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TODAY 32 TOTAL 18,769,691
연쇄살인범 (3)
큰 파문을 일으킨 대한민국 10대 범죄 사건

 아래의 범죄 사건들은 우리나라 경찰이 수사한 범죄 사건들 중 큰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킨 사건들이다. 수많은 경찰관이 동원되었으나 아직까지 미제인 사건, 진범을 잡았다고 했으나 법원에서 무죄 석방된 사건, 특정 사건들을 계기로 인권의식의 고양과 수사기법의 발전을 가져온 사건들이다. 범죄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범죄의 발생 원인이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치정에 얽힌 사건, 금품을 노린 사건, 우발적인 사건, 정신병에 의한 사건 등에서부터 불특정 다수를 노린 사건 및 무동기 범죄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범죄의 발생 원인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개개 사건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평가가 뒤따라야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1. 원효로 윤노파 살해사건
1981년 8월 4일 71세의 점술가 윤경화와 그의 가정부 및 6세의 수양딸 등 3명이 둔기로 머리를 난타당하고 목이 졸린 채 숨진 사건이다. 피의자에 대한 강압·고문수사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다.

2. 삼성동 여대생 피살사건
1981년 9월 21일 부산산업대학 공예과 여학생 박상은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한국상사 야적장 인조대리석 분쇄 더미 속에 둔기로 머리와 얼굴 등을 심하게 얻어맞고 숨져있는 채로 발견된 사건이다. 두 명의 피의자가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된 사건으로 증거의 중요성을 알게 한 사건이다.

3. 우순경 사건
1982년 4월 26일 오후  9시 30분경  경남 의령군 궁유면 지서에 근무하던 우범곤이 술에 만취해 지서의 예비군 무기고에서 수류탄 7발과 카빈소총 2정, 실탄 180여발을 들고 나와 주민들에게 무차별 난사한 사건으로 사망 56명, 부상 34명이라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관 적성검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4. 서진룸싸롱 사건
1986년 6월에 조직폭력배인 강진석파가 맘포파와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던 조원섭 등 4명을 서진룸싸롱에서 무자비하게 난자하여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장본인 장진석 일당은 모두 체포되고 후에 주범들은 사형에 처해졌다.

5. 화성 연쇄살인사건
1986년 9월 19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4년 7개월 동안 10차례에 걸쳐 경기도 화성시 태안 일대에서 일어난 부녀자 강간살인사건이다. 마지막 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2006년 4월 2일 만료되었고, 아직도 화성경찰서 강력3팀에서 수사 중인 사건으로 사건일지와 기록은 영구 보존키로 했다.

6. 지존파 사건
지존파는 1993년 5월부터 1994년 9월까지 돈 많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중년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5차례 연쇄납치로 금품을 빼앗고는 모두 살해하여 자신들의 집 소각로에서 시체를 태워버렸다. 살인, 소각공장운영, 인육 먹기, 살인실습 등과 같은 잔인성으로 유명한 사건이다.

7.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1991년 3월 26일 개구리를 잡으러 집을 나간 대구 성서초등학교 어린이 5명이 실종된 사건이다. 이에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으나, 2002년 9월 26일 대구 달서구 용산동 와룡산 4부 능선에서 이들의 유골이 발견될 때까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8. 신창원 탈옥사건
신창원은 1997년 교도소를 탈옥한 후, 2년 6개월 동안 108건의 강 절도를 저지르며 전국 각지로 출몰한 탈옥수이다. 그는 1994년 11월 16일 부산교도소로 이감된 뒤 1997년 1월 20일 탈출하기까지 모범수로 생활하며 감시가 느슨해지자 감방 내 화장실 환기구의 쇠창살을 쇠톱으로 잘라 탈출한 후 주로 다방여종원들과 동거하며 도피한 사건이다.

9.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2003년 9월 명예교수 부부 살인을 시발로 2004년 7월 검거될 때까지 총 21명을 잇달아 살해한 사건이다. 2004년 3월부터 동년 7월 검거 시까지는 주로 성매매 여성들을 집중 유인·살해하였다. 범행도구는 자신이 직접 만든 망치나 칼 등을 이용하였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르거나 시체를 토막 내 야산에 묻기도 하였다.

10. 오대양 사건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북2리 오대양 용인공장 내 구내식당 천장 위에서 오대양주식회사 대표 박○○ 외 31명이 집단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숨진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오대양 공장종업원과 회사직원들이었고, 사장인 박○○와 그녀의 자녀(2남 1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Comments,   0  Trackbacks
댓글 쓰기
[속보]군포 연쇄살인범, 실종 7명 살해 자백!



 결국 군포 연쇄살인범이 실종됐던 7명을 모두 살해했다고 자백했다고 하네요.
범행동기는 2005년 전처 사망 이후 1년간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고 여자들만 보면 살인충동을 느껴서 였다고 합니다.
양파처럼 까도 까도 또 나오는 그의 범행....
아직 덜 밝혀진 것이 있을까봐 걱정이 됩니다.

아래는 실종 부녀자 7명의 살해 일자와 암매장 장소입니다.(연합뉴스 인용)

▲노래방도우미 배모(당시 45세)씨 : 2006년 12월 14일 군포시 산본동. 화성시 비봉면 비봉IC 부근 야산.

▲노래방도우미 박모(당시 37세)씨 : 2006년 12월 24일 수원시 장안구 화서동. 안산시 사사동 야산.

▲회사원 박모(당시 52세)씨 : 2007년 1월 3일 화성시 신남동. 화성시 삼화리 야산.

▲노래방도우미 김모(당시 37세) : 2007년 1월 6일 안양시 안양동. 화성시 마도면 고모리 공터

▲여대생 연모(당시 20세) : 2007년 1월 7일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금곡동 인근 천변

▲주부 김모(48)씨 : 2008년 11월 9일 수원시 권선구 당수동. 안산시 성포동 야산

▲여대생 A(21)씨 : 2008년 12월 19일 군포시 대야미동. 화성시 매송면 원리 논두렁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Comments,   0  Trackbacks
댓글 쓰기
군포 여대생 사건, 끝없이 밝혀지는 진실


군포 여대생 사건, 정말 끝이 없네요. 

속속들이 밝혀 지는 여죄들의 가능성에 사회 전체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1. 증거를 감추기 위해 피해자의 손톱까지 잘랐습니다.
그런데 왜 본인 컴퓨터를 포맷 해서 자신이 범인임을 보여 주었을까요?

 
증거를 감추기 위해 피해자의 손톱을 잘라 버린 점,
ATM 지문을 가리기 위해 콘돔을 사용 했다는 점,
본 사건을 4시간만에 모두 끝냈다는 점 등을 생각한다면
개인적으로 유영철보다 지능범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왜 본인 컴퓨터를 포맷해서, 검찰의 의심을 샀을까요?
범인은 자기가 용의선상에 오른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컴퓨터를 포맷했습니다.
무리하게 포맷을 한 것을 보면, 다른 더 중요한
자료를 삭제하기 위해 포맷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갑니다.
검색어 수사 발표 후 그 압박으로 포맷을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혹시 다른 사건의 증거를 지우기 위해 포맷을 한 것이 아닐까요?

 2. 왜 자신의 무쏘 차량을 태웠을까요?

 피의자는 자신의 무쏘 차량을 태웠습니다.
왜 일까요? 다른 범행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한 것이 아닐까요?
경찰에 의하면 범인은 범행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라고 진술 했다고 하지만,
이번 사건에 쓰인 차량은 어머니의 차량인 에쿠스입니다.
범인으로 잡힐지도 모른다는 다급한 상황에서 갑자기 차량을 태울 이유는
없다고 생각 됩니다. 오히려, 다른 범행에서의 흔적을 지위기
위해 태웠다 라는 설 쪽에 더 믿음이 갑니다.

 
이거, 아무리 봐도 추가 범죄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이 갑니다.

 (1) 추가 범죄가 의심 됩니다. 

 매일경제에 의하면,
부녀자 연쇄 실종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의 시체가 발견된 곳에서
범인의 축사는 4㎞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또한 축사의 트럭에서 여성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다" 라고 범인은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위의 정황들을 정리해 보면 여죄의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어쩌면 이 사건은 유영철을 뛰어 넘는 역사에 남을 만한
연쇄살인 사건의 시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당시 사건 기록을 재수사하고 있다"
수사본부의 관계자의 말입니다.

 (2) 그의 가족의 죽음은 우연이었을까요?

 그는 결혼을 네 번 했는데, 넷 째 부인과 그 장모는 화재로 사망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용의자는 네번째 부인이 화재로 사망하기 5일 전 혼인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또한, 넷째 부인이 피보험자로 4억 가량의 보험이 가입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rm래서 범인은 부인이 죽은 후 4억원 가량의 보험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봐도 우연치고는 너무 무서운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때 용의자와 그의 아들(첫째부인 아들)은 무사 했다고 합니다.

모두 계획된 것이 아닐까 의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s,   1  Trackbacks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