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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2)
1990년 한강 대홍수를 기억하십니까?

 


 1990년 9월 9일부터 12일까지 한강 전역(중부지방)에 많은 비가 집중적으로 내렸다. 경기도 이천 581mm, 수원 529mm, 강화 512mm, 홍천 508mm, 양평 491mm. 서울 486mm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경기도 이천, 수원의 시간당 최대강우량은 각각 59mm와 56mm, 1일 최대강우량은 경기도 수원이 296.3mm가 내렸다.

 1990년 9월 9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중부지방의 집중호우는 평균 452mm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곳곳에 크고 작은 많은 수해를 발생시켰고, 한강 수위는 집중호우와 한강수계 댐들의 방류량 증가로 인도교 수위는 11.27m을 기록했다.
 
 이 홍수로 인하여 한강하류의 수위는 급상승하였고 일산제방의 하단이 무너져 고양군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던 한강의 제방붕괴를 발생시킨 대표적인 홍수로 기록되고 있다. 한강의 격류가 고양군 지도읍 신평리 강둑을 무너뜨리며 쏟아져 들어가 민가와 농지를 덮으며 계속 능곡과 일산쪽으로 퍼져나가 수막산까지 물바다를 이루었다. 지붕만 보이는 민가에는 가축들과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이 지붕위로 올라가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농경지 5,000여ha가 침수되었으며 불의의 사고로 이재민이 된 5만여명의 주민들은 행주산성 등 인근 고지대로 대피했으나 다수의 주민들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물바다 한가운데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강 대홍수로 인하여 126명이 사망하고 37명이 실종되었으며, 187,26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5,203억원의 재산피해를 가져왔다.

 1990년의 ‘한강 대홍수’가 계기가 되어 동강댐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영월댐 건설이 추진됐지만, 청정지역인 동강을 보전해야 한다는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때문에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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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피해가 컸던 수해는?
을축년 대홍수 


 우리나라를 휩쓸고 간 1925년 을축년 대홍수는 7월 6일부터 20일까지 15일간의 장마로 전국에 걸쳐 1년간의 내릴 비의 80%정도인 700~970mm의 비가 내렸고, 장마 전선이 한 달 이상 한반도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서울, 지방을 비롯한 전국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네 차례의 큰 홍수이다. 7월부터 9월 초에 걸친 호우 피해로 인하여,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해당하는 1억 300만원의 피해를 냈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1차 홍수는 7월 7일 대만 부근에서 발생한 태풍(열대저기압)이 11일과 12일에 중부지방을 통과하여 북쪽으로 빠져나갔는데, 이 때문에 황해도 이남지방에 300~500mm의 호우가 내려 한강, 금강, 만경강, 낙동강 등이 범람하였다.

 2차 홍수는 1차 홍수의 물이 충분히 빠져나가기도 전인 7월 14일에 다시 대만 부근에서 열대성 저기압(태풍)이 발생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의 황해 북부 근해를 지나가면서, 그 오른쪽 반지름에 들어간 임진강과 한강 유역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16~18일까지 계속내린 비의 양은 한강과 임진강 분수령부근에서 650mm에 이르렀고, 이로 말미암아 임진강과 한강이 크게 범람을 일으켰다. 18일 한강의 수위는 뚝섬 13.98m, 인도교 11.66m, 구용산 12.74m로서 사상 최고기록을 남겼다.

 3차 홍수는 8월 들어 중국에서 발생한 저기압이 황해로 나와 한만 국경을 관서지방에 호우를 뿌려서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이 범람하여 숱한 피해를 냈다.

 4차 홍수는 8월말 마리아나제도 부근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이 9월 6일 제주도 남방에서 목포 ․ 대구를 거쳐 동해로 빠져나가면서, 남부지방에 많은 비가 내려 낙동강, 영산강, 섬진강이 범람하였다. 이와 같이 4차례에 걸친 열대성 저기압에 의한 홍수로 전국에서 사망자가 647명, 가옥유실 6,363호, 가옥붕괴 17,045호, 가옥침수가 46,813호에 이르렀다. 또한 유실한 논이 3,218ha, 밭이 6,755ha 등으로 그 당시의 피해액은 무려 1억여원이었다. 이 금액은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해당하는, 실로 엄청난 피해를 겪은 사상 최대의 대홍수였다.

자료제공: 국가기록원

수해에 대한 더 많은 기록이 국가기록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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