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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9)
외국인이 본 한국의 어색한 집단의식과 술문화

 


한국에 온 지 벌써 1년 반이 되었다. 그동안 학교답사를 통해 한국의 이곳저곳을 가봤고 많은 것도 직접 체험하였기에 어느 정도 한국생활과 한국문화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 가운데 내게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은 한국 사람의 집단적인 의식과 술 문화였다.

한국인들은 홀로 조용히 지내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처음에 와서 보기에 한국에서는 집단적 의식과 사회만 존재하고 마치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혼자 내리지 못하고 혼자 즐기지도 못하는 모습도 가끔 보게 된다. 그 가장 큰 예로, 한국 사람들은 대화 중 ‘우리’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우리나라, 우리 동네, 우리 회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우리 어머니, 우리 언니, 우리 아이라는 말까지 빈번하다.

베트남에는 공동사유가 개인사유와 잘 구별된다. 나라나 국가나 고향이나 민족과 같은 넓은  범위나 많은 사람이 같이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말할 때는 ‘우리’라는 말을 붙이고 반면 개인이나 가족과 같은 작은 범위에는 ‘우리’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나라, 우리 고향, 우리 회사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우리 어머니, 우리 언니, 우리 아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개인의 존엄성과 창의성도 무시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또 다른 예로 한국 사회에는 모임문화가 특별히 많다. 내가 다니는 대학원만 하더라도 개강·종강모임부터 학과모임, 전공모임, 동기모임, 신입생모임 등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인 모임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좁은 대학원에서도 이렇게 많은 모임이 있어서 일주일에 몇 번씩이나 자동으로 참석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같은 사람을 다른 모임에서 만나는 경우도 매우 많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모임은 같은 취미나 관심을 가진 동호회 또는 클럽의 정도만 있을 뿐인데 한국은 하나의 사회집단에서도 여러 가지 사유가 존재한다. 이렇듯 모임이 많다 보니 당연하게 회식과 술자리 또한 많게 된다. 여기에서도 한국 문화만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술 문화는 좋고 나쁨을 떠나 한국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많은 모임 속에서도 친분을 쌓는 가장 큰 원인은 회식을 통한 술자리라고 할 수 있다. 술은 보통 스트레스와 피로를 푸는 한 가지 방법이다. 하지만 음주는 좋은 습관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의 생각에 음주는 그들의 생활양식의 일부로 나쁜 습관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 같다. 모임의 친분을 쌓는 과정에서 당연한 것이고, 술이 들어가야 모임이나 놀이가 더 즐거워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베트남 사람들도 술을 마시지만 ‘술 문화’와 같은 정의가 전혀 없다. 그 대신 ‘차 문화’가 좀 강한 편이다. 베트남에는 결혼식, 장례식, 제사와 같은 중요한 일들부터 쉬는 시간에 친구와 교섭하는 것과 같은 보통 일들까지 모두 다 ‘차 문화’와 긴밀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이러한 차 문화는 한국의 술 문화처럼 인간관계를 맺거나 우정을 다지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글 : 당람장 베트남인·한국학중앙연구원 석박사 통합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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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전에 과술자리에 교수님이 버클리 수학과애를 버려놓고 갔는데..
    술도 못한다지, 한국말 잘 못하지, 노래방 싫어하지... 같이 놀 수가 없더라고.
    사실 우리 문화에서 술마시고 노래방가지 않으면 모하고 같이 놓아야하나.. 막막했쥐..
    • 좋은 나쁘든 그게 지금 우리의 문화라는거ㅋㅋ
      근데 버클리면 U.C버클리?
    • 그럴듯;; ㅋ 놀아주느라 내 술 못마셨어 ㅠㅠ
      한국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박혔던데 ㅋ
    • 뿌리깊은불신?
      술 문화와 불신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지?ㅋ
    • 아니 그런게 아니라;;
      한국어를 다 이해못하니까..
      한국 사람들이 하는 약간 입발린말을 영어로 하니까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나봐.

      만약에 걔가 학원에서 수업을 했는데.. 학원에서 수업 반응이 안좋아도 우린 예의상.. 안좋네요 그렇게 말하진 않잖아.
    • 뿌리 깊은 불신이라기보다는 그 애가 한국 문화를 이해 못하고 있네ㅎ 한국에서 강사하려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ㅋ 근데 U.C버클리면 거의 아이비리그 급인데...거기 애가 한국에서 학원강사나 하고 있을리가 없는데, 아마 잘못 안듯ㅋㅋ
      일본애들은 우리보다 가식이 한 레벨 위잖아ㅋㅋ
  • 일본인 아니여 - 금발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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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파문을 일으킨 대한민국 10대 범죄 사건

 아래의 범죄 사건들은 우리나라 경찰이 수사한 범죄 사건들 중 큰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킨 사건들이다. 수많은 경찰관이 동원되었으나 아직까지 미제인 사건, 진범을 잡았다고 했으나 법원에서 무죄 석방된 사건, 특정 사건들을 계기로 인권의식의 고양과 수사기법의 발전을 가져온 사건들이다. 범죄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범죄의 발생 원인이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치정에 얽힌 사건, 금품을 노린 사건, 우발적인 사건, 정신병에 의한 사건 등에서부터 불특정 다수를 노린 사건 및 무동기 범죄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범죄의 발생 원인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개개 사건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평가가 뒤따라야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1. 원효로 윤노파 살해사건
1981년 8월 4일 71세의 점술가 윤경화와 그의 가정부 및 6세의 수양딸 등 3명이 둔기로 머리를 난타당하고 목이 졸린 채 숨진 사건이다. 피의자에 대한 강압·고문수사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다.

2. 삼성동 여대생 피살사건
1981년 9월 21일 부산산업대학 공예과 여학생 박상은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한국상사 야적장 인조대리석 분쇄 더미 속에 둔기로 머리와 얼굴 등을 심하게 얻어맞고 숨져있는 채로 발견된 사건이다. 두 명의 피의자가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된 사건으로 증거의 중요성을 알게 한 사건이다.

3. 우순경 사건
1982년 4월 26일 오후  9시 30분경  경남 의령군 궁유면 지서에 근무하던 우범곤이 술에 만취해 지서의 예비군 무기고에서 수류탄 7발과 카빈소총 2정, 실탄 180여발을 들고 나와 주민들에게 무차별 난사한 사건으로 사망 56명, 부상 34명이라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관 적성검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4. 서진룸싸롱 사건
1986년 6월에 조직폭력배인 강진석파가 맘포파와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던 조원섭 등 4명을 서진룸싸롱에서 무자비하게 난자하여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장본인 장진석 일당은 모두 체포되고 후에 주범들은 사형에 처해졌다.

5. 화성 연쇄살인사건
1986년 9월 19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4년 7개월 동안 10차례에 걸쳐 경기도 화성시 태안 일대에서 일어난 부녀자 강간살인사건이다. 마지막 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2006년 4월 2일 만료되었고, 아직도 화성경찰서 강력3팀에서 수사 중인 사건으로 사건일지와 기록은 영구 보존키로 했다.

6. 지존파 사건
지존파는 1993년 5월부터 1994년 9월까지 돈 많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중년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5차례 연쇄납치로 금품을 빼앗고는 모두 살해하여 자신들의 집 소각로에서 시체를 태워버렸다. 살인, 소각공장운영, 인육 먹기, 살인실습 등과 같은 잔인성으로 유명한 사건이다.

7.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1991년 3월 26일 개구리를 잡으러 집을 나간 대구 성서초등학교 어린이 5명이 실종된 사건이다. 이에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으나, 2002년 9월 26일 대구 달서구 용산동 와룡산 4부 능선에서 이들의 유골이 발견될 때까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8. 신창원 탈옥사건
신창원은 1997년 교도소를 탈옥한 후, 2년 6개월 동안 108건의 강 절도를 저지르며 전국 각지로 출몰한 탈옥수이다. 그는 1994년 11월 16일 부산교도소로 이감된 뒤 1997년 1월 20일 탈출하기까지 모범수로 생활하며 감시가 느슨해지자 감방 내 화장실 환기구의 쇠창살을 쇠톱으로 잘라 탈출한 후 주로 다방여종원들과 동거하며 도피한 사건이다.

9.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2003년 9월 명예교수 부부 살인을 시발로 2004년 7월 검거될 때까지 총 21명을 잇달아 살해한 사건이다. 2004년 3월부터 동년 7월 검거 시까지는 주로 성매매 여성들을 집중 유인·살해하였다. 범행도구는 자신이 직접 만든 망치나 칼 등을 이용하였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르거나 시체를 토막 내 야산에 묻기도 하였다.

10. 오대양 사건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북2리 오대양 용인공장 내 구내식당 천장 위에서 오대양주식회사 대표 박○○ 외 31명이 집단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숨진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오대양 공장종업원과 회사직원들이었고, 사장인 박○○와 그녀의 자녀(2남 1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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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수탉, 일본은 벌레…그럼 우리는?

내가 중국인 친구에게 재미있게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중국 지도와 관련한 이야기였다. 중국 지도를 자세히 보면 수탉처럼 생겼는데, 중국인은 이 지도 모양을 가리켜 '중국은 수탉. 일본은 벌레'라고 하며, 수탉인 중국이 벌레를 잡아먹을 상이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동북아 지도를 여러번 다시 보게 되었다.

 중국이 수탉이고 일본이 벌레면 한국, 한반도는 무엇인가? 가만히 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수탉의 목 부위를 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턱수염 같기도 하다. 이 재미있는 지도 이야기를 더 확대해석하면 중국이 일본을 잡아먹을 수는 있어도 한국을 잡아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수탉이 자기 턱수염을 어쩌겠는가? 단지 견제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수탉에 먹히려는 벌레인 일본은 수탉의 위협을 어케 방어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수탉의 턱수염을 이용하는 것이다.

 현재 동북아 한중일 삼국의 실제 상황은 묘하게도 이같은 지도 이야기가 반영되어 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급격한 발전에 대해 한국과 일본는 엇갈린 반응을 보이는데, 한국은 기회로, 일본은 위기로 본다. 실제 한중일 무역 수지를 살펴보면 일본은 중국에서 무역적자를 보고 있으며 이를 한국과의 무역흑자로 채우고 있고 한국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한해 150억불 이상의 흑자를 보고 있으며 일본과의 교역에서 이 정도의 적자를 보고 있다.    

 큰 덩치의 중국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1세기초 그들의 계속된 성장과 발전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21세기초 세계의 가장 확실한 시장은 중국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중국과 인접한 우리는 성장하는 중국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21세기 초 운명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

 다시 지도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 답을 구해보면 우리는 중국의 급소 혹은 턱수염이 되어야 하며,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턱수엽을 잡고 끌면 제 아무리 큰 수탉이라도 맥을 추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지정학적으로 우리에게는 이미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분단의 역사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은 두 동각난 반도를 적절히 활용하며 맥을 못추게하고 있다. 턱수염을 반으로 잘라놓으면 턱수염을 잡아 당길 수가 없는 이치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대한반도 외교정책은 현재 반도 상황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지금 이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반면 향후 반도의 통합 혹은 자유 왕래가 실현된다면 이를 통해서 대륙을 견인할 수 있는 튼튼한 '턱수염'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중국을 움직일 수 있고 중국을 움직여 일본을 방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중국의 급소를 확실히 쥐고 중국을 움직이는, 즉 리드하는 위치에 서야 한다.

 대륙을 리드할 수 있는 조건은 지정학적으로 이미 갖춰져 있으나 이보다 더 중요한 조건은 바로 인재이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중국을 리드할 수 있는 것은 준비된 인재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중국의 아이디어 뱅크를 능가하는 우리의 아이디어 뱅크를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삼성의 '천재 경영론'은 현시대적 상황에 적중한 경영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인재를 중시하고 인재를 모으는 전략 및 정책과 함께 한국 자체의 교육 수준을 높이고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여 시대적으로 꼭 필요한 인재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대중 관계에서 중국내의 조선족과 재중한국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 내 조선족과 재중한국인의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도 중국 내부를 효과적으로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대중 관계에서 '지피지기'의 분석력을 높여야 한다. 

 경제위기를 맞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며 우리는 역사상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시대를 타고 났다. 우리가 좀 더 지혜롭고 현명해진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할 수 있으며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북아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턱수염을 제대로 잡으면 꼼짝못하지만 턱수염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수탉이 머리를 몇 번만 흔들어도 나가 떨어지게 된다. 우리는 이를 잊어서는 안된다. 현재 우리는 중국이 조금만 흔들어도 휘청이곤 한다. 이는 급소를 쥐고도 주체가 되지 못하는 참으로 한심한 현실인 것이다. 이는 한국 정치인과 관료들 중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과분한 직책을 부여받은 자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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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독도에 해병대 주둔 주장…정부의 반응은?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14일 “독도에 해안경비대(경찰)가 아닌 해병대(군대)가 주둔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가운데 청와대는 원론적이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홍 대표는 14일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울릉도에 중대급 해병대를 배치하고, 그곳에서 1개 소대씩 돌아가면서 독도에서 순환근무를 하도록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이어 “이 문제에 대해 정부와 협의를 마쳤으며 국방부 장관은 적극 환영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홍 대표는 최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면담 내용을 언급하며 “그 자리에서 독도 해병대 주둔에 대해 외교부 입장을 물으니 김 장관은 ‘정부와 여당이 결정하면 외교부는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청와대에서는 일단 홍 대표의 주장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여당 대표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으로 이해한다”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무총리가 이미 국회 답변에서 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이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검토라는 말이 자칫 독도를 분쟁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실질적으로 독도에 경찰이 근무하는 것이나 해병대가 주둔하는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주요 관계자는 “독도 해병대 주둔 문제는 지금까지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았다”고 밝혔고, 다른 핵심 참모도 “우리에게 득이 된다면 빨리 하겠지만 실속이 있는지, 없는지 봐야 하고 외교적으로 논란의 가능성이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 같은 반응은 여당 대표의 주장을 존중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라는 점을 기술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8ㆍ15 경축사에 독도 문제가 포함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직접적 언급은 없을 것 같고 한일관계에 대해 우회적으로 점잖게 언급할 것”이라며 “일본 우익 단체 움직임, 교과서 문제 등에 대해 우회적으로 적정한 수준의 언급이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 이 기사는 뉴스몬(http://newsmon.net)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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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상징후로 군 비상…멀어지는 통일, 문제는?

최근 발생한 서해 대청도 교전 이후 북한과의 갈등이 고조 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5일 오후 북한군의 해안포 레이더가 작동한 사실이 포착돼 군 당국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1시경 북한 황해남도 지역에서 해안포 사격 레이더의 작동 징후가 포착됐는데요. 이에 군은 즉시 경계태세에 들어갔고, 대청도에 정박해 있던 참수리호도 비상상황에 돌입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군 관계자는 "서해지역의 북한군에 이상징후가 포착돼 전방경계 중이던 우리 함정이 일부 남하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전했습니다.

걱정이 됩니다. 북한이 남침할까봐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평화통일과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2000년도 초반에는 마치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을 앞둔 지금은 오히려 통일이 보이지않는군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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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깽수
    지금으로서는 통일이 멀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통일이라는게 국제정세도 중요하고

    당사국의 입장에서 본 타이밍과도 맞아야 겠지요.

    독일만 보더라도 통일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경제수준도 다시 돌아오고 했다더군요.

    우리나라는 지금 통일 해 봐야 더 후퇴되면 후퇴되었져.

    요점이랑 멀어졌네여;; 답은 하나에요. 대화or전쟁. 뻔히 아는데 몽니를 부리는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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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생체실험 보고서 파문, 신생아 살해도?


북한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했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와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5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미국 피터슨연구소의 마커스 놀랜드 선임연구원은 최근 KDI 세미나에서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경험한 억압과 처벌'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이 같은 설문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번 설문 조사 결과는 2004년 8월~2005년 9월 중국 11개 지역에 거주하는 1천346명의 탈북자와 2008년 11월 한국에 거주하는 300명의 탈북자를 일대일 인터뷰해 작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두 차례의 조사에서 중국 거주 탈북자의 55%는 '북한 수용소에서 생체 실험을 당했다'고 답했으며 '신생아 살해를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5%에 달했습니다. 한국 거주 탈북자 중 7%도 '신생아 살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또한 '처형을 목격했다'는 한국 거주 탈북자가 응답자의 51%에 달했고 '고문으로 인한 사망을 봤다'는 중국 거주 탈북자는 60%에 이르렀습니다. '급식 박탈'은 중국 및 한국 거주 탈북자 대부분이 겪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사실이라면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1세기에 생체실험이라니요.
하루 빨리 통일의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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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미인계 화제…폭포에서 여군 목욕시켜?

분단 된지 반 세기가 훨씬 넘는 동안 남북한 군인들은 비무장지대(DMZ)를 사이에 두고 총을 겨누고 대치하고 있지만 이런 살벌한 현장 속에서도 한때 미녀들을 내세워 상대편을 유혹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됐습니다.

북한 내부 소식을 전문으로 전하는 열린북한통신은 2일 "비무장지대를 사이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군인들이 미인계로 서로를 공략한 사실이 있다"면서 "남한은 수영장 건설을 통해, 북한은 20m 가량의 폭포를 통해 이같은 일을 벌였다"고 보도헸습니다.

대한민국은 지난 1992년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강원도 양구군 가칠봉 정상(해발 1242m)에 수영장을 지어 이곳에서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이승연이 미스코리아 미로 당선됐었습니다.여튼 그 때 수영복 심사 때문에 당시 북한 군인들이 잠 못들어 했다고 합니다.

한편, 북한은 가칠봉을 마주보는 비무장지대 북측 지역 운봉(일명 스탈린고지, 해발 1358m)과 매봉(일명 모택동고지, 해발 1290m)에 있는 폭포에서 여군이 자주 목욕을 하는 방법으로 남한의 미인계에 대응하면서 남한 군인들을 현혹시켰다네요. 이런 일 때문에 이 폭포의 이름도 '선녀폭포'로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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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광복절, 8·15광복에 대해 알아보자!

 8·15 광복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의 패전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일본의 강제합병(1910.8.22)이후 해방 전까지 계속된 우리민족의 독립투쟁이 큰 역할을 하였다. 1910년 이전에는 애국계몽운동·독립협회운동·반침략호국운동이, 이후에는 대한제국의 부활을 위한 복벽운동이 전개되었으며, 1919년 3·1운동이후에는 민족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독립투쟁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다.

 1919년 3·1운동을 시작으로 전개된 우리민족의 독립투쟁은 현대적 국민국가수립을 위한 준비단계였다. 해외에서는 3·1운동 직전 2월에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의회가, 3·1운동 직후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1919.4.13)되었다. 국내에서는 임시정부선포문을 발표(1919.4.23)하는 등 곳곳에 정부가 설립되었다. 1920년대는 민족유일당운동이 전개됐으나 성공하진 못하였다. 한편 1910년경 만주지방에서는 독립군의 무장항쟁이 활기를 띠었다. 간도 삼원보(三源堡)의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는 독립군 3,500명을 수료시키고, 김좌진(金佐鎭)은 간도에서 1,600여명의 독립군을 양성하였으며, 연길현(延吉縣)에서는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이 활동하였다.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 이후에는 독립군부대가 통합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설립하였다.

 국내의 광복운동은 사회운동의 형태를 취하였으며, 민족주의노선과 사회주의혁명노선으로 양분되었다. 1927년 2월에 재통합을 위해 신간회가 조직되었으나 1931년에 해체되었다. 해외에서는 정치단체가 1935년 7월에 민족혁명당으로 통합되었으나, 1938년에 좌익계 독립운동단체가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함으로써 민족진영과 좌익사회주의진영으로 양립되었다. 그러나 1939년에 김구(金九)와 김원봉(金元鳳)이 민족적 통일기구로 전국연합전선 협회를 성립시켰으며, 1940년에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으로 발전하였다. 1940년 9월에 충칭(重慶)에서는 광복군이 창설되어 대일 무력항전을 전개하였다.


 광복 등 우리 역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국가기록원(http://archives.go.kr/)을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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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8월 1주차 녹색성장 정책 홍보

 국가기록원 서포터즈의 임무 중 하나인 정책 홍보입니다.
이번 주에는 친환경 보존,복원 기술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공적으로 추진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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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중요기록물 정리로 상반기에만 4만명 고용

 


 대한민국 국가기록원(http://www.archives.go.kr/)은 국가 주요 기록물의 체계적 관리 및 신속한 열람활용을 위해 2009년도 예산 조기집행으로 대대적인 기록물 정리사업을 추진 완료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정리사업 대상은 정부 각 부처에서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한 중요 기록물 약 18만권(5톤 트럭 60여대 분량)으로, 이 기록물들은 재편철 및 색인목록 DB화 작업 등을 거쳐 영구적 보존을 위한 보존서고에 배치됐다.

 이 사업에는 6월 말까지 예산 35억이 투입되었으며, 상반기 중 약 40,000개의 일자리(일평균 300명 고용)를 창출했다.

 또한 '일자리 창출 및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예산 집행의 취지에 맞게 채용인력의 일부분을 저소득 계층, 실직세대 구성원 및 청년실업 대상자로 선발했다.

 이번 기록물 정리사업 참여자들은 “국가기록의 영구보존을 위한 정리 사업에 자신이 참여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가계소득에 긴요하게 도움이 되었다”며 이같은 사업이 향후에도 지속되기를 희망했다.

 한편, 국가기록원은 2009년도 추경예산을 활용한 '국가기록물 정리 2차사업'도 추진하고 있어, 올 말까지 이관된 중요 기록물 35만권을 추가로 정리하는 동시에 일평균 약 500명(총 580,000개)의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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