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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자의 다이어트 비법?



대한민국은 이미 남녀노소 거의 모든 국민들이 다이어트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인데요.
오래 전 조선시대, 그것도 세자가 다이어트를 했다는 기록이 발견돼 화제입니다.


바로 조선왕조실록에 다이어트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었습니다. 기록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世宗常命大臣曰: ‘世子多膚, 常令習步內庭, 乘馬後園, 至令放鷹, 以通血氣。’ 今上常居深宮, 未嘗行氣, 故一有動勞, 便至違豫, 當散步宮內, 或時御馬, 常常行氣,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께서 항상 신하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세자는 뚱뚱하니 항상 궁궐에서 걸음을 걷게 하고, 후원에서 말을 타게 하며, 매를 놓아 사냥하는데 참여하도록 하여 혈기를 통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성상께서 항상 깊은 궁중에 계시고 일찍이 운동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몸을 한 번 움직여 피로하게 되면 바로 병환이 나십니다. 마땅히 궁궐 안에서 산보를 하시고 때로는 말을 타시어서 항상 운동을 하시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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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들의 혈액형은?

개인적으로 혈액형별 성격론을 전혀 믿지는 않지만 재미삼아 역대 대통령들의 혈액형을 찾아보았습니다.

검색방법:  *국가기록원홈페이지-기록물검색(상단에 있음)-대통령관련기록-역대대통령기록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이승만은 냉철하고 현실적인 탁월한 정치가였으나 너무 독선적이었으며 고집이 셌고, 지나친 정권욕에 사로잡혀 종래에는 4.19 혁명을 불러왔고, 결국 하야했습니다. 그의 혈액형은 O형 이네요.


5.16 군사정변으로 물러났던 대한민국의 두번째 대통령 윤보선, 그도 O형
이었네요.



5.16 군사정변을 통해 정권을 잡은 뒤 18년 동안 독재를 하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퇴보시킨 박정희 대통령. 그의 혈액형은 소심하다는 A형
이네요ㅎ


전두환 소장에게 정권을 내준 고 최규하 전 대통령, 우유부단한 성격탓에 최주사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데요. 그의 혈액형은 A형
이었다고 합니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광주민주화 항쟁 때 공수부대를 투입해서 수천명의 국민들을 학살했고, 96년 내란죄 등 10여가지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전두환. 정치적 역학관계와 인권 대통령을 자처한 김대중대통령의 사면으로 풀려났죠. 밝혀진 뇌물만 2천억원이 넘지만 전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고 우기는 전두환씨의 혈액형은 B형
이라네요.

전두환의 육군사관학교 동기로  12.12사태에 가담했고, 전두환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았습니다. 역시 수천억원의 뇌물을 받았으며 역시 10여가지의 죄로 인해 전두한과 법정에 섰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노태우의 혈액형은 AB형.



나름대로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으나 무능한 그의 경제 정책은 IMF외환위기를 불러왔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해 경제를 개혁했으나 정치적 보복을 위한 것이었다는 소문도 있다. 김영삼도 AB형
.


 햇볕정책을 펼쳐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 무드를 조성했습니다. 그와 관련해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주요 업적으로는 성공적인 대북정책과 김영삼이 말아먹은 경제를 급격하게 회복시키고 IT산업을 발전시킨 것 등이 있죠. 완벽한 대통령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대통령같은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그의 혈액형은 A형이네요.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 요즘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해 시끄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열성 지지자를 보유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그는 O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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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혈액형별 성격론은 일본 회사의 상술이니 당연히 틀리겠지만.. 이글을 보니 더욱 그렇네요 ^^ 역시 혈액형과 성격은 전혀 상관없는듯합니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기록관에 대통령 혈액형까지 나와있다니 놀랍네요
  • 박정희 대통령이 소심함으로 상징되는 A 형이라는게 재밌는데요..
    재밌는 글 잘보고 갑니다..ㅎㅎ
  • 박 전대통령은 쿠테타 성공당시 선술집에서 막걸리 혼자 먹고 신세 한탄하고 있었다는 드라마 내용이 있던데..역시 A형이군요. 전두환 전 대통령 B형인지 예전에 알았고^^
  • 이색적인 내용입니다. 정권을 잡으면서 본인의 혈액형과 다르게 행동해 나아갈 수도 있고 본인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대통령도 계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보고 갑니다.
  • 재밌다^^
    역대대통령의 혈액형을 알수있다는것이 너무 흥미로웠고^^
    짧게요약되어있는 내용들도 재밌게 봤습니다. 잘보고갑니다.^^
  • 대통령
    본인의 혈액형 보다는 참모진의 혈액형이 당시 대통령의 색깔을 표현할 가능성이 훨더 많은것 같네요
  • 아드리아
    김대중과 노무현만 잘했다는거 보니까.
    그쪽 인가뵈"
  • 소나기
    ㅋ A형이 소심하다.. 결론을 얻기까지 신중한거죠.
    지를때 크게 지르는 스타일..
  • 그쪽정말 지겹다이제
    그쪽이 그쪽이지... 김대중이와 노무현만 좋게 얘기하는거보니 그쪽이죠. 아주 꼴사납습니다.
    이민가야지 이거원..
    • 다른 대통령들도 좋게 얘기하고 싶었는데,
      아는 좋은 내용이 없어서요ㅎ
      아시는거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 Erc
      그럼 알려드릴게요. 박정희 대통령은 취임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중 하나였던 나라를 눈부시게 성장시켜 놓았고 거의 유일하게 자신을 위해 재산을 은닉하지 않은 대통령이기도 하며 일가친척을 정치권에 절대 관여못하게 한 거의 유일한 대통령이기도 하지요. 즉 당신이 보릿고개가 아닌 비만을 걱정하고 편하게 뒹굴거리며 인터넷을 할수 있는 기반을 깔아준 분이죠. 일부는 국민들이 잘나서 잘된거다 하고 그것도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라 보지만 그 잘난 국민들의 나라가 왜 박정희 대통령 취임직전까지 찢어지게 가난하고 경제성장률이 바닥이었다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중에서야 성장률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네요.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위해 북한에게 매년 수조원의 국민 혈세를 쏟아붓고는 정전협정은 커녕 바로 제1차 연평해전으로 북한에게 뒤통수를 맞고 이에 더욱 지원을 늘려 김정일의 선심을 사려했으나 3년뒤에는 전국민의 축제인 월드컵을 노린 2차연평해전으로 뒤통수를 병으로 가격당한 미련하고 노망든 대통령이었지요. 게다가 오로지 호남출신만을 기용하고 대다수 국토개발사업을 호남에만 집중해 타지역출신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았지요. 또 김종필총재와 연합, 호남뿐 아니라 충청권의 표도 얻어 선거에서 승리했음에도 대통령이 되자마자 총리였던 김종필을 배신하고 버려 충청도에서도 미움을 한몸에 받았고요. 즉 국민화합과는 거리가 먼 자신과 주변인의 안위만 챙기는 대통령이었지요. 하지만 정치에는 오랜 야당생활에도 살아남은 것으로 봐도 알수있듯이 정치100단, 늙은 여우등 많은 별명이 있던 정치의 귀재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넘어가겠습니다. 이제 아주 조금이라도 아셨나요?
  • 소내기
    박정희 대통령은 비형입니다.
    박근헤 의원도 비형이구요
  • 김대중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후하고 전국민이 사랑하는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어이없게 박하고
    솔직히 부모가 전라도 꼴통이거나 혹은 민주화 세력이 아닌이상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독재로 매도해버리는 분은 많지 않거든요 ㅋㅋ
    홍어 신가봐요..
    서울 신림동은 홍어 천지던데 ㅋㅋ
    홍어에 대한 너무 안좋은 기억들이 많아서 ㅋㅋ
    • 현대사를 제대로 공부하신 분이라면 박정희를 독재자로 평가합니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하신 분이라면 친일파로 평가할 수도 있겠네요. 아예 대놓고 지역감정 조장하시는 분 같은데 제 블로그보다 조선일보 기사를 읽으시는게 더 유익하실겁니다.
  • 최종적으로 다시 알아낸 혈액형
    국가 기록원의 전 대통령의 혈액형이 잘못 되어 있습니다 그당시 주먹 구구식으로 기록되었던 내용이구요 박정의 대통령은 최종 조사결과 B형으로 나왔구요 전두환 대통령은O형으로 최종 조사결과 나왔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A형이구요 나머지는 위의 대로 같습니다.. 인터넷이라는곳이 잘못하면 정보마져도 오도될수 있다는걸 여실히 보여주네요.. 최종적으로 결과가 나온 사이트를 참조 하세요 하두 말들이 많아서 최종적으로 직접 조사해서 나온 결과란 것을 밝혀 드립니다 이럻게 한군데서 뭐다 하면 순시간에 직접 알아보지도 않고서 믿어버리기 때문에 자꾸 진실이 숨겨지는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좀더 실질적으로 조사를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느 기관에서 뭐다 하면 무조건 믿어 버리는 그런한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불과 몇십년 전만해도 혈액형이 중구 남방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자신의 혈액형도 몇번을 바뀌는 일도 허다하지 않았습니까 하물며 예전의 대통령들도 그러했으리라 생각 됩니다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되면서 형액형을 알아내는 기술도 급속도로 바뀌면서 발전했습니다 국가 기록원만 보고 믿지 마시고 최종적으로 완전 조사 후에 발표되었던 역대 대통령의 혈액형을 참조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박정희 B형 전두환O형 노태우 A형 노무현 O형 이승만 O형 이명박B형임을 말씀드립니다..
  • 홍어사냥
    버러지 같은 홍어네 ㅋㅋㅋ
    사측이나 국가에서는 돈먹는 골치덩이인 의료보험을 박정희가 만듬
    처음에는 대기업위주로 실시
    전두환은 민간 소규모 업자들이 싫다는데 억지로 확대실시...
    한국은 유래없는 아픈게 두렵지 않은 나라가됨
    김대중 나라에 돈이 없자 다들 싫다는 연금실시 다 날려먹음 지존..... 사기꾼
    서민들 피빨아서 IMF를 극복한것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노예층 형성....
    막말로 대기업 노동자나 공무원아니면 너는 노예다 라는 공식을 만듬
  • 밑에 개소리하는분이 계시네요.
    박정희대통령 a형맞구요.. 박근혜 대통령 b형맞습니다.. 그이유는 육영수여사가 ab형이셨습니다.
    그리고 박근령씨가 a형입니다.
  • 빨갱이짓한 또라이가 둘다 a형이네
  • 비형의 장난질
    최종다시알아냔혈액형님 장난치지 마시거요,,저 몇십년간 정주영,박정희,요근래에는 박지성 김연아까지 비형인지 일있습니다,,왜냐믄 비형들이 돌아다니면서 모든 괞찮은 사람들을 비형으로 왜곡시키드라고요정확히 이야기 할게요박정희 에이형 맞습니다,,김연아 정주영.박지성 오형맞습니다,작년 다음 인물란 쳐보면 전부 비형으로 떳습니다,비형들이 돌아다니면서 거짓으로 덮어씌우드라고요..실질적으로 당사자들이 혈액형 확인 시켜도 기록이 남았다는거짓으로 비형드리 장난질 칩니다,애초에 비형은 인물이 생길수없는 혈액형ㄴ입니다,, 그래서 거짓으로 왜곡하는거고요,,요 근래에는 혈액형들이 거의 드러나니까 증명할수 없는시대의 다른나라사람인 간디가 비형이다고 주장하는 비형들의 날조 왜곡이 두드러지드라고요,제발 자신의 능력으로 사세여 날조나 왜곡으로 살지 마시고요
  • ㅜㅜ
    울나라 대통령 혈액형 정확근거도//에이형,,,박정희,김대중,최규하/비형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오형 노무현 이승만 윤보선/ 에이비형 노테우 김영삼..제발 비형분들 자신들의 혈액형 컴플레스 가진것을 알겠는데 박근혜같이 계속 거짓맗을 밥먹듯이 하지는맙시다,또는 이맹바기처럼 거짓말이 일상화 되니,비형으로 욕얻어먹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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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무더위에 대처하는 방법

 


 올 여름은 유난히 더운 것 같습니다. 저만 그런가요?ㅎ
폭염이 발생할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폭염 발생 시 한낮의 뜨거운 햇볕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온도가 높은 한낮에는 되도록 천천히 걷고 격렬한 운동은 삼가하고, 노약자는 야외활동을 삼가고 시원한 장소를 찾아 더위를 피해야 합니다. 외출 시에는 가볍고 밝은 색 계통의 얇은 옷을 헐렁하게 입고, 챙이 넓은 모자나 양산을 써서 햇볕을 가리고, 피부가 장시간 햇빛에 노출될 때는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 피부를 보호합니다. 야외 근무자는 시원한 장소에서 평소보다 자주 휴식을 취합니다.

 식사는 균형 있게, 물은 많이 섭취하며, 육류, 생선, 콩, 잡곡, 신선한 야채·과일 등을 골고루 충분히 섭취하고, 한꺼번에 많이 먹는 것은 피합니다. 탄산·알코올·카페인이 들어있는 음료는 피하고, 물은 갈증이 나지 않더라도 규칙적으로 자주 마십니다. 위생적인 생활 습관을 갖도록 하며, 물은 끓여먹고, 날 음식은 삼가고, 손발을 깨끗이 합니다. 음식은 오래 보관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상한 음식은 버리고, 조리 기구는 청결히 사용합니다. 올바른 냉방기기 사용법을 숙지하여, 실내외 온도차를 5℃ 내외로 유지하여 냉방병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건강 실내 냉방 온도는 26~28℃) 한 시간에 한 번씩 꼭 10분간 환기하고, 2주에 한번은 필터를 청소하고,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밤새 켜두는 것은 위험하므로 집안을 미리 시원하게 하고 잠들기 전에 끄거나 일정시간 가동 후 꺼지도록 예약해 둡니다. 에어컨 가동 중에는 창문을 모두 닫고 커튼이나 블라인더로 직사광선을 차단하면 냉방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위의 내용들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기본만 지켜도 폭염을 어느정도 이겨낼 수 있을겁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참고로 위 내용의 출처는 대한민국 국가기록원 나라기록 포털 입니다. 유용한 정보가 많으니 한번쯤 들러보세요!
http://contents.archive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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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중요기록물 정리로 상반기에만 4만명 고용

 


 대한민국 국가기록원(http://www.archives.go.kr/)은 국가 주요 기록물의 체계적 관리 및 신속한 열람활용을 위해 2009년도 예산 조기집행으로 대대적인 기록물 정리사업을 추진 완료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정리사업 대상은 정부 각 부처에서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한 중요 기록물 약 18만권(5톤 트럭 60여대 분량)으로, 이 기록물들은 재편철 및 색인목록 DB화 작업 등을 거쳐 영구적 보존을 위한 보존서고에 배치됐다.

 이 사업에는 6월 말까지 예산 35억이 투입되었으며, 상반기 중 약 40,000개의 일자리(일평균 300명 고용)를 창출했다.

 또한 '일자리 창출 및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예산 집행의 취지에 맞게 채용인력의 일부분을 저소득 계층, 실직세대 구성원 및 청년실업 대상자로 선발했다.

 이번 기록물 정리사업 참여자들은 “국가기록의 영구보존을 위한 정리 사업에 자신이 참여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가계소득에 긴요하게 도움이 되었다”며 이같은 사업이 향후에도 지속되기를 희망했다.

 한편, 국가기록원은 2009년도 추경예산을 활용한 '국가기록물 정리 2차사업'도 추진하고 있어, 올 말까지 이관된 중요 기록물 35만권을 추가로 정리하는 동시에 일평균 약 500명(총 580,000개)의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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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유네스코와 손잡고 세계기록유산 유치


 국가기록원(http://www.archives.go.kr/)은 지난 23일 성남시 수정구에 소재하고 있는 『나라기록관』에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기록문화 유산 보존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앞으로 기록문화 관련 연구 및 교류 사업에 대해 상호 자문을 수행하고, 국제 교류 사업에 향후 협력하기로 하였다.

 양 기관은 특히 내년 6월 서울에서 개최 예정인 국제기록문화전시회』에 출품될 각국의 대표적인 기록물뿐 아니라 세계기록유산 등을 유치하기 위한 포괄적인 협력도 추진하기로 합의했으며, 이 외에도 소장 도서 및 자료의 공동이용을 위한 방안도 함께 마련하는 등 폭 넓은 협조체제를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그간 양 기관은 2002년 기록보존 관련 워크숍을 시작으로 2006년 몽골 기록유산보호사업 지원 사업을 공동 수행(유네스코 주관, 국가기록원 후원) 했고 2007년에는 스리랑카 기록유산보호사업에도 참여한바 있다.

 한편 이날 협정식에서 박상덕 국가기록원장은 “세계 기록문화유산을 6건이나 보유한 기록 강국의 이미지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함께 국,내외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며 “기록문화 창출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함께 기울여 나가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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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답사기 - 신라의 천년고도를 만나다.

 


 우리가 처음 간 곳은 국립 경주 박물관. 도착하니 최경숙 교수님과 조교님이 우릴 기다리고 계셨다. 이 곳은 어릴 때부터 여러번 와본 곳이지만 그 날은 죽은 박물관이 아닌, 살아있는 국립 경주 박물관과 대화를 해 볼 참이였다. 그러나 내 노력이 부족했는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박물관을 잘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성덕대왕신종. 일명 에밀레종이다. 아이를 녹여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카이스트의 성분 분석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나는 예전에 들은 에밀레종의 소리를 잊을 수 없다. 직접 타종된 것은 아니고 녹음된 것이었지만 충분히 아름다웠었다. 시간관계상 나는 에밀레종 앞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에밀레종 이외에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두개의 금관이었다. 고등학교 때 읽은 ‘역사스페셜’이라는 책에서 본대로 금관의 모양은 사슴 뿔이 두 개 그리고 나무가 세 그루였다. 두개의 사슴뿔은 토테미즘의 흔적인데, 나무의 의미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또한 신라의 금관은 왕이 평소에 착용하던 것이 아니라 장례용이라고 한다. 역시 시간관계상 금관을 지나쳐 다른 것들을 차례로 보았다. 유홍준 교수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아는 유물에는 관심이 생겼지만 내가 전혀 모르는 유물은 그냥 보고 지나치게 되었다. 부산에 돌아가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을 나와 우리는 차도를 따라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넓은 터가 나왔다. 이곳이 반월성터. 신라 궁전의 일부였다는 이 곳이 지금은 숲이 우거지고 풀이 나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떠올리게 했다. 야은 길재의 ‘오백년 도읍지를’이라는 시조가 떠오르는 순간 이였다. 우리는 이 곳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먹고 월성 안에 있는 석빙고로 달려갔다. 한 여름에도 거의 완벽하게 얼음을 저장했다는 석빙고는 안타깝게도 입구에 철문이 설치되어 잠겨있었다. 사전조사에 따르면 선조들은 매년 2월말 강가에서 얼음을 잘라서 저장한 뒤 6월부터 10월까지 수시로 그 얼음을 꺼내 더위를 물리쳤다고 한다. 현존하는 6개의 석빙고의 하나인 이곳도 두 단계의 과정을 통해 얼음을 저장했을 것이다. 1단계는 얼음 저장에 앞서 겨울 내내 내부를 냉각시키는 것이고, 2단계는 얼음을 넣은 뒤 7~8개월 동안 얼음을 녹지 않게 저장하는 것이다. 우선 1단계의 과정에 숨어있는 비밀은 바로 출입문 옆에 있는 날개벽이다. 겨울에 찬 바람은 이 곳에 부딪쳐 소용돌이로 변하고 이 소용돌이는 빠르고 힘차게 내부 깊은 곳 까지 밀고 들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철 보통의 지하실 온도가 섭씨 15도인 것에 비하여 석빙고 내부 기온은 영하 0.5도에서 영상 2도라고 한다. 그 다음 단계는 얼음을 어떻게 보존하는가인데 실재로 석빙고 안의 얼음은 녹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거의 미미할 정도로 녹았을 뿐이다. 이렇게 찬 기온을 유지한 데는 3가지 열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절묘한 천장 구조이다. 화강암의 천장은 1-2 미터의 간격을 두고 4.5개의 아치형 모양으로 만들어져 그 사이에는 움푹 들어간 빈 공간이 있다. 이곳이 바로 내부의 더운 공기를 빼내는 일종의 에어포켓인 것이다. 두 번째는 바로 환기구이다. 위쪽에 설치된 환기구는 에어포켓에 갇힌 더운 공기를 밖으로 빼낸다. 이것은 바로 더운 공기는 위로 뜬다는 사실을 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석빙고 내부의 온도는 한여름에도 0도 안팎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다 3번째는 얼음에 치명적인 물과 습기를 빠르게 밖으로 빼내는 배수로이다. 또한 빗물을 막기 위하여 석빙고 외부에 석회와 진흙으로 방수층을 만들었다. 그리고 얼음과 벽 및 천장 틈 사이에는 밀집, 왕겨, 톱밥 등을 단열재로 채워 넣어 외부열기를 차단하였다. 거기에다 외부의 잔디는 햇빛을 흐트러뜨려 열 전달을 방해하는 효과가 있으니 석빙고의 얼음은 한여름에도 거의 녹지 않고 견디었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것들을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컸다. 석빙고 입구를 막고 있는 철문이 원망스러웠다. 어쨌든 선조들의 지혜에 경외감이 들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또 다시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 쯤 걸었을까. 우리는 곧 고풍스러운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김알지의 탄생설화와 관련된 계림이었다. 한번도 가본적은 없었지만 김알지의 설화는 익히 알고 있었다. 최경숙 교수님이 설명하실 때 박혁거세의 설화가 얽힌 곳이라고 해서 의아했었는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이 맞았다. 아마 교수님께서 잘못 말씀하신 듯 하다. 이미 녹초가 되어있던 나는 계림의 멋들어진 나무들과 사진을 몇 장 찍고 나서 벤치에 쓰러지듯 앉았다. 그러나 휴식도 잠시 우리는 또 다시 걸어야 했다. 좌우로 커다란 봉분들을 지나 도착한 것은 내물왕릉. 중․고등학교 때 많이 듣던 왕중의 하나 인데 별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냥 내물왕 때부터 중국문화를 수용하기 시작했다는 정도밖에는. 거대한 내물왕릉을 지나 천마총에 도착했다. 이 곳은 6학년 수학여행 때 한번 와 본적이 있어서 이번이 두 번째였다. 몇 점 안되는 유물들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천마총 입구에는 에어커튼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피곤과 더위에 힘겨워 하던 나에겐 에어커튼에서 나오는 바람이 감로수처럼 느껴졌다.

 


 다음 목적지는 안압지. 역시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와 본적은 있었지만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지금의 기러기와 오리가 노니는 연못이라는 뜻의 안압지라는 이름은 신라가 망하고 폐허로 변한 한참 뒤에 조선시대 묵객들이 갈대와 부평초가 무성하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다닌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삼국사기를 보면 674년에 안압지가 조성된 것으로 되어있는데 여기에 한가지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 674년이면 나․당 전쟁이 끝나지 않았을 때로 알고 있는데 그럼 전쟁 중에 대규모 공사를 벌인 이유는 무엇일까?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봤지만 아직 대답이 올라오질 않았다. 권덕영 교수님께서 내 글을 읽고 의문을 시원하게 대답해주시리라 굳게 믿는다.

 이번 경주 답사의 마지막 코스는 황룡사지였다. 한번도 가본 적은 없었지만 중학교 때부터 교과서나 여러 참고서에서 많이 봤었던 곳이다. 사진에서 보던대로 13세기에 몽고군의 침입으로 모든 건물이 불타버려 넓은 벌판에 주춧돌들만 보였다. 비록 실물은 볼 수 없었지만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지식은 나로 하여금 황룡사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백제의 미륵사와 비견될 만한 거대한 규모와 신라 삼보중 하나인 거대한 9층 목탑 등 신라 제일의 국찰의 기상이 느껴졌다. 하루 종일 정말 너무 피곤했지만 이렇게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는 경험을 나는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다. 내 젊음을 무기 삼아 앞으로도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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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경우
    왜 전쟁중인데도 그 곳에서 공사가 벌어졌냐 하는 의문은 그 때 그 전쟁이 그 곳과는 무관하였다고 보면 풀립니다. 신라는 경상남북도에 국한된 나라도 아니였고, 백제도 전라남북도와 충청남북도 정도 크기의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한반도 거의 전부와 중국대륙의 동해안지방까지 이르는 영역이 백제의 영토였고 신라는 더 윗쪽에 있는 큰 나라였을 것입니다. 고구려는 만주와 사할린 그리고 몽고지방까지 이르는 대 국가였어야 모든 의문이 풀립니다. 아끼히도 일본천황이 내한했을 때 자기의 조상이 백제의 왕손이라 하였습니다. 신라가 경상도지방에 있었다면 그보다 먼 백제의 왕이 일본에 가서 왕이 될 연관성이 멀어집니다. 경주는 당시의 전쟁과는 아주 먼 후방이었고 낙동강전선 이남의 백제의 영역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후 지금의 북한땅에서 벌어졌던 전투에서 백제가 항복하면서 전쟁은 끝났고 경주와 부산등지에 피신하였던 백제 왕실은 당시 백제의 식민지였던 일본으로 건너가 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일본역사선생으로부터 교육받은 역사선생님들로부터 배운 우리의 역사를 이제 이상한 점은 파 헤쳐 진실을 밝힐 때입니다. 임진왜란과 일제시대에 우리의 역사는 말살되고 조작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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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이달의 기록을 직접 선정해주세요!

 대한민국 국가기록원에서 국민의 참여를 통해 주제를 선정하여 더 나은 ‘이 달의 기록’을 서비스하기 위해 주제 선정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국가기록원이 월별로 뽑은 주제안 중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를 지정하거나, 의견란에 그 외의 주제와 다양한 의견을 기재하실 수 있습니다.


이 달의 기록’ 주제 선정에 참여하신 분 중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신 분께는 연말에 소정의 기념품도 주어진다고 하니 꼭 한번 참여해보세요!


참여 하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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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의 경부고속도로 페이지 후기!
국토의 대동맥’이라 불리는 경부고속도로의 건설기록과 현장을 자료로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경부고속도로에 관한 주요 소장기록물을 콘텐츠로 개발해 경부고속도로 전구간 개통일에 맞춰 7월 7일(화)부터 나라기록포털(contents.archives.go.kr)을 통해 제공한다고 밝는데요.
제가 직접 체험해봤습니다.



먼저 메인화면입니다. 한반도 지도에 경부고속도로가 표시되어 있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메뉴구성입니다. 개요에서는 이 페이지의 개설 취지와 경부고속도로의 개통 목적에 대해 다루고 있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내용이죠!

 메인 페이지 중앙 부분에는 사진현장이라는 공간이 있었는데, 경부고속도로 계획부터 완공까지 사진들을 분류해놓아 네티즌들의 흥미 유발과 편의를 위해 노력한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바로 밑에는 경부고속도로 길 여행이라는 메뉴가 있었는데, 경부 고속도로 곳곳의 과거와 현재 사진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좋은 취지로 개설한 페이지니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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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의 개발 목적은 무엇일까?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기간 고속도로로, 1968년 2월 1일 착공하여 1970년 7월 7일 완전 개통되기까지 2년 5개월이 걸렸습니다. 당초 고속도로 건설은 재정과 기술 및 인적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되었으나, 정부는 “국토 대동맥” 건설을 향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빠른 시간에 완공되었기에 곳곳에서 보완 작업도 있었지만, 경부고속도로가 국토개발의 효율적 활용과 경제적, 사회적 발전의 전환점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이 고속도로는 전체 길이 428km로, 약 429억원의 예산, 900만여명의 인력이 동원된 대규모 공사였습니다. 이러한 “피와 땀”의 결과가 우리나라 성장의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1960~1970년대, 고속도로 건설을 향한 의지와 열정은 기록물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물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나라기록 토픽이 오픈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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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밝혀내지 못한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대구 성서초등학생 5명이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면서 와룡산 골짜기로 들어간 후 행방불명되자 가족들은 경찰에 이를 신고하였다. 경찰은 처음에 단순가출로 판단했으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이들이 귀가하지 않자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대규모의 경찰력을 동원하여 와룡산 주변에 대한 수색에 나섰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다시 실종된 지 백일이 지나자 특별수사요원 50명을 선발하여 실종어린이 부모들과 1주일 동안 서울, 부산 등 대도시의 앵벌이 조직과 아동보호소 등을 뒤졌지만 허사였다. 그 후 10년 동안 경찰을 비롯한 많은 기관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실종소년들을 찾기 위한 운동에 대대적인 동참을 하였다. 대구시는 수천만장의 전단을 제작·배부하였고, 교육부와 각급 교육청들이 개구리소년 찾기 캠페인을 벌였으며, 아이들의 사진이 담긴 광고전단지, 전화카드, 신문과 방송을 통한 홍보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허위제보, 무속인의 추측 등만 난무하였다.

 사건 발생 11년이 지난 2002년 9월 26일 오전 11시 30분경 대구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편 와룡산 기슭에서 도토리를 줍던 한 주민에 의해 개구리소년 5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뼈와 신발 등 유류품이 발견되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요원, 경북대 법의학과 교수 및 수사관 등 45명 합동으로 유골발굴작업 및 유골발굴지로부터 반경 150m 주변을 수색한 결과, 두개골 5구 등 유골 50여 점, 운동화 4켤레, 비닐구두 1켤레, 체육복 2벌, 파자마 1점, 팬티 4점, 잠바 2점, 내의 3벌, 양말 4켤레, 주황색 티 2점, 혁대 1점, 전자손목시계 1점, 장난감 1점, 탄두 351개, 탄피 1개를 발굴하였다. 발굴된 유골의 시료와 실종소년 어머니들의 혈액을 채취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DNA를 감정한 결과 실종소년들의 유골로 확인되었다. 실종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되자 그동안 달서경찰서에 설치되었던 수사본부를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45명으로 구성된 수사본부를 차려 재수사에 임했다.

 개구리소년들의 사망원인에 대해 경찰은 저체온사 혹은 동사를 주장한 반면, 경북대 법의학 교수팀은 아이들의 두개골에 난 여러 개의 흉기 흔적으로 보아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뒤 암매장 되었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해 사건은 사실상 미궁에 빠졌다.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남으로써 사실상 수사는 종결되었다. 그러나 실종사건 직후의 초동수사 및 수색작업의 실패, 유골발굴과정에서의 경찰의 현장 훼손, 사인을 둘러싼 논란의 실체 규명 실패 등으로 경찰수사에 많은 허점을 노출시켰다.

 특히 경찰이 유골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현장을 무분별하게 마구 파헤치는 바람에 원래 유골의 위치나 행태 등을 훼손하여 현장을 원형대로 보존하지 못했다는 점이 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장의 훼손은 나중에 사인 규명에서 저체온사 혹은 사고사 및 타살 여부를 밝혀줄 수 있는 최소한의 증거들을 훼손한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사건은 국내에서 가장 다양한 과학수사 기법이 동원된 사례이기도 했다.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일반 법의학을 비롯한 법의곤충학, 법의인류학, 토양학 등이 대거 적용됐다. 경북대 법의학팀이 참여하였고, 법의곤충학자가 시신발굴현장에서 파리 같은 곤충의 껍질을 수거해 조사를 벌였다. 유골과 옷가지에 묻은 흙이 와룡산의 것인지에 관한 토양학 검사도 했다. 곤충이나 토양이 와룡산의 것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 살해된 뒤 이 곳에 암매장되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외국의 저명한 법의인류학자, 고고학 전문 동물학자 등에게도 자료의 판독을 의뢰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제공.요청 받은 것으로 The Neo Renaissance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는 많은 사건 기록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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