Jane usually wrote stories with happy end, she chose the writing rather than true love for her happiness and her lover's future. While I see this movie, I picture many women who are not longing for marriage but are willingly doing their own work. And I want to give them encour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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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과 세종대왕의 거짓말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짱와로 서로사맛디아니할새

이런젼차로 어린백셩이 니르고저 홇베이셔도

마참내 제뜨들 시러펴디 못할노미하니라

내 이랄위하야 어엿비녀겨

새로 스물여듫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수비니겨 날로쑤메 편안케 할 따라미니라

 위의 글은 세종어제훈민정음의 내용으로,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는 이 글에 세종대왕의 애민정신, 자주정신, 실용정신, 창조정신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중 애민정신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과연 세종대왕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글을 만들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세종대왕은 조선 초기의 왕으로 조선왕조의 정당성을 만백성에게 알려야했다. 그러기위해서는 백성들 모두가 보다 쉽게 볼 수 있는 새로운 문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훈민정음으로 쓰여진 최초의 문헌은 '용비어천가'이다. 그 내용은 역성혁명이 천명임을 백성들에게 알려 조선건국의 합리화를 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세종은 조세제도를 바꿨는데, 이를 알릴 문자가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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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트
    생각지도 못하던 사실이네요;
  • 안타깝습니다.
    당시 세종대왕은 자신의 조부가 건국하고 아버지가 기틀을 잡은 조선을 이끌어가야 하는 숙명을 어깨에 지고 군주자리에 올라섰습니다. 당연히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백성들의 마음 속 깊이 새겨넣어야만 했습니다. 그건 거부 할 수 없는 과업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이 쉽게 익힐 수 있는 훈민정음으로 알리는건 당연한거 아닙니까~ 그리고 세종은 재위기간동안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근데 고작 용비어천가를 통해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알리려 했다는 사실과 조세제도 사례만으로 그의 마음을 폄하하는건 그저 졸렬한 수작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세종대왕이 언급한 그 이유들보다 더 큰 이유가 숨어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뿐입니다.
  • Fashion community attracts numerous teenagers today not simply given that it is a alternatively new career, but additionally it really is intended to realise person's likes from the field of trend. Furthermore, it can be really a high-paid profession currently. Any time a younger human being decides to link her or his exercise using the vogue market place next to nothing arrives to thoughts apart from an individual its part - style layout. In all probability, several persons in fact know that it truly is a separate discipline of vogue industry. Believe it or not, you can find a fantastic quantity of other professions and specialties in such as creating clothing, design and style, selling, merchandising, and s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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