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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 (3)
큰 파문을 일으킨 대한민국 10대 범죄 사건

 아래의 범죄 사건들은 우리나라 경찰이 수사한 범죄 사건들 중 큰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킨 사건들이다. 수많은 경찰관이 동원되었으나 아직까지 미제인 사건, 진범을 잡았다고 했으나 법원에서 무죄 석방된 사건, 특정 사건들을 계기로 인권의식의 고양과 수사기법의 발전을 가져온 사건들이다. 범죄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범죄의 발생 원인이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치정에 얽힌 사건, 금품을 노린 사건, 우발적인 사건, 정신병에 의한 사건 등에서부터 불특정 다수를 노린 사건 및 무동기 범죄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범죄의 발생 원인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개개 사건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평가가 뒤따라야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1. 원효로 윤노파 살해사건
1981년 8월 4일 71세의 점술가 윤경화와 그의 가정부 및 6세의 수양딸 등 3명이 둔기로 머리를 난타당하고 목이 졸린 채 숨진 사건이다. 피의자에 대한 강압·고문수사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다.

2. 삼성동 여대생 피살사건
1981년 9월 21일 부산산업대학 공예과 여학생 박상은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한국상사 야적장 인조대리석 분쇄 더미 속에 둔기로 머리와 얼굴 등을 심하게 얻어맞고 숨져있는 채로 발견된 사건이다. 두 명의 피의자가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된 사건으로 증거의 중요성을 알게 한 사건이다.

3. 우순경 사건
1982년 4월 26일 오후  9시 30분경  경남 의령군 궁유면 지서에 근무하던 우범곤이 술에 만취해 지서의 예비군 무기고에서 수류탄 7발과 카빈소총 2정, 실탄 180여발을 들고 나와 주민들에게 무차별 난사한 사건으로 사망 56명, 부상 34명이라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관 적성검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4. 서진룸싸롱 사건
1986년 6월에 조직폭력배인 강진석파가 맘포파와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던 조원섭 등 4명을 서진룸싸롱에서 무자비하게 난자하여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장본인 장진석 일당은 모두 체포되고 후에 주범들은 사형에 처해졌다.

5. 화성 연쇄살인사건
1986년 9월 19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4년 7개월 동안 10차례에 걸쳐 경기도 화성시 태안 일대에서 일어난 부녀자 강간살인사건이다. 마지막 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2006년 4월 2일 만료되었고, 아직도 화성경찰서 강력3팀에서 수사 중인 사건으로 사건일지와 기록은 영구 보존키로 했다.

6. 지존파 사건
지존파는 1993년 5월부터 1994년 9월까지 돈 많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중년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5차례 연쇄납치로 금품을 빼앗고는 모두 살해하여 자신들의 집 소각로에서 시체를 태워버렸다. 살인, 소각공장운영, 인육 먹기, 살인실습 등과 같은 잔인성으로 유명한 사건이다.

7.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1991년 3월 26일 개구리를 잡으러 집을 나간 대구 성서초등학교 어린이 5명이 실종된 사건이다. 이에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으나, 2002년 9월 26일 대구 달서구 용산동 와룡산 4부 능선에서 이들의 유골이 발견될 때까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8. 신창원 탈옥사건
신창원은 1997년 교도소를 탈옥한 후, 2년 6개월 동안 108건의 강 절도를 저지르며 전국 각지로 출몰한 탈옥수이다. 그는 1994년 11월 16일 부산교도소로 이감된 뒤 1997년 1월 20일 탈출하기까지 모범수로 생활하며 감시가 느슨해지자 감방 내 화장실 환기구의 쇠창살을 쇠톱으로 잘라 탈출한 후 주로 다방여종원들과 동거하며 도피한 사건이다.

9.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2003년 9월 명예교수 부부 살인을 시발로 2004년 7월 검거될 때까지 총 21명을 잇달아 살해한 사건이다. 2004년 3월부터 동년 7월 검거 시까지는 주로 성매매 여성들을 집중 유인·살해하였다. 범행도구는 자신이 직접 만든 망치나 칼 등을 이용하였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르거나 시체를 토막 내 야산에 묻기도 하였다.

10. 오대양 사건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북2리 오대양 용인공장 내 구내식당 천장 위에서 오대양주식회사 대표 박○○ 외 31명이 집단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숨진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오대양 공장종업원과 회사직원들이었고, 사장인 박○○와 그녀의 자녀(2남 1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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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 타살, 끝내 밝혀내지 못한 실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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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다룬 영화 '아이들'의 이규만 감독이 '개구리소년 타살'을 언급했다.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의 전말은 아래와 같다.

대구 성서초등학생 5명이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면서 와룡산 골짜기로 들어간 후 행방불명되자 가족들은 경찰에 이를 신고하였다. 경찰은 처음에 단순가출로 판단했으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이들이 귀가하지 않자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대규모의 경찰력을 동원하여 와룡산 주변에 대한 수색에 나섰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다시 실종된 지 백일이 지나자 특별수사요원 50명을 선발하여 실종어린이 부모들과 1주일 동안 서울, 부산 등 대도시의 앵벌이 조직과 아동보호소 등을 뒤졌지만 허사였다. 그 후 10년 동안 경찰을 비롯한 많은 기관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실종소년들을 찾기 위한 운동에 대대적인 동참을 하였다. 대구시는 수천만장의 전단을 제작·배부하였고, 교육부와 각급 교육청들이 개구리소년 찾기 캠페인을 벌였으며, 아이들의 사진이 담긴 광고전단지, 전화카드, 신문과 방송을 통한 홍보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허위제보, 무속인의 추측 등만 난무하였다.

 사건 발생 11년이 지난 2002년 9월 26일 오전 11시 30분경 대구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편 와룡산 기슭에서 도토리를 줍던 한 주민에 의해 개구리소년 5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뼈와 신발 등 유류품이 발견되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요원, 경북대 법의학과 교수 및 수사관 등 45명 합동으로 유골발굴작업 및 유골발굴지로부터 반경 150m 주변을 수색한 결과, 두개골 5구 등 유골 50여 점, 운동화 4켤레, 비닐구두 1켤레, 체육복 2벌, 파자마 1점, 팬티 4점, 잠바 2점, 내의 3벌, 양말 4켤레, 주황색 티 2점, 혁대 1점, 전자손목시계 1점, 장난감 1점, 탄두 351개, 탄피 1개를 발굴하였다. 발굴된 유골의 시료와 실종소년 어머니들의 혈액을 채취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DNA를 감정한 결과 실종소년들의 유골로 확인되었다. 실종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되자 그동안 달서경찰서에 설치되었던 수사본부를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45명으로 구성된 수사본부를 차려 재수사에 임했다.

 개구리소년들의 사망원인에 대해 경찰은 저체온사 혹은 동사를 주장한 반면, 경북대 법의학 교수팀은 아이들의 두개골에 난 여러 개의 흉기 흔적으로 보아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뒤 암매장 되었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해 사건은 사실상 미궁에 빠졌다.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남으로써 사실상 수사는 종결되었다. 그러나 실종사건 직후의 초동수사 및 수색작업의 실패, 유골발굴과정에서의 경찰의 현장 훼손, 사인을 둘러싼 논란의 실체 규명 실패 등으로 경찰수사에 많은 허점을 노출시켰다.

 특히 경찰이 유골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현장을 무분별하게 마구 파헤치는 바람에 원래 유골의 위치나 행태 등을 훼손하여 현장을 원형대로 보존하지 못했다는 점이 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장의 훼손은 나중에 사인 규명에서 저체온사 혹은 사고사 및 타살 여부를 밝혀줄 수 있는 최소한의 증거들을 훼손한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사건은 국내에서 가장 다양한 과학수사 기법이 동원된 사례이기도 했다.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일반 법의학을 비롯한 법의곤충학, 법의인류학, 토양학 등이 대거 적용됐다. 경북대 법의학팀이 참여하였고, 법의곤충학자가 시신발굴현장에서 파리 같은 곤충의 껍질을 수거해 조사를 벌였다. 유골과 옷가지에 묻은 흙이 와룡산의 것인지에 관한 토양학 검사도 했다. 곤충이나 토양이 와룡산의 것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 살해된 뒤 이 곳에 암매장되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외국의 저명한 법의인류학자, 고고학 전문 동물학자 등에게도 자료의 판독을 의뢰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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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내용은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제공·요청 받은 것으로 The Neo Renaissance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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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밝혀내지 못한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대구 성서초등학생 5명이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면서 와룡산 골짜기로 들어간 후 행방불명되자 가족들은 경찰에 이를 신고하였다. 경찰은 처음에 단순가출로 판단했으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이들이 귀가하지 않자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대규모의 경찰력을 동원하여 와룡산 주변에 대한 수색에 나섰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다시 실종된 지 백일이 지나자 특별수사요원 50명을 선발하여 실종어린이 부모들과 1주일 동안 서울, 부산 등 대도시의 앵벌이 조직과 아동보호소 등을 뒤졌지만 허사였다. 그 후 10년 동안 경찰을 비롯한 많은 기관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실종소년들을 찾기 위한 운동에 대대적인 동참을 하였다. 대구시는 수천만장의 전단을 제작·배부하였고, 교육부와 각급 교육청들이 개구리소년 찾기 캠페인을 벌였으며, 아이들의 사진이 담긴 광고전단지, 전화카드, 신문과 방송을 통한 홍보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허위제보, 무속인의 추측 등만 난무하였다.

 사건 발생 11년이 지난 2002년 9월 26일 오전 11시 30분경 대구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편 와룡산 기슭에서 도토리를 줍던 한 주민에 의해 개구리소년 5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뼈와 신발 등 유류품이 발견되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요원, 경북대 법의학과 교수 및 수사관 등 45명 합동으로 유골발굴작업 및 유골발굴지로부터 반경 150m 주변을 수색한 결과, 두개골 5구 등 유골 50여 점, 운동화 4켤레, 비닐구두 1켤레, 체육복 2벌, 파자마 1점, 팬티 4점, 잠바 2점, 내의 3벌, 양말 4켤레, 주황색 티 2점, 혁대 1점, 전자손목시계 1점, 장난감 1점, 탄두 351개, 탄피 1개를 발굴하였다. 발굴된 유골의 시료와 실종소년 어머니들의 혈액을 채취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DNA를 감정한 결과 실종소년들의 유골로 확인되었다. 실종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되자 그동안 달서경찰서에 설치되었던 수사본부를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45명으로 구성된 수사본부를 차려 재수사에 임했다.

 개구리소년들의 사망원인에 대해 경찰은 저체온사 혹은 동사를 주장한 반면, 경북대 법의학 교수팀은 아이들의 두개골에 난 여러 개의 흉기 흔적으로 보아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뒤 암매장 되었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해 사건은 사실상 미궁에 빠졌다.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남으로써 사실상 수사는 종결되었다. 그러나 실종사건 직후의 초동수사 및 수색작업의 실패, 유골발굴과정에서의 경찰의 현장 훼손, 사인을 둘러싼 논란의 실체 규명 실패 등으로 경찰수사에 많은 허점을 노출시켰다.

 특히 경찰이 유골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현장을 무분별하게 마구 파헤치는 바람에 원래 유골의 위치나 행태 등을 훼손하여 현장을 원형대로 보존하지 못했다는 점이 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장의 훼손은 나중에 사인 규명에서 저체온사 혹은 사고사 및 타살 여부를 밝혀줄 수 있는 최소한의 증거들을 훼손한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사건은 국내에서 가장 다양한 과학수사 기법이 동원된 사례이기도 했다.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일반 법의학을 비롯한 법의곤충학, 법의인류학, 토양학 등이 대거 적용됐다. 경북대 법의학팀이 참여하였고, 법의곤충학자가 시신발굴현장에서 파리 같은 곤충의 껍질을 수거해 조사를 벌였다. 유골과 옷가지에 묻은 흙이 와룡산의 것인지에 관한 토양학 검사도 했다. 곤충이나 토양이 와룡산의 것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 살해된 뒤 이 곳에 암매장되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외국의 저명한 법의인류학자, 고고학 전문 동물학자 등에게도 자료의 판독을 의뢰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제공.요청 받은 것으로 The Neo Renaissance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는 많은 사건 기록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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