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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단상


 인문학을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으로 물신주의화하는 관념론자들, 그리고 배부른 사치로 여기는 유물론자들 둘은 동일한 족속이라는 것. 둘다 인문학은 고상한 거라는 허구적 정체성의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혹은 그것에 기반해 있다.

인문학을 제도화하고 거기에 대해서 시장의 분배를 정책적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인문학의 위기를초래한 장본인들이다. 그들은 시장에 반대한다면서 동시에 시장의 분배를 그것도 인문학에 대한 특권적 분배를 기대한다. 얼마나 아이러닉한 일인가. (이것은 한국의 인디음악담론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은 삶의 증상이자 삶의 틈새를 사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조건 안에서 곧바로 길어져오는 것이지 특정 제도들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이 직업이나 제도로서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문학을 배우는 것을 꺼려하는 것. 그것이 인문학의 위기인 것은 아니다. 인문학이 제도적, 시장적으로 엄청 호황을 누린다고 해도 그게 꼭 위기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사람들이 세계를 자기자신을 타인을 삶을 더이상 사유하려 하지 않는다는, 그 근원적인 사실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꼭 사유를 해야만하는가? 그렇지 않다. 사유는 삶에서 강제되는 것이다. 더이상 사유가 강제되지 않는다면 굳이 나서서 제도적으로 혹은 시장적으로 사유를 권장할 필요는 없다. 특히 교양화할 필요는 더 더욱 없다.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외쳤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이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인문학의 종언을 외쳐야 할지도 모른다. 언젠간 그런 때가 오게 될지도 모른다. 인문학이 삶의 증상이고 간극과 틈새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라면 그런 간극과 틈새가 없는 세계에는 인문학 자체의 필요성도 없어지는 셈이다. 우리 시대가 그런 시대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문학이 항상 그런 틈새와 간극을 사유하는 것이라는 고진의 말은 인문학의 위기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즉 그런 틈새와 간극이 사라진 시대에는 인문학은 종언을 자연스럽게 맞이한다는 것이다. 

 즉 후역사적, 탈역사적, 포스트모던 시대인 지금 시대는 옛날에 가능했던 틈새와 간극의 사유로서
삶의 증상으로서의 인문학이 더이상 불가능해진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인 것이다. 인문학의 조건이 이미 와해된 것이다. 이 조건은 제도적, 시장적 조건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사유할만한 틈새와 간극 증상이 전부 사라져버린 것에 가깝다. 혹은 적어도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인문학이 항상 항구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 이런 관점이 오히려 오류라면 어쩔 것인가. 인문학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인문학의 조건이 이미 와해되버린 시대가 지금이라면 어쩔 것인가. 제도와 시장에 대한 호소는 그 조건의 와해를 감추는 산소마스크라면 어쩔 것인가. 근대문학이 종언한 것처럼 인문학 전체가 종언한 거라면 어쩔 것인가. 충분히 그럴 가능성은 있다. 문학이 시대와 세계에 대한 사유를 중단한 것처럼 인문학도 더이상 인간조건 자체에서 나오는 증상이나 간극 틈새에 대한 사유는 아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한에서 제도와 시장이 그걸 인공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려 노력한다 해도 그건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요즘들어 굉장히 자주 속물들의 자기고백적인 글을 보곤 한다. 인문학을 고상하게 여기는 부류
들. 그들은 이젠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단지 상징가치와 고상함을 획득하기 위해 인문학을 본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은 당신들도 그렇지? 하고 은밀하게 동의까지 구하고 있다. 그런 글이 인기를 끌고 유행하는 것이야말로 인문학의 위기를 증거하는 하나의 징후인 셈이다. 인문학은 그런 속물들에겐 삶에 덧붙이는 하나의 악세사리로 사치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그 사치와 악세사리 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최후의 인문학적 제스츄어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미 대학 세미나의 뒷풀이는 바로 그런 의미 밖에는 없어졌다. 그들은 철학 뭐 있겠어? 하면서 자신들이 배우는 것에 대해 이미 냉소적 주체가 되어가고 있다. 문학 동호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속물들의 자기고백적 글은 도처에 있다. 어쩌면 그것은 솔직함이라는 미덕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럴거라고 성급하게 일반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인문학은 밥이나 잠이나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삶의 일부분이다. 전혀 악세사리가 아닌 것이다. 그런 식의 속물의 고백과 동의를 구하는 식의 글들을 보다보면 언제나 나에겐 아무것도 고백할 것도 자백할 것도 동의할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삶의 증상으로서의 인문학. 그게 모든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런 증상이 간극이 틈새가 사유를 강제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그런 사람들에겐 속물의 자기고백과 동의를 구하는 식의 은밀한 미소는 그저 순수하게 구역질 밖에는 불러올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정확하게 이글의 맨 처음에 말했던 그 두가지 사이를 맴돌고 있다. 인문학 자체를 물신주의화 해서 고상한 것으로 항유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배부른 자의 사치로 짐짓 유물론적으로 깎아내린다. 리고 결국 자신들의 생활, 삶, 가족, 직장, 이런 것의 중요성을 내세운다. 이런게 아마 전형적인 물들의 자기고백 패턴일 것이다. (키치적 취향을 유물론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옵션이다.) 그들은 군가의 삶, 생활, 가족, 직장, 그런 것들이 바로 인문학의 조건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혹은 망각하고있다. 혹은 그 둘을 허구적 이분법으로 분리시키고 있다. 인문학은 고상한 것도 아니고 배부른 사치도 아니다.(사실 이 두가지 관점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고상한 것이 곧 배부른 사치이니까 말이다.) 내가 보기에 저런 속물들에겐 인문학은 굳이 필요가 없다. 필요가 없으니 사치가 되는 것이다. 고상한 교양이 되는 것이다. 악세사리나 상징가치를 부여하는 삶의 장식품이 되는 것이다. 저런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것. 속물들의 자기고백이 판을 치고 유행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인문학의 위기의 가장 대표적인 징후인 것이다. 즉 인문학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사치이지 이미 필요한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인문학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사치가 된 거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잘못은 그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기정사실로 여기는 것이다. 아직은 인문학은 종언을 맞이하지 않았고 누군가에겐 사치가 아니라 삶과 생활과 가족과 직장과 모든 인간조건의 틈새와 간극과 증상에서 직접 길어져나오는 필요라는 것이다. 필요는 사치에 반대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인문학이 필요없게 될때 그때 인문학은 위기를 넘어서 종언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도 속물들이 인문학을 장식품으로 사치로 악세사리로 이용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건 이미 그때가서는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일 것이다. 그때엔 이미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인문학을 필요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 필요를 사치로 환원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제도든 시장이든 속물이든 무엇이든 간에 인문학을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사치로 여기는 것에서부터 존재하는 것이다. 즉 삶과 사상, 삶과 철학을 따로국밥으로 여기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젠가는 인간조건이 어떤 사유도 필요로 하지 않고 강제하지 않을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시대를 바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인문학을 내 삶에 있어서 여전히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Comments,   1  Trackbacks
  • 인간이 사유하지 않게된 결정적 이유는 매스미디어 또는 대중문화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이미 온갖 생각으로 자신들의 삶이 뒤덮혀있죠. 과거 정보의
    부족이었던 세상에서, 오히려 정보의 과잉 또는 정보의 사치의 시대에 놓여있습니다.
    블로거들 또는 제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조중동도 이러한 과잉정보들의 중심에서
    이슈를 만들어낸후, 사람들이 사유하도록 강요하고 있죠.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또한 과거의 철학자들은, 세상을 어떻게 열어가야 할지 길을 열어주는, 또는 인간이라는
    개개의 소프트웨어들을 작동시켜줄만한 운영체제를 확립하는데 힘을 쏟았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노력이 지금, 현대를 만들었고 과거의 철학은 이미 현실화 되어있죠.
    그들이 만든 세상이 지금 바로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데, 그걸 다시 배운다는것이
    조금은 아이러니할수도 있습니다만.. 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다시한번 점검해보는게
    세상을 올바로 볼수 있는 길인것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지금 신자유주의와 복지사회 사이에서 새롭게 나아가야만 하는
    새로운 "근대"에 놓여있건만, 철학자들은 전혀 새로운 인간 세상의 운영체제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은 이미 너무 배부른 인간들이 되어버려서, 앞으로 인간이
    나아가야할 뭔가를 찾기보단,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돈벌이로 파는데에만 급급하다든지..

    어찌보면 블로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들이
    과거의 철학이 인간을 변화시킨 역할을 대신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 프랑스 혁명전에
    이성주의자들이 백과사전 편찬을 필두로 하는 계몽주의라는 "바람"이 잠시나마 불었던것이
    그들의 혁명에 도움이 되었던것처럼, 새로운 인터넷 이성주의가 열린다면 소수의 네티즌
    또는 블로거들이 세상을 뒤흔드는 새로운 길을 열지도 모르겠네요.

    미네르바 라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 Fashion community attracts numerous teenagers today not simply given that it is a alternatively new career, but additionally it really is intended to realise person's likes from the field of trend. Furthermore, it can be really a high-paid profession currently. Any time a younger human being decides to link her or his exercise using the vogue market place next to nothing arrives to thoughts apart from an individual its part - style layout. In all probability, several persons in fact know that it truly is a separate discipline of vogue industry. Believe it or not, you can find a fantastic quantity of other professions and specialties in such as creating clothing, design and style, selling, merchandising, and so on.
  • 거대한 평가 사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냥 순수하게이 특정하고, 또한 몇 가지 다른 사람들이 발표했습니다 예외적인 평가는, 그것이 대답을하지 않는 경우가 찾고 평가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기대와 함께, 현대 마이크로 소프트 준을 따뜻하게 오전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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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보자!
 다음 아고라의 논객 미네르바와 미네르바 효과가 계속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논객 미네르바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곳에서 상세히 다루어졌으니, 저는 여신 미네르바와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대해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야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이는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법철학」의 서문에서 한 말입니다. 여기서 미네르바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로마식 이름입니다. 그녀는 부엉이를 좋아하여 항상 부엉이를 데리고 다닌다고 합니다. 이성적인 철학이나 진리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선행하기보다는 일이 다 끝날 무렵에야 알게 된다는 뜻이죠. 무슨 일을 하다가 한참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됨을 뜻하기도 합니다.

아테나 - 지혜와 공예의 수호신

1. 아테나는 어떤 여신인가?

 아테나는 지혜와 공예의 수호신으로 로마인에게는 미네르바로 알려져 있으며 아르테미스처럼 순결을 지킨 처녀 여신입니다. 그녀는 단단한 몸매를 지닌 아름다운 무사로 자신이 선택한 영웅들을 보호하고 자신의 이름은 딴 도시 아테네를 수호하였습니다. 올림포스산에서 갑옷을 입고 있는 여신은 아테나 하나 뿐이며, 헬멧을 뒤로 비스듬히 써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내면서 한 손에는 방패를, 한 손에는 창을 든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테나는 전쟁시에는 전략을 짜고 평화시에는 집안에서의 여러 가지 기술들을 관장했습니다. 그래서 한 손에 그릇이나 물레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죠. 아테나는 도시의 수호신이었으며, 군대의 후원자였고, 수직공, 대장장이, 도공, 제단사들의 수호신이기도 했습니다.

 아테나는 합리적인 사고에 가치를 두며, 본능과 자연보다는 의식과 지식을 주도하는 여신이었습니다. 그래서지혜를 지닌 커다란 눈의 부엉이로 그녀를 묘사하기도 합니다. 아테나의 기질은 도시적인 것으로 그 점에서 아르테미스와는 대조적인 여신이었습니다.


2. 아테나의 탄생


 아테나의 탄생에 대해선 두 가지 설이 있는데, 두 가지 모두 극적인 신화입니다. 아테나는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는데 날 때부터 성숙한 여성이었으며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한 손에는 날카로운 창을 들고 괴성을 지르면서 태어났습니다. 또 다른 일화에 의하면, 제우스가 그녀의 해산을 앞두고 지독한 진통에 시달리자 대장간의 신인 헤파이투스가 도끼로 제우스의 머리를 절개하여 아테나가 태어났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아테나는 그의 부모가 제우스 하나 뿐이라고 생각했으며, 끝까지 제우스의 편에 섰습니다. 아테나는 자신의 어머니인 메티스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사실상 그녀는 자신에게 어머니가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메티스는 제우스의 첫 번째 부인으로, 대양을 다스리며 그 지혜가 널리 알려져 있는 여신이었습니다. 메티스가 아테나를 임신하고 있을 때 제우스가 메티스를 작게 만들어 삼켜 버렸습니다. 메티스는 두 아이를 낳을 예정이었는데, 딸은 제우스에게 지혜로운 의논 상대가 되고 아들은 이 세상의 모든 신과 사람들을 다스리는 왕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우스가 메티스를 삼킴으로써 그 계획이 무산되었고, 그 결과 아테나만이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게 된 것이죠.

3. 신화


 아테나는 영웅들의 친구이며 보호자이고 조언을 해주는 수호신이었습니다. 영웅들과 연관된 그녀의 신화는 이루 열거할 수 없을만큼 많죠. 아테나는 트로이 전쟁 중에는 그리스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고 특히 그리스 최고의 용사인 아킬레스를 돌봐주었으며, 오디세우스(율리시즈)가 집을 찾아오는 오랜 세월 동안 그를 지켜주었습니다.

 영웅들을 돕고 제우스를 보좌하는 것 외에, 또 한편으로 아테나 여신은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서구 역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재판인 오레스테스 사건의 경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레스테스는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어머니를 죽였다. 아폴로가 그를 변론하였는데, 그때 아폴로가 주장하기를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하고 여성은 그저 남성이 뿌린 씨앗을 키우는 존재일 뿐이며, 그 예로 어머니 없이 태어난 아테나의 탄생을 증거로 들었습니다. 재판은 결국 아테나의 한 표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순간에 이르렀는데, 이때 아테나는 아폴로의 편을 들어 오레스테스가 자유의 몸이 되게 함으로써 어머니와의 연대감보다는 가부장제의 원리를 지키는 것을 우선시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아테나에 대한 신화 중에 여성이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 아테나에 의해 거미로 변해 버린 아라크네에 대한 얘기가 그것입니다. 수공의 여신인 아테나가 어느날 유명한 수직공인 아라크네와 누구의 솜씨가 더 좋은지를 놓고 시합을 벌였습니다. 아테나는 아라크네의 놀라운 솜씨에 감탄했지만, 아라크네가 완성한 융단에 수놓인 내용을 보고는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그 융단에 놓인 수가 아테네의 아버지인 제우스의 애정 행각을 담은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라크네는 아테네의 분노에 의해 거미로 변했으며 영원히 실에 묶여서 실을 짜는 운명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아테네 여신에게 있어 제우스를 모독하거나 가부장제를 흐트리는 일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요즘 이슈화 되고 있는 내용과는 좀 다른 얘기입니다만, 곁가지식으로 그리스 신화의 아테네 여신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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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대생
    좋은 시도인 것 같네요~
    아고라 미네르바는 알아도 진짜 미네르바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을듯요^ㅡ^
  • demiansfox
    오빠, 내가 요즘 읽는 책이 여신 유형과 심리에 대한 책인데- 아테나 유형의 여성은 권위와 책임감과 권력을 모두 지닌 강력한 남성에 대해서만 자연적으로 끌리기도 하지만 레즈비언 여성들에게도 잘 보인다네 신기하지 'ㅁ'
  • 미네르바 띄우느라 참 열심히도 조직적으로 애쓰십니다 운동권 노빠분들....
    상반기엔 광우병 구라 만드셔서 어떻게 나라 망조들정도로 흔들려다 안되고
    이젠 또 경제 위기설 그래요...경계하고 조심해서 나쁠거 없는데도 미네르바가 말 엄청 바꾸고 심지어는 통계 자료 조작한거 까지도 좀 이야기 하시지 전문가들 사이에선 똥 취급 당하는데 파블로프의 개들이 추천하는 미네르바로 여론 몰이하는 이런 현실 정말 창피하고 부끄럽네요 인터넷 더럽게 만들지 말고 좀 순수하게 사세요 ...적어도 우파들은 이런짓은 안하죠 이런짓을 안하는게 아니라 인터넷은 한 몇백명만 조직적으로 여론선동해서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단걸 별로 중요하게 생각안하는거겠지만 노빠님들은 노무현씨와 함께 오로지 한게 그 인터넷 여론 조작 점령으로 기존 여론 타파하는거였죠? 근데 그것도 진실과 정직함이 있고 뭔가 잘했어야 먹히지 어디서 나라 개판쳐놓고 물러난 주제에 이제 와서 정권 좀 다시 잡아보겠다고 나라까지 흔들면서 수작질인지 구역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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