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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2)
두바이-기적의 리더십


 

 <두바이 기적의 리더십은> 세계 최고의 호텔과 인공 섬, 사막의 스키장과 골프장 등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눈앞에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두바이의 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의 비전과 리더십에 대해 다룬 책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사막, 몇 년만 퍼내면 고갈될 것이 뻔히 예견되는 석유 매장량, 30만 명도 채 되지 않는 인구, 게다가 중동 지역이면서도 볼 만한 역사적 유적지 하나 없는 보잘 것 없는 불모지의 나라였던 중동의 작은 부족국가 두바이는 셰이크 모하메드의 리더십 아래 다른 도시와 국가가 감히 엄두도 못내는 창의력과 역발상으로 전 세계 금융과 물류와 관광과 엔터테인먼트와 언론, 심지어 고급문화까지 모두 끌어 모으겠다는 야심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두바이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것은 단순한 물량적 성장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나 세계 최고급 호텔 버즈 알 아랍이나 인공 섬 팜 아일랜드, 해저호텔 하이드로폴리스 등에서 온갖 상상력과 창의력이 번득이기 때문인데, 이 모든 과정에는 셰이크 모하메드의 기적의 리더십이 있다. 이 책은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그런 두바이의 모습을 화려한 컬러 사진과 생생한 여행정보를 곁들여가며 전달하고 있다. 그럼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요 내용과 핵심 메시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2 <두바이 기적의 리더십> 감상 및 분석

(1) 셰이크 모하메드의 리더십

 두바이는 요즘 전 세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두바이의 천지개벽은 셰이크 모하메드의 진두지휘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그는 현재 세계 리더십 전문가가 주목하는 인물이 되었고, 국가적 리더십 결핍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리더십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하는 통찰력, 도전과 모험정신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발전상을 머리에 그릴 줄 아는 상상력, 불가능은 없다는 자세로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는 실천력 등 리더십의 3대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는 지도자인데, 1995년 그가 왕세자로 지명된 뒤 10년 동안 두바이의 GDP는 80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로 폭증했다. 이는 두바이의 석유 부존량이 2020년쯤이면 바닥날 것으로 판단한 그가 관광, 금융, 무역, 엔터테인먼트, 전시회 등의 아이디어로 승부를 건 결과라 할 수 있다.

 셰이크 모하메드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것은 그가 행정규제로는 경제발전을 기할 수 없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 시티, 미디어 시티 등 다양한 형태의 자유지역(Free Zone)을 지정하여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CNN 등 세계적인 업체를 마음껏 끌어들이는 데도 성공했다. 또 현재 두바이에는 용적률이나 층고 제한이 거의 없어 건축업체에는 천국이나 다름없다. 또한 비수기 세계 부자의 돈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1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 두바이 쇼핑 페스티벌이란 바겐세일 행사를 진행하고, 6월부터 8월까지도 이와 비슷한 두바이 여름 깜짝 세일 축제를 개최한다. 지금도 그에게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치고 있는데, 그는 세계의 자본가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자본가들이 두바이를 필요로 하도록 만들겠다며, 두바이가 세계적인 도시에서 만족하지 않고 두바이가 세계 그 자체라는 말을 듣도록 하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 리더가 되기 위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해왔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 미래를 그릴 줄 아는 상상력,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무엇이 국민에게 진짜 이익인지 생각하는 애국심, 구성원을 신나게 만드는 동기부여 능력을 고루 갖추고 있다. 한국의 리더들이 그로부터 배워야 할 점을 언어, 사고, 행동 등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셰이크 모하메드의 말이다. 말이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적절하게 구사되어야 한다. 그는 교언영색이나 감언이설, 허장성세가 아니라, 진실된 말을 통해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유머도 있다. 그의 말에는 생기가 넘치고, 정중하고도 힘이 있다. 지도자는 말로써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모하메드는 비전 제시라는 점에서 다시 한 번 탁월성을 과시한다.

 둘째, 셰이크 모하메드의 생각을 배워야 한다. 그는 불가능은 없다는 전제 아래, 역발상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으로 두바이를 보물섬으로 만들었다. 그는 다양한 관점의 질문을 여러 차례 던지면서 사물의 본질을 파고들었고, 수평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수많은 전문가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이 두바이를 가고 싶은 이유는 단순하게 거대한 건축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언가 새롭고 신기한 발상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셰이크 모하메드의 행동을 배워야 한다. 그는 언제나 신중하게 결정하되, 행동은 번개처럼 신속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 아이디어와 사고는 전광석화와 같이 실천으로 옮긴다. 지금 우리 정부와 기업에 요구되는 것은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갈팡질팡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셰이크 모하메드처럼 신속한 스피드다. 때로 신속한 행동이 부작용도 낳고 나쁜 결과도 만들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스피드가 오히려 낫다는 게 최근 경영학계의 트렌드다. 용기도 없고 의지도 상실한 우리나라 각계각층에 있는 리더들은 셰이크 모하메드의 눈빛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2) 두바이의 기적



두바이가 오늘날 세계 최고의 신데렐라로 주목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흔히 오일달러의 위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일달러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지, 원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두바이가 상상력으로 불가능을 향해 도전장을 던지고 성공할 기미를 보이자, 엄청난 액수의 오일달러가 두바이로 모인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두바이와 두바이의 지도자는 오일달러를 비롯한 전 세계 자본을 끌어 모으기 위해 랜드마크(Landmark)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았는데,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 세계 최고급 호텔 버즈 알 아랍, 인공 섬 팜 아일랜드와 더 월드, 초대형 테마공원 두바이랜드, 초대형 실내 스키장 스키 두바이, 해저호텔 하이드로폴리스, 초호화 골프 클럽 에미레이트 골프 클럽, 테크놀러지- 미디어 프리 존 시티 등 경이적인 시설들이 그것이다.


(3) 모든 항로는 두바이로 통한다

 두바이의 성공은 원유수입에만 의존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즉 외국인의 유입과 활발한 경제활동에 힘입어 상업 및 거주용 건물에서 나오는 수입과 각종 수수료 수입을 극대화시켰고, 여기에다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두바이는 세금이 없는 나라다. 개인소득세도 없고, 법인세도 없다. 부가가치세도 기본적으로 없다. 그리고 국가가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항공사, 정유사, 부동산 개발회사 등이 비즈니스를 통해 수익을 내며 이 돈으로 나라를 운영한다. 아울러 두바이 전체는 하나의 공사판이다. 아라비아만을 바라보는 두바이 해변에는 고급 빌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건설되고 있고, 고급 빌라 주변에는 흔히 최고급 쇼핑센터가 있으며, 시내 곳곳에도 세계적 명품 판매점이 들어선 대형 쇼핑센터가 관광객들의 지갑을 털고 있다.

 오늘날 두바이의 성공비결은 홍보의 성공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 특히 모하메드는 자신의 독창적인 국가전략을 대내외에 절묘하게 포장시킬 줄 아는 정치적 홍보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외국인의 눈길을 잡아당기지 못하면 실패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세계 최초, 세계 최고, 세계 최대라는 구호를 만들었으며, 세계 최고의 기업과 자본으로 하여금 두바이에 군침을 흘리도록 만들었다. 그의 세계적인 홍보 마케팅은 어느 홍보 전문회사보다 탁월한 기법을 자랑하는데, 우선 각 업계의 간판 기업부터 유치함으로써, 다른 기업이 따라 들어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세계 최초, 세계 최대,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도 대외홍보에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거두었는데, 이를 알리기 위해 해외 유명 스타를 동원하여 각종 이벤트 및 대규모 국제행사를 개최하는데 주력했다.

 두바이의 야심은 세계 물류 전초 기지가 되겠다는 전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두바이는 걸프만 일대에서 대형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며, 유럽과 아시아·태평양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발전 잠재력이 크다는 점을 셰이크 모하메드는 최대한 노렸다. 그런 바탕 위에서 두바이의 물류전략은 공항과 항만을 통합하고, 자유지역이라는 파격적인 물류 거점을 건설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흔히 두바이에 외국기업이 몰리는 이유로 4무(無)와 2다(多)를 지적하는데, 4무란 무세금, 무제한 외환거래, 무노동쟁의, 무스폰서를 말하고, 2다란 다양한 물류여건, 다양하고 편리한 지원 시스템을 갖춘 원스톱 행정을 말한다. 즉 각종 세금과 금융규제, 노사문제가 없는 기업천국이란 의미다.

(4)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앞서 간 두바이



 두바이 프로젝트의 성공요인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독창적 아이디어와 역발상의 도시개발 모델 창출을 들 수 있다. 두바이는 태양과 바다, 사막과 같은 단조로운 자원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활용해 세계적 관광 중심지로 도약했는데, 최고급을 지향하는 리조트 시설, 사막에 초고층 초대형의 빌딩 건설과 불가능해 보이는 간척사업을 실현하고, 세계 쇼핑 축제 등 국제적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고급화 전략을 밀고 나가고, 다양한 아이디어의 현실화를 위해 선 공급, 후 수요 창출의 역발상식 두바이 도시개발 모델이 만들어졌다.

 둘째, 해외자본 유치를 위한 Open Sky Policy를 들 수 있다. 두바이는 외국인 토지임차 및 소유권 보장으로 친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했고, 여기에 폭 넓은 세제혜택과 규제완화 등 해외 투자자본 유치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가미됐다. 아울러 외국인 투자자 및 입주자의 물리적·제도적 여건과 생활환경도 개선시켰는데, 예로 약 80개의 외국인학교를 설립했고, 세계적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헬스 케어 시티가 2010년 완공될 예정이다.

 셋째, 국제 관광도시 인프라와 고객중심 서비스 전략을 들 수 있다. 두바이는 인종과 문화가 융합된 140개 이상 다국적 인구의 국제도시로, 해외 관광객들에 대한 편의와 안전을 철저히 배려하고 있다.

 넷째, 세계적인 홍보 마케팅 전략을 들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쇼 케이스 홍보를 통해 해외 주요 기업을 유치함으로써, 관련 기업의 투자신뢰도 향상은 물론 간접적인 홍보효과도 유발하고 있고, 아울러 세계 최초·최대·최고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시작한 대외홍보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노렸다. 여기에 해외 유명 스타를 동원한 각종 이벤트 및 대규모 국제행사도 한 몫 했다.

 다섯째, 정부의 지속적인 프로젝트 지원과 리더십을 들 수 있다. 두바이 개발 프로젝트의 급속한 추진으로 인한 교통난 해소를 위해 경전철을 도입하고, 대중교통 시스템을 개혁했으며, 부동산 개발 활성화로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중산층 및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대량 주택공급도 촉진하고 있다. 한편 두바이 당국은 부족한 인력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인구 유입을 활성화하고, 노동생산성의 향상도 지원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가 관광레저 기업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 두바이의 사례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던져줄 수 있다. 첫째, 민간기업 주도의 관광·레저 기업도시 개발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오늘날 두바이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것은 기업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개발 전권을 기업에게 위임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우리나라 정부도 관광·레저도시 건설을 저해하는 출자총액 제한 및 외국 교육·의료기관 설립 제한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동시에, 광역 인프라에 대한 지원 강화를 통한 건설추진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둘째,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개발에 대한 개혁의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두바이는 이슬람 신도가 아닌 외국인에게는 주류 판매를 허용하는 등, 이슬람의 엄격한 금기로부터 해방구를 마련했고, 이러한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1970년대 본격적인 유전개발로 벌어들인 오일머니로 관광·무역·금융 인프라 구축에 투자해 석유고갈에 대비하고, 관광·무역의 메카로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두바이의 성공요인에는 지역 특성을 극복한 개발 컨셉트도 있기에, 우리나라의 관광·레저도시에도 한국 고유의 미와 자연 특색을 살린 컨셉트 확립이 필요하다.

 셋째, 실용적 개발전략 및 고객 맞춤형 마케팅 방안 강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사실 두바이는 낯선 환경과 테러 위험이 도사리는 아랍국가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싱가포르와 홍콩 등 세계적 관광 국가를 철저히 벤치마킹했고, 결국 철저한 치안관리를 통해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안전한 국가이자, 쇼핑의 천국으로 부상하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도 관광·레저도시 내 해외 관광객 유치 활성화를 위해서는, 주요국의 방한 관광객을 중심으로 세밀한 서비스 전략을 수립하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대규모 관광객 동원이 가능한 국제행사를 유치하고 홍보·이벤트 마케팅도 강화해야 한다.

(5) 두바이의 한국 기업

 삼성전자 휴대폰은 두바이에서도 셰이크 모하메드 지도자가 직접 칭찬한 최고의 고급 브랜드로, 왕족과 부유층의 손바닥을 파고들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이곳에서 소니 등에 이어 호감도 톱3 기업에 들어갔고, 프로젝션TV, LCD-TV, LCD 모니터 등에서는 시장1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세계 최고 7성급 호텔이라는 버즈 알 아랍에는 LG전자가 대거 납품을 했고, 현대자동차도 두바이에 아중동지역본부를 두고 20여 명의 직원을 파견했다.

 현재 두바이에 지사를 두고 있는 국내 업체로는, 현대건설, 삼성물산, GS건설, 두산중공업 등인데, 이들은 중동 전체 원유매장량의 95%를 차지하면서 최근 고유가의 최대 수혜를 받고 있는 걸프연안 8개국의 건설·플랜트 공사 수주를 위해 두바이를 센터로 하여 총력 수주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중동 지역 공사발주의 특징은, 발주 분야가 토목·건설 부문에서 석유·가스 부문으로 변화되고 있는데, 국내 업체는 이 점을 노리고 있다.

(6) 두바이의 빛과 그림자

 급격한 성장 뒤에는 환희의 눈길이 있지만, 질시와 우려의 눈길도 동시에 도사리고 있다. 우선 두바이는 대규모 개발로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발생했는데, 문제는 두바이 투자액의 65%가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이란 등지에서 온 오일달러라는 점이다. 따라서 자칫 국제 유가가 하락하거나,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심각한 지경으로 악화되면, 일거에 버블이 꺼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이 장기 모기지론을 통해 부동산 투자자금을 조달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 버블 붕괴는 더욱 심각할 수 있고, 거품이 터지면 경제 전반에 연쇄적인 타격이 우려된다.

 한편 두바이를 얘기할 때 외국인이 잊어서는 안 되는 점이 있다. 바로 두바이는 철저하게 30만 명에 이르는 자국민 중심 사회라는 점이다. 즉 원칙적으로 외국인은 두바이 현지인을 스폰서로 두어야 사업을 할 수 있고, 스폰서에게는 만만찮은 스폰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합작법인도 대부분 스폰서를 끼고 들어가야 하며, 지분도 49% 정도에서 만족해야 한다. 이 때문에 외국인에게 스폰서 비용을 받아 놀고먹는 현지인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전문가들은 두바이가 당분간 승승장구 하리라는데 표를 던진다. 왜냐하면 두바이를 이끄는 셰이크 모하메드 지도자의 리더십이 워낙 파격적이고 기발한데다, 실천력에 스피드를 갖추고 있어서 당분간 적수가 없으리라는 전망 때문이다. 특히 경제학적으로 보면 이미 두바이가 규모의 경제를 구축해놓은 상태여서, 돈이 돈을 끌어 모으는, 즉 부익부의 선순환 현상이 수년간은 자동적으로 지속되리라는 전망이 많다. 그래서 두바이는 아직 그림자보다는 빛이 훨씬 더 센 곳이라고 할 수 있다.

3. 결론

 셰이크 모하메드는 불가능은 없다는 전제 아래, 역발상의 상상력으로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며,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 아이디어와 사고는 빠르게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특히 지도자란 나라를 살피고 부흥시킬 수 있다면 어떤 길도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는 아랍인의 피가 흐르면서도 미국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 높았고, 미국을 활용하기 위해 아랍권 내부에서 비판받을 정도로 친미 정책을 시행해 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그가 모든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2천여 명의 싱크탱크들로부터 충분한 의견을 수렴, 분석하고 결정짓는 순서들을 거쳤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으며, 바로 이러한 점들이 두바이를 오늘날 전 세계가 주목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이라 생각된다. “미래를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는 사람은 과거의 노예 상태로 머무르게 될 것”이라는 그의 신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예이다.

 한편, 우리나라도 두바이 같은 기적의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민간기업 주도의 관광·레저 기업도시 개발이 필요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개발에 대한 개혁의지가 필요하며, 실용적 개발전략 및 고객 맞춤형 마케팅 방안 강구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셰이크 모하메드처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 미래를 그릴 줄 아는 상상력,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무엇이 국민에게 진짜 이익인지 생각하는 애국심, 구성원을 신나게 만드는 동기부여 능력을 고루 갖춘 지도자가 등장해 기적의 리더십을 펼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두바이의 기적을 그저 지나치는 이웃나라인 우리에겐 불가능 한 일이라는 생각을 바꾸고, 그들의 방법과 리더십을 철저히 벤치마킹하여 두바이의 기적을 능가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써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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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복기의 군대


예언자 무함마드의 시대

1. 무슬림 지휘관-7세기 중반 : 부유하고 잘 무장된 이 지휘관은 쇠사슬 코이프와 어깨 드림 위에 비잔티움에서 유래된 형태의 조립식 투구를 쓰고 있다. 매우 긴 쇠사슬 호버크는 일반적인 형태인듯 하나, 강화된 가죽 러멜러 흉갑은 그렇지 않다. 칼은 아마도 사산조나 인도의 양식일것이며 가죽 방패와 신은 근처의 누비아에서 보이는 형태에서 유래되었다.

 2. 무슬림 궁수-7세기 초중반 : 이 가난한 병사는 그의 칼을 넝마로 감쌌고 가죽 끈을 감아 머리를 보호했다. 그의 활은 Grewia tenax라는 나무에서 베어낸 간단하 형태의 활이며, 짧은 화살은 돌화살촉을 쓰고 있다. 튼튼한 나알-샌들-을 신고 카미스-긴 소매를 가진 튜닉-을 입고, 전통적인 아라비아의 의상인 이자르-어깨와 몸통에 두르는 천-을 입고 있다.

3. 베두윈 족장-7세기 초 : 7세기의 아라비아 반도의 정주민과 베두윈들 사이에서는 의복의 차이점을 찾을수없지만, 남부와 북부에서는 옷차림이 다르다는것이 드러난다. 그의 올린 머리 형태는 이슬람 이전 아라비아의 미술품에서 보인다. 쇠사슬 디르(갑옷) 위에 앞이 뚫려있는 주바(jubba)를 입고 있으며 갑옷 아래는 이자르를 입고 있다. 낙타의 안장은 수백년간 아라비아에서 쓰여오던 것이며 가죽으로 된 등자가 있다.


무슬림의 대정복

1. 안사 전사-7세기 중반 : 안사-예언자의 돕는 사람들-들은 '인도된 칼리프'들의 정예병력이 되었으며 그들의 장비와 무기등은 여러곳에서 자세히 묘사되었다. 이 병사는 하얀 펠트 모자-칼란수와-를 그의 투구 위에 쓰고 있다. 노란색 터번은 그가 안사임을 나타낸다. 실로 짜여진 가는 벨트와 수대-어깨부터 허리까지 칼을 차기 위해 만들어진 띠-는 가죽 벨트나 수대보다 더 많이 사용되었을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특징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의 장비는 긴 대나무 창과 전통적인 형태와 비슷한 짧은 칼, 그리고 약간 대칭이 맞지 않는 아랍 스타일의 활, 기름을 바른 가죽 방패이다. 어깨의 호버크 아래에는 속을 천 등으로 층층이 튼튼하게 채웠다.

2. 페르시아 아사와리아 기병-7세기 중반 : 옛 사산조 기병의 함라-붉은 얼굴의 사람들-의 일원이었던 이 병사는 사산조 최후의 시기의 무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넓은 철띠로 강화된 투구와 셔츠모양의 튜닉 아래 입은 짧은 사슬 호버크, 다리를 보호하는 란-장식된 각반-이 그의 무장이다. 활을 쏘는 오른손은 가죽끈으로 보호하고 있다. 아바르 양식의 긴 칼과 단검, 활은 두개의 나눠진 벨트에 고정되어있으며, 마갑은 북부 스텝의 영향을 보여준다. 안장에는 목제 등자가 달려있다.

3. 베르베르 보조병 : 무장이 매우 빈약한 이 베르베르 보조병은 조악한 직조 하이크와 코르크로 바닥을 댄 샌들을 착용하고 있다. 베르베르족이 지난 세기동안 그랬듯이 전투를 위해서 머리를 밀었고 창과 간단한 투석끈, 돌이 든 가방, 그리고 가죽 방패를 들고 있다.

우마이야조의 보병

1. 우마이야조 근위병-8세기 초 : 이 정예병이 쓰고 있는 철과 청동이 섞인 투구는 중앙아시아에서 유래됬음에도 이란과 이라크에서 대규모로 제조되었다. 그의 디르 호버크 밑에 있는 두라아-앞이 뚫린 튜닉-은 아랍에서 습관적으로 착용된것 같다. 수대에 달려있는 미끄럼 방지가 된 세겹짜리 칼집세트는 매우 특별한 형태인데 이러한 형태는 사마르칸트와 판지켄트(pianjikent)의 낙타를 탄 아랍 침략자들의 그림에서 볼 수 있다.

2. 우마이야조 보병-8세기 초 : 이 보병 궁수는 투구 위에 모자를 쓰고 있다. 이 병사의 무장은 일반적인 우마이야조 보병의 무장을 보여준다. 그의 유일한 다른 방어구는 쇠사슬 디르이다. 천으로 된 카바와 솜으로 된 카미스(겉옷과 갑옷 안의 흰 옷을 말하는것 같은데, 어느게 카바이고 어느게 카미스인지 모르겠음) 아래에는 군사들이 입었던 바지 시르왈이 있다. 어깨에 걸치고 있는 숄은 타얄산이라고 부른다.

3. 무슬림 여성-8세기 초 : 일반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초기 무슬림 시기동안 매우 활동적으로 일을 했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집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기도 했다. 이 여성은 아마도 부유한 계층의 출신일 것이다. 고급 터번은 머리카락만을 가리고 있는데 이러한 것이 현재의 극단론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얼굴을 가리는것 보다 예언자의 본래 가르침에 더 가깝다.

우마이야조의 기병 
 
1. 발흐 총독-8세기 : 여기 이 총독은 갑옷 대신 고위 관료의 옷을 입고 있지만, 지방 총독들은 중무장을 했다. 시위를 매지 않은 채 활집에 들어있는 거대한 아랍활은 도보로만 사용할 수 있다. 몇몇 우마이야의 상류층 인사들은 보석류나 마스카라-코흘-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 자는 말 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파지켄트의 벽화에서 보인다. 초기 형태의 칼란수와-모자-와 타야라산-목에 두른 흰 띠-를 쓰고 있으며 큰 장갑을 끼고 있다.

2. 우마이야조 정예 기병-7세기 후반 : 이란 출신의 병사들의 무장에서는 이란 갑옷의 영향을 받은점이 보인다. 이 병사는 미그흐파르-쇠사슬 드림-를 입고 있는데, 이 갑옷은 그의 옷 아래에 있다. 청동 러멜러 흉갑은 탄누르 또는 '자궁'이라고 알려졌다. 손에는 이란 양식의 건틀렛을 끼고 있으며 발은 사크 알 자르드라고 불리는 쇠사슬 각반으로 보호하고 있다. 방패는 나무로 된 채색방패이다.

3. 이집트의 우마이야 왕조의 경기병-8세기 중반 : 기후는 우마이야 칼리프조의 아랍 지방에서 중장갑이 드문 이유에 대한 답이 될것이다. 이 병사는 남부 누비아에서 온 악어가죽 투구-초기 중세시대에 쓰인 철제 러멜러 목 보호대가 곁들여 있다-를 쓰고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카미스 셔츠와 시르왈 바지위에 찬 두개의 벨트가 있는데, 첫번째 벨트는 실로 두껍게 짠 아랍의 양식이고, 가죽과 장식이 달린 가죽 벨트는 새로 나타난 투르크-이란의 양식이다. 낡은 가죽이 덧대여져 있는 안장에는 목재 등자는 달려있지 않다.


 압바스 혁명 
 
1. 후라사니 아랍 정예병-8세기 중반 : 이 정예병은 그의 터번과 모자 아래 둥그런 낮은 투구를 쓰고 있다. 또한 그는 일반적인 형태의 갑옷인 디르에다 얇은 판을 겹쳐 만든 완갑(팔에 차는 방호구)을 쓰고 있다. '명예의 겉옷' 위에 금으로 된 타와-목걸이-를 쓰고 있는데, 이 목걸이는 전투에서 장교들을 구분하기 위해 주어졌다. 말에서 내린 채로 싸우기 때문에 칼은 등에 차고 있다.

2. 후라사니 아랍 기병-8세기 후반 : 이 병사는 바야다 투구와 미그흐파르를 입고, 투구 위에는 가죽 안감을 댄 모자-아마도 이 모자는 칼란수와 샤하시야일것이다-를 쓰고 있다. 전통적인 이란 양식의 카바 코트 아래에는 쇠사슬 호버크를 입고 있다. 이란의 샬와 바지 위에 정강이 갑옷인 란을 가죽끈으로 고정했으며 칸자르라는 단검, 도끼(타바르진), 투르크-이란의 합성궁으로 무장했다. 이 시기에 무슬림 궁수들은 손가락과 엄지 모두를 이용해서 활을 당겼다.

3. 페르가나 기병-8세기 중반 : 민족적인 기원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기병은 투르크식의 높은 투구를 쓰고 있다. 앞부분에 솜털을 포갠 겉옷 밑에 쇠사슬 호버크와 얇은 판을 겹쳐 만든 정강이 갑주와 완갑을 착용하고 있다. 겉옷의 아래쪽 부분에 있는 가죽 러멜러 흉갑은 따로 입을때도 있었다. 말에는 코에 큰 금속 재갈끈을 매어놨고 안장의 뒷부분에는 분해된 천막이나 접은 깃발을 매어두는 막대가 매달려 있다.

 


압바스조-변경의 전사들 
 
1. 아나톨리아 국경 전사-9세기 초 : 많은 사료들이 동부 아나톨리아의 비잔티움 병사와 무슬림 병사사이의 장비의 유사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이 병사는 오직 터번을 통해서만 그가 무슬림이란걸 알아볼수 있으며 각 부분을 대갈못으로 고정한 철제 투구를 쓰고 있다. 실로 짠 두꺼운 검은 겉옷-두라아-아래에 보편적인 갑옷인 디르와 가벼운 가죽 부츠-쿠프-를 착용하고 있다. 그의 쭉 뻗은 양날검은 노획된 비잔티움의 무기에서 나타난다.

2. 압바스조 보병-9세기 초 : 여기 이 병사는 종려나무 잎의 줄기로 만든 투구와 가죽으로 감싼 갈대방패를 들고 있다. 이 방패는 중동에 몇세기전부터 알려져 온것인데, 다만 다른 것은 자신의 방패에 역청칠을 했다는 것이다.

3. 페르시아 기병-9세기 초 : 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 많은 이란인 기병들은 이전보다 더 가볍게 무장한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보병이 덜 중시되고 기마 궁술을 더 중요히 여기는 상황을 반영한다. 이 기병은 새로운 형태의 칼란수와를 쓰고 있다. 짧은 쇠사슬 호버크는 철제 러멜러 흉갑아래 입었는데, 이러한 갑옷들은 전신부의 가슴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입었다. 그는 또한 당시 이란에서 많이 쓰이던 굽은 세이버를 들고 있다. 말의 머리는 천을 덧댄 철제 마갑으로 보호하고 있고, 몸통과 목은 티즈파프라고 불리는 펠트를 층층히 쌓아 만든 마갑을 쓰고 있다.

 압바스조-궁중 
 
1. 굴람 근위기병-9세기 중반 : 노예 출신의 이들 굴람들은 처음 몇년간은 통치자의 가장 신뢰할만한 근위병들이었다. 이 굴람은 장식된 비단 두라아와 헐렁한 비단 바지를 입고 있다. 긴 머리는 아마도 그가 투르크족 출신이란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부족 출신들도 긴 머리를 했다. 활은 명백히 중앙아시아에서 발명된것이나 화살통과 활집은 투르크 양식의 영향을 보여준다. 뺨가리개가 달려있는 투구는 많은 그림에서 보인다.

2. 아브나 보병-9세기 초 : 이 아브나 보병의 장비와 복장을 통해 그의 부대가 아랍군과 후라사니들의 혼합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터번 아래에는 양질의 이란 철과 청동으로 만든 투구를 쓰고 있으며 그가 들고 있는 압바스조의 검은 깃발에는 쿠란의 구절이 쓰여있다.

3. 칼리프 무타와킬(847~861) : 칼리프는 터번 천 아래 걷어올린 가죽 목덮개가 달려있는 칼린수와 타윌라를 쓰고 있다. 어깨에는 붉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미트라프를 두르고 있고 검은 가죽으로 만든 주바흐 아래 붉은 두라아를 입고 있다. 궁전 안에서 압바스조의 칼리프들은 카딥이라는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으나 궁전 외부에서는 여기 보이는 간단한 형태의 외날 세이버를 가지고 다녔다. 다양한 형태의 검은 웃옷과 화려하게 장식된 허리띠, 그리고 이러한 지팡이나 칼은 압바스조의 표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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