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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6)
중국은 수탉, 일본은 벌레…그럼 우리는?

내가 중국인 친구에게 재미있게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중국 지도와 관련한 이야기였다. 중국 지도를 자세히 보면 수탉처럼 생겼는데, 중국인은 이 지도 모양을 가리켜 '중국은 수탉. 일본은 벌레'라고 하며, 수탉인 중국이 벌레를 잡아먹을 상이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동북아 지도를 여러번 다시 보게 되었다.

 중국이 수탉이고 일본이 벌레면 한국, 한반도는 무엇인가? 가만히 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수탉의 목 부위를 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턱수염 같기도 하다. 이 재미있는 지도 이야기를 더 확대해석하면 중국이 일본을 잡아먹을 수는 있어도 한국을 잡아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수탉이 자기 턱수염을 어쩌겠는가? 단지 견제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수탉에 먹히려는 벌레인 일본은 수탉의 위협을 어케 방어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수탉의 턱수염을 이용하는 것이다.

 현재 동북아 한중일 삼국의 실제 상황은 묘하게도 이같은 지도 이야기가 반영되어 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급격한 발전에 대해 한국과 일본는 엇갈린 반응을 보이는데, 한국은 기회로, 일본은 위기로 본다. 실제 한중일 무역 수지를 살펴보면 일본은 중국에서 무역적자를 보고 있으며 이를 한국과의 무역흑자로 채우고 있고 한국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한해 150억불 이상의 흑자를 보고 있으며 일본과의 교역에서 이 정도의 적자를 보고 있다.    

 큰 덩치의 중국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1세기초 그들의 계속된 성장과 발전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21세기초 세계의 가장 확실한 시장은 중국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중국과 인접한 우리는 성장하는 중국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21세기 초 운명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

 다시 지도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 답을 구해보면 우리는 중국의 급소 혹은 턱수염이 되어야 하며,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턱수엽을 잡고 끌면 제 아무리 큰 수탉이라도 맥을 추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지정학적으로 우리에게는 이미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분단의 역사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은 두 동각난 반도를 적절히 활용하며 맥을 못추게하고 있다. 턱수염을 반으로 잘라놓으면 턱수염을 잡아 당길 수가 없는 이치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대한반도 외교정책은 현재 반도 상황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지금 이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반면 향후 반도의 통합 혹은 자유 왕래가 실현된다면 이를 통해서 대륙을 견인할 수 있는 튼튼한 '턱수염'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중국을 움직일 수 있고 중국을 움직여 일본을 방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중국의 급소를 확실히 쥐고 중국을 움직이는, 즉 리드하는 위치에 서야 한다.

 대륙을 리드할 수 있는 조건은 지정학적으로 이미 갖춰져 있으나 이보다 더 중요한 조건은 바로 인재이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중국을 리드할 수 있는 것은 준비된 인재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중국의 아이디어 뱅크를 능가하는 우리의 아이디어 뱅크를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삼성의 '천재 경영론'은 현시대적 상황에 적중한 경영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인재를 중시하고 인재를 모으는 전략 및 정책과 함께 한국 자체의 교육 수준을 높이고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여 시대적으로 꼭 필요한 인재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대중 관계에서 중국내의 조선족과 재중한국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 내 조선족과 재중한국인의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도 중국 내부를 효과적으로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대중 관계에서 '지피지기'의 분석력을 높여야 한다. 

 경제위기를 맞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며 우리는 역사상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시대를 타고 났다. 우리가 좀 더 지혜롭고 현명해진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할 수 있으며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북아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턱수염을 제대로 잡으면 꼼짝못하지만 턱수염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수탉이 머리를 몇 번만 흔들어도 나가 떨어지게 된다. 우리는 이를 잊어서는 안된다. 현재 우리는 중국이 조금만 흔들어도 휘청이곤 한다. 이는 급소를 쥐고도 주체가 되지 못하는 참으로 한심한 현실인 것이다. 이는 한국 정치인과 관료들 중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과분한 직책을 부여받은 자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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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상징후로 군 비상…멀어지는 통일, 문제는?

최근 발생한 서해 대청도 교전 이후 북한과의 갈등이 고조 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5일 오후 북한군의 해안포 레이더가 작동한 사실이 포착돼 군 당국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1시경 북한 황해남도 지역에서 해안포 사격 레이더의 작동 징후가 포착됐는데요. 이에 군은 즉시 경계태세에 들어갔고, 대청도에 정박해 있던 참수리호도 비상상황에 돌입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군 관계자는 "서해지역의 북한군에 이상징후가 포착돼 전방경계 중이던 우리 함정이 일부 남하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전했습니다.

걱정이 됩니다. 북한이 남침할까봐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평화통일과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2000년도 초반에는 마치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을 앞둔 지금은 오히려 통일이 보이지않는군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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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깽수
    지금으로서는 통일이 멀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통일이라는게 국제정세도 중요하고

    당사국의 입장에서 본 타이밍과도 맞아야 겠지요.

    독일만 보더라도 통일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경제수준도 다시 돌아오고 했다더군요.

    우리나라는 지금 통일 해 봐야 더 후퇴되면 후퇴되었져.

    요점이랑 멀어졌네여;; 답은 하나에요. 대화or전쟁. 뻔히 아는데 몽니를 부리는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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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생체실험 보고서 파문, 신생아 살해도?


북한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했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와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5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미국 피터슨연구소의 마커스 놀랜드 선임연구원은 최근 KDI 세미나에서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경험한 억압과 처벌'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이 같은 설문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번 설문 조사 결과는 2004년 8월~2005년 9월 중국 11개 지역에 거주하는 1천346명의 탈북자와 2008년 11월 한국에 거주하는 300명의 탈북자를 일대일 인터뷰해 작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두 차례의 조사에서 중국 거주 탈북자의 55%는 '북한 수용소에서 생체 실험을 당했다'고 답했으며 '신생아 살해를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5%에 달했습니다. 한국 거주 탈북자 중 7%도 '신생아 살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또한 '처형을 목격했다'는 한국 거주 탈북자가 응답자의 51%에 달했고 '고문으로 인한 사망을 봤다'는 중국 거주 탈북자는 60%에 이르렀습니다. '급식 박탈'은 중국 및 한국 거주 탈북자 대부분이 겪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사실이라면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1세기에 생체실험이라니요.
하루 빨리 통일의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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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의 역할, 어떻게 변했나?
 
 “판문점”은 행정적으로는 남한과 북한의 어느 행정구역에도 소속되지 않는 특수지역이다. 1953년 7월 이곳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된 뒤 UN측과 북한측의 ‘공동경비구역’이 되었으며, 그 해 8∼9월에는 1개월에 걸친 포로교환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주로 휴전을 관리하는 장소로 이용되었으나, 1971년 9월 20일 열린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을 계기로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장소뿐 아니라 남·북한간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 및 남북을 왕래하는 통과지점으로도 활용되어 왔다. 약 800m의 정방형 지역으로서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양측의 경비병들이 서로 오갈 수 있었으나, 이 사건 이후 공동경비구역에서 분할경비지역으로 변모하여 서로 상대방의 지역으로 들어갈 수 없게 하였다.


  판문점에는 회담장 이외에도 남측의 ‘자유의 집’, ‘평화의 집’이 있고 북측의 ‘판문각’, ‘통일각’ 등이 있으며,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다. 자유의 집은 남북 적십자 연락관실로 쓰이다가, 1998년 새로운 자유의 집이 건축되어서 남북 회담 및 교류 지원과 남북간 연락 업무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평화의 집은 군사회담을 제외한 남북간 민간회담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북측의 판문각은 북한 경비병 사무실 및 남북 회담 북측 대표 대기실로 사용되고, 8·15범민련 대회 등이 열리고 있다. 통일각은 남측의 평화의 집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1953년 포로 송환이 있었던 다리로서, 이 다리를 건너가면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동안 판문점에서는 1976년의 8·18 사건, 이 사건으로 미군이 벌인 폴 버니언 작전 등이 있었으며, 1990년대 들어와서는 북한군의 무장병력 진입 등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어왔다. 현재 판문점의 경비책임은 UN사령부가 맡고 있으나 한국군에게 이양 될 예정이다.

※ 국가기록원에서 제공받은 글로 내용이 The Neo Renaissance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내용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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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 전쟁의 발생 배경은?
 

 “한국전쟁”이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인민군이 북위 38˚선 이남으로 무력침공함으로써 남한과 북한 간에 발생한 전쟁을 말한다. ‘6·25 사변’ 또는 ‘6·25동란’이라고도 하며,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韓國戰爭 Korean War: 일부에서는 Korean Civil War라고 주장하기도 함)”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전투행위가 계속되었다.


  한반도에서의 분단정부의 수립은 김구의 예언처럼 동족상잔의 비극을 잉태한 것이었다. 분단정부 수립에서부터 이미 한반도는 내전적 상황에 처해 있었고, 1948년 2월 7일의 남로당주도의 이른바 2.7 구국투쟁에서부터 1950년 6월 25일의 한국전쟁의 발발까지 무려 10만 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38선에서도 연대급 이상의 병력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남한의 이승만은 무력증강과 전쟁에 대비한 준비도 없이 ‘북진통일’을 주장하였고, 북한의 김일성도 〈최고인민회의 제1기 1차 회의〉 석상에서 ‘국토완정(國土完整)’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였다. 이에 김일성은 1949년 3월의 모스크바 방문과 1950년 3월의 비밀 방문 등을 통해 전쟁준비를 진행하였으며, 공산화된 중국과도 긴밀히 협의하였다. 김일성은 1950년 모택동과  비밀회담을 갖고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약속받았다. 또한 중국은 공산화 이후 공산혁명을 위해 참전했던 조선족 부대 약 2만 여명을 북한으로 보내주었다.

  이처럼 전쟁을 위한 무력증강에 힘쓰던 북한은 드디어 1950년 3월에 스탈린의 최종 승인과 5월에 모택동의 동의를 통해 전쟁을 개시할 결정적 시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은 전쟁의 개시 이전인 1950년 1월에 발표된 애치슨 당시 국무장관의 ‘한국은 미국의 동아시아 방위선에서 제외된다’는 요지의 발언은 북한의 도발을 자극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결국 북한의 김일성과·스탈린·모택동은 중국 혁명의 성공, 애치슨 선언, 그리고 남한에서의 사태 전개(유격대 투쟁과 남조선 인민 봉기의 예상)등으로 전쟁의 조건이 성숙하게 되자 1950년 6월에 전쟁을 개시하였다.

※ 국가기록원에서 제공받은 글로 내용이 The Neo Renaissance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내용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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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의 노래

 나날이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의 상주 인력이 반으로 줄고, 남북한 핫라인이 단절되고, 지금 열리고 있는 6자회담도 도무지 진전이 안되는 등 이명박 정부가 정권을 잡은 뒤로 계속 남북관계는 암울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닌 우리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아래 동영상의 노래 '그날이 오면'은 이승철, 김건모, 신화, 이효리 등 톱가수 40여팀이 참여한 통일음반 "사랑-통일염원 프로젝트"에 수록된 곡입니다.
 한국 연예제작자협회가 제작에 나선 이 음반은 8.15광복 60주년을 맞아 대중문화차원에서 통일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대표곡인 '그날이 오면'을 비롯한 창작곡 4곡은 작곡가 최준영이, 리메이크곡 10곡은 하광훈이 만들었습니다. 타이틀인 '그날이 오면'은 호소력 있는 멜로디와 빅스타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로 이미 인기를 얻었고, 그 외 리메이크곡들은 모두 북한과 해외동포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노래들입니다.

 앨범에 참여한 가수들 : 거미, 김건모, 김범수, 김종국, JK김동욱, 더 자두, 마야, 박상민, 화요비, 변진섭, 서현수, 세븐, 신화, 옥주현, 은지원, 이승철, 이애숙(코리아나), 이정현, 이효리, 인디고, 전인권, 조은, 조수미, , 쥬얼리, 최진희, 최현수(바리톤), 태진아, 페이지, 플라워, 코요태, 휘성, NRG, WAX, UN, VOS



그날이 오면

[박상민] 수없이 계절은 바껴도
[이효리] 변치않는 단 하나
[옥주현] 그대를 향한 내 그리움
[김종국] 그리워 너무 그리워

[김범수] 우리의 이별은 너무 길다
[세븐] 이젠 만나야만 한다
[휘성] 서운한 마음은 모두 잊자
[신화] 우리는 하나니까

[거미] 우리의 소원은 단 하나
[이정현] 다시 만나야만 한다
[왁스] 너와 나 두 손 꼭 잡고서
[화요비] 기쁜 노래를 부르자

[이승철]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 다시 만날 그 날
[김건모] 기쁨과 행복의 눈물로 세상 가득할 그 날을

[전체]
그리운 백두산 산새 소리
한라산이 춤을 출 때
가슴에 맺혔던 애닲음이
이제야 녹는 구나
우리의 소원은 단 하나
다시 만나야만 한다
너와 나 두 손 꼭 잡고서
기쁜 노래를 부르자
통일 노래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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