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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논란, 의사가 아니라 장군이다?


안중근 의사의 존칭을 장군(將軍)으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개인적 희생을 강조한 ‘의사’보다는 ‘장군’이 국가적 항일 투쟁의 의미를 더 명확하게 드러낸다는 주장인데요. 그러나 의병은 정식 군대가 아닌 데다 장군 존칭으로는 안 의사의 다양한 면모를 담지 못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고 합니다.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는 20일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다음달 26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여는 학술대회에서 존칭 변경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다양한 대국민 홍보 캠페인을 벌일 방침이다”고 밝혔습니다.

안의사가 뤼순 재판에서 자신을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밝힌 것이 이 제안의 근거입니다. 또 국가와 군을 대표하는 장군 존칭이 개인 자격인 의사보다 의거의 취지를 더 정확하게 담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정광일 대표는 “안중근의 공적을 국외에 알릴 때도 장군이란 말이 더 효과적”이라며 “의사는 국내에서 쓰이는 좁은 개념이다”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는데요.
찬성 측은 장군이란 말을 써야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국내 의군의 항일투쟁으로 부각할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했고, 반대 측은 ‘장군’ 호칭은 ‘군인으로서 안중근’만 부각될 뿐 안 의사의 사상이나 업적, 하얼빈 의거의 역사적 의미가 오히려 묻힐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는데요.

물론 호칭도 중요하지만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더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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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테러리스트
    안중근이 테러리스트라는 개독들은 또 뭐냐.. 원래 역사라는 해석 자체가 보는 입장과 관점에 따라 바뀌어 볼 수 있다. 독립투사가 테러리스트라는 건 우리나라가 아니라 완전 일본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으면 어느나라든 존중은 해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테러리스트라고 앞장서는 짓거리라는.. 웹에 떠도는 것 찾았습니다. 이거 꼭 보시길~ http://blog.daum.net/jjkkss69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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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광복절, 8·15광복에 대해 알아보자!

 8·15 광복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의 패전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일본의 강제합병(1910.8.22)이후 해방 전까지 계속된 우리민족의 독립투쟁이 큰 역할을 하였다. 1910년 이전에는 애국계몽운동·독립협회운동·반침략호국운동이, 이후에는 대한제국의 부활을 위한 복벽운동이 전개되었으며, 1919년 3·1운동이후에는 민족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독립투쟁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다.

 1919년 3·1운동을 시작으로 전개된 우리민족의 독립투쟁은 현대적 국민국가수립을 위한 준비단계였다. 해외에서는 3·1운동 직전 2월에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의회가, 3·1운동 직후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1919.4.13)되었다. 국내에서는 임시정부선포문을 발표(1919.4.23)하는 등 곳곳에 정부가 설립되었다. 1920년대는 민족유일당운동이 전개됐으나 성공하진 못하였다. 한편 1910년경 만주지방에서는 독립군의 무장항쟁이 활기를 띠었다. 간도 삼원보(三源堡)의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는 독립군 3,500명을 수료시키고, 김좌진(金佐鎭)은 간도에서 1,600여명의 독립군을 양성하였으며, 연길현(延吉縣)에서는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이 활동하였다.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 이후에는 독립군부대가 통합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설립하였다.

 국내의 광복운동은 사회운동의 형태를 취하였으며, 민족주의노선과 사회주의혁명노선으로 양분되었다. 1927년 2월에 재통합을 위해 신간회가 조직되었으나 1931년에 해체되었다. 해외에서는 정치단체가 1935년 7월에 민족혁명당으로 통합되었으나, 1938년에 좌익계 독립운동단체가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함으로써 민족진영과 좌익사회주의진영으로 양립되었다. 그러나 1939년에 김구(金九)와 김원봉(金元鳳)이 민족적 통일기구로 전국연합전선 협회를 성립시켰으며, 1940년에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으로 발전하였다. 1940년 9월에 충칭(重慶)에서는 광복군이 창설되어 대일 무력항전을 전개하였다.


 광복 등 우리 역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국가기록원(http://archives.go.kr/)을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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