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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천국과 지옥의 혼재


수도 베이루트(Beirut)

 중동의 파리라는 별명을 가진 이 도시는 프랑스 파리와 자매결연이 되어있다. 레바논의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 인구는 150만 안팎이다. 서울특별시의 한개 구 정도의 면적에 두개구 이상의 인구를 합쳐놓은 사람들이 사는지라 인구밀도는 매우 높다.

 

*베이루트 시내전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루트는 두 개의 도시가 하나로 합쳐진 것으로 봐도 무방할 만큼 동베이루트와 남베이루트가 천지차이를 이룬다. 동베이루트는 레바논 인구의 41%를 차지하는 카톨릭 기독교도 마로니테스(Maronites) 의 거주지역이다. 동베이루트의 전경은 그야말로 파리를 중동으로 옮겨온 것과 다를바 없다. 전쟁 전에는 지중해에서 최고의 휴양도시중 하나였던 베이루트. 동베이루트에 한해 아직 그 말이 유효하다. 고급승용차가 거리에 즐비하고 빌딩들이 우뚝 솟아 있으며 남녀 쌍쌍 모여 다니고 각양각색의 옷차림을 자랑한다. 여자들의 노출도 이곳에서는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동베이루트는 이슬람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폭격당해 폐허가 된 남베이루트

 반면, 남베이루트는 아귀지옥이다. 남베이루트는 레바논의 국제적으로 악명높은 테러조직 헤즈볼라가 속해있는 종파인 이슬람 시아파 주민들의 거주지역이다. 시아파는 레바논 전체인구의 25%를 차지한다. 즉, 이스라엘 공군이 베이루트를 폭격했다는 말은 사실은 동베이루트가 아닌 남베이루트를 폭격했다는 말이다. 동베이루트는 애초에 이스라엘 공군의 폭격대상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은, 완전 다른 도시라는 것이다. 남베이루트의 상황은 처참하다. 길거리의 건물들은 폭격을 당해 모두 폐허가 되어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폭탄이 터지며 도시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어있는 아비규환의 상태이다. 밤마다 공습의 공포에 시달린다. 남베이루트는 죽은 도시다. 길거리에는 인적이나 차량을 찾아보기 힘들다.

 
레바논의 1인당 국민 소득은 7천불. 우리나라의 반 수준이고, 태국과 비슷하지만 태국보다는 약간 우위에 있다. 이 나라는 세개의 종파가 각기 다른 공동체를 이루면서도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는 조화속에서 살아가는 평화로운 나라였고 십여년전에는 최고의 휴양국가로 손꼽히는 지중해의 꽃이었다. 이 나라가 전쟁의 화염에 휩싸이게 된것은 역시나 종교 때문이다. 레바논은 마로니테스 41%, 이슬람 50%(시아파 25%, 수니파 25%)로 구성되어 있다. 민족은 아랍인이지만 여타 중동의 아랍인들과는 조금 달라 생김새가 유럽에 가깝다. 공용어는 아랍어이나 동베이루트 지역에서는 프랑스어나 영어가 사용가능하다. 레바논은 전체적 인구 비율로 보아서는 이슬람 인구비율이 50%가 넘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이들은 수니와 시아로 구별되기 때문에 최대정파를 이끌고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나라의 주류종파는 41%의 마로니테스들이다. 이 탓에 레바논은 터키와 마찬가지로 일부다처제가 불법인 세속주의국가다. 이 나라는 아랍 최대의 연예계를 가지고 있다. 다른 아랍국가 청년들은 (가부장 아버님의 눈길을 피해)레바논TV를 시청한다. 여자 가수나 여배우들의 공공연한 노출이 가능한 곳이 중동에서는 유일하게 레바논 하나뿐이다.

 

 *미스 레바논 출신의 레바논 여가수 하이파 와흐비(Haifa Wahbe). 그녀는 남베이루트 출신이고, 종교는 시아파 이슬람이다. 하지만 레바논에서는 이러한 그녀의 과도한 노출(?)이 문제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레바논도 한계점은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는 올해 나이로 30세. 한 번 이혼한 전력이 있는데, 역시 이슬람인구가 반이 넘는 국가답게 아직도 커스터디 로(Custody law)가 적용된다. 그녀는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이혼 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우디 배불뚝이 석유재벌이 던져주는 고급 승용차와 향수에 혹해서 약혼까지 갔다고 하니, 그녀가 딸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애끓는 모성을 소유한 것 같다고는 생각되지 않고, 자연히 동정이 가지도 않는다. 아, 한 가지 더. 오빠가 24살 때에 이스라엘과의 교전에서 전사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증오한다고 한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는 이슬람 시아파에 속하는 레바논의 정당임과 동시에 무장조직이다. 헤즈볼라는 무장조직이긴 하지만, 선거를 통한 정당한 방식으로의 이슬람 국가 건설에 목표를 두고, 여러 사회 복지 시설도 많이 운영하는 비교적 온건한 단체로 레바논 국민들도 처음에는 그들에 대해 그다지 거부감이 없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그를 돕고 있는 미국을 증오한다. 흔히들 시아파라고 하면 무장 테러집단을 떠올리고, 수니파는 온건한 이슬람 종파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한참 잘못된 오해이다. 알 카에다를 비롯한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 테러조직의 대부분은 수니파이다. 헤즈볼라만이 규모가 큰 시아파 테러조직이다. 수니파가 온건하다는 것은 그만큼 말 안 통하고 고집스럽게 이슬람 식으로 산다는 것을 뜻한다. 수니파는 코란의 해석을 자신들의 정통식 이외의 다른 방면으로 접근하는 것을 철저히 거부한다. 반면 민주화를 이룩해내 상당수준의 여성복지와 여성참정권을 만들어낸 이란은 시아파다. 시아파는 소수파이긴 하지만 과격파는 아니다.  헤즈볼라의 테러수준은 알카에다의 그것에 비교하면 어린애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이집트라면 이를 갈기 때문에 헤즈볼라는 레바논의 밉살맞은 이슬람에게 폭탄을 떨어트릴 괜찮은 트집거리가 된것이다.

 레바논은 아직도 치안이 불안하다. 수도 베이루트의 한부분에서는 여전히 지금도 포탄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동베이루트에서는 메르세데스 벤츠 안에서 오렌지족 남녀가 서로 좋아 뜨거운 키스를 퍼붓고 있다. 레바논 기독교사회는 이스라엘의 공습이 레바논 전체에 대한 공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고작 "그래도 같은 나라 국민인데, 시아파 사람들을 구호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물자를 지원하는 정도이다. 세 종교가 섞여 사는 나라 레바논. 천국과 지옥이 혼재하는 나라 레바논. 그렇기에 앞으로 어찌될 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나라, 바로 레바논이다.

 

*레바논 국기. 가운데의 삼목은 레바논에서 가장 많은 수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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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전통예술, 나전칠기

우연히 나전칠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만으로는 조금 부족한감이 국보이야기(ww.kookbo.com)라는 사이트를 운영하시는 유수근 실장님(명인 선생님의 조카라고 하십니다)께 메일을 보내 문의한 결과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螺鈿漆器라 함은 잘 건조되고 눈매가 고운 목재(고사목)를 이용하여 물건의 모양을 제작한 뒤(일명 백골이라고도 함) 여기에 헝겊과 여러가지 材料를 첨가한 뒤 옻칠을 한 뒤에 전복, 소라, 진주, 조개 등의 자개를 갈고 세공하여 수놓은 제품을 통털어서 螺鈿漆器라 합니다. 하나의 완전한 제품이 완성되기까지는 3~6개월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한국의 螺鈿漆器의 起源을 살펴보면 樂浪時代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古證과 遺物에 의하면 7~10世紀의 統一新羅時代에 螺鈿漆器가 성행하기 시작하였으며, 11世紀나 高麗文宗때

조정에서 螺鈿漆器 제품들을 제작할 수 있게 工房制度를 두어 운영하였고 이곳에서 제작되는 螺鈿漆器들은 외국의 사신들이나 왕에게 선물로 보내졌다고합니다. 오늘날 일본, 독일,

미국, 영국, 화란 등지의 박물관에 소중히 소장되고 있는 것들은 그 당시의 선물로 보내졌던 것으로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螺鈿漆器工藝品이라 할 것입니다.

螺鈿漆器에 사용하고 있는 옻칠은 그 强度가 漆중에서 가장 강한 것이며, 그 壽命 또한 永久不變일것입니다. 光澤은 온화하면서도 유유하고 은은히 빛나는 영롱한 색상입니다.

Najeon Chilgi, the wooden 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of-Pearl, is truly a cultural asset of Korea. The art of Najeon Chilgi is used to make items from jewelry boxes to chests, dressers and desks.

The two main materials used in making Najeon Chilgi are the lacquer coating and mother-of-pearl. Korean mother-of-pearl made from the shining, unchangeable beauty of pearl oyster or abalone, is considered to be the jewel of the Orient.

Traditional technique is a complicated and painstaking process consisting of more than twenty steps. The manufacturing can be roughly divided into several processes; pasting hemp cloth on the surface of the wooden frame; coating the surface with natural lacquer; spraying powdered ox bone on the surface;

inlaying the patterned mother-of-pearl on the pitch black background; and then repetition of lacquering and polishing. It takes 3~6 months to complete a product.

The art of Najeon Chilgi dates back to the Nakrang period.

According to research, Najeon Chilgi already prevailed in the period of Shilla(7~10AD). Then the government operated a workshop system to make Najeon Chilgi products in the reign of King Munjong in Koryo(11AD). The Najeon Chilgi made there were presented to foreign Kings and envoys. Art pieces of Najeon Chilgi are kept in museums of Japan, Germany, U.S.A, England, Netherlands and many other countries all over the world. The varnishing with lacquer is the strongest among varnishes, which makes life of these pieces perman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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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성전과 약탈의 역사
 지중해를 무대로 전개된 문명교류의 역사

- 십자군, 성전과 약탈의 역사를 읽고

서점을 찾았을 때, 이 책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인데다가 요즘 문화교류사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십자군 전쟁을 통해 지중해를 무대로 전개된 문명교류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십자군전쟁을 지중해 양편의 기독교 유럽과 이슬람교 중동이 본격적으로 대립하고 충돌한 사건임과 동시에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의 융합을 촉진한 사건으로 보고 있었다.

11세기 이후 서유럽 사회는 안으로 인구의 증가, 농업 생산의 증대, 도시의 부활 등으로 오랜 침체 끝에 수세의 입장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대외 진출을 꾀하였다. 엘베 강을 넘어 독일인이 슬라브 땅에 식민 운동을 시작하였고,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이슬람교도에 대한 재정복 운동이 전개되었다. 무엇보다도 교황권의 신장, 이탈리아 상인과 봉건 제후들의 세속적 욕망, 성지 탈환등 여러 요인이 복합되어 일어난 십자군 전쟁이 유럽 세력 팽창의 대표적 사건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십자군 전쟁처럼 성스러운 이름에 가장 세속적인 욕망이 결합된 전쟁은 없으며, 신의 이름을 빌어 약탈과 살인․만행이 판을 친 전쟁이 없을 것이다. 전쟁의 발단은 예루살렘이었다. 예루살렘은 유대인․기독교인․이슬람 인 공통의 성지였다. 유대인에게는 다윗의 우물이 있는 어머니 도시요, 기독교도에겐 예수가 죽어 부활한 곳, 이슬람교도에겐 마호메트가 머무른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 예루살렘을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인들은 기독교인의 성지 순례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셀주크 투르크 족이 이 지역을 장악하면서부터 기독교인의 성지 순례는 금지되었다. 셀주크 투르크 족은 중앙 아시아에서 일어난 민족으로서 열렬한 이슬람교도가 되어 세력을 팽창시키고 있었다. 위협을 느낀 동로마 제국 황제 알렉시우스 1세는 교황 우르반 2세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우르반 2세는 이것이 비잔틴 교회를 로마 교회에 복속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1095년 11월 우르반 2세는 클레르몽에서 회의를 개최, 성지탈환을 위한 십자군 파병을 제창했다. 웅변술 이 뛰어났던 그는 성지 예루살렘을 잃은 기독교도들의 비참한 생활과 투르크 족의 위협을 설명하고, 이슬람의 승리는 기독교 세계의 불명예라고 열변을 토했다. 이 전쟁은 성전이며, 전사자는 모두 천국에 가서 그 보상을 받을 거라고 역설했다. 그뿐 아니라, 동방엔 금은 보화가 깔려 있고 아리따운 이슬람 여인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며 제후들의 욕심을 부채질했다.

1095년 삐아첸자(piacenza)와 끌레르몽(Clermont) 교회 회의에서 교황 우르바노 2세는 동로마제국의 알레시오 황제가 파견한 자들로부터 동로마제국의 위급한 상황을 전해듣고 그리스도의 무덤을 되찾고 동방의 그리스도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원정군을 보내자고 호소하여 제1차 십자군 원정(1096~1099년)이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돌아가시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준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대한 열망, 동방과의 무역을 원하는 이탈리아 상인들의 상업적인 야심등의 요인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십자군이 결성되었다. 특히 십자군에 참가하여 대사를 받고 전사할 경우 순교자가 된다는 것도 열성적인 신자들을 원정군에 쉽게 참가하게 하였다. 그러나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제1차 원정에서는 비조직적이고 계몽되지 않은 농부들도 많이 참가하여 교회 역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들이 라인 지방을 지날 때, 흥분한 나머지 유태인들에 대한 박해로 유혈 참사가 일어났는데 발칸 지역을 지날 때에도 지휘자의 통솔을 제대로 받지 않은 이들은 지방 주미들에게도 방화와 학살로 참극을 일으켰다. 전투경험이 전혀 없는 많은 원정군들이 예루살렘에 도달하기도 전에 셀주크족의 공격을 받아 전멸하였다. 그러나 나머지 원정군들이 악전고투 끝에 1098년 안티오키아를 함락하고 1099년 7월 예루살렘을 정복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부녀자와 유아와 노인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참살하는 비 그리스도교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서유럽에서 이곳까지 도달하는 전투에서 이슬람군들의 매복병들의 습격을 받아 매일 매일 수많은 동료들이 전사하는 가운데 겨우 살아 남은 이들의 보복심리와 이슬람 군들의 항전의 악순환이 서로를 살육의 참상으로 몰고 갔다.

이런 악순환의 결과는 생사의 기로에서 양측 모두 이성적인 자제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신앙의 가르침과는 전혀 무관하게 생존의 본능만이 절대 기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제2차 원정은 이슬람 세력의 반격으로 에뎃사가 함락(1144년)되면서 시작되었는데(1147~1149),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의 설교로 추진되었지만 터키인들과의 여러 번의 전투에서 전멸되어 결국 예루살렘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제3차 원정(1188~1192)은 붉은 수염의 프리드리히(Friedrich)황제가 인솔한 잘 조직된 십자군들이 이코니움에서 터키인들과 싸워 혁혁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황제가 1190년 살레프에서 익사함으로써 지휘자를 잃은 군대는 더 이상 진군할 수 없었다.

영국의 왕 리차드(Richard) 1세, 프랑스의 필립(Philipp) 2세등이 참가하여 예루살렘 재탈환에는 실패하였지만 십자군들이 성지의 새로운 지역을 정복하고 살라딘 술탄과 화해하여 그리스도교인들에게 평화로운 예루살렘 순례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제4차 원정(1202~1204)은 교황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호소로 시작되어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의 모두가 마지막으로 이 원정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십자군들은 완전히 교황의 의사를 거스르고, 이기적이고 상업저인 이해관계에서 베네치아의 상인들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을 함라가하고(1204. 4.13)라틴 제국이 그곳에 설립되는 엉뚱한 결과를 낳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 되시는 심하게 약탈되고 황폐하였으며, 이러한 난폭하고 비이성적인 행동은 동서교회의 분열을 더욱 심화시키고 이슬람 세력에 대한 동방세계의 방위력이 결정적으로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 5차 원정(1217~1221년)은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십자군 원정이 결정되어 1217년에 실행되었다. 프리드리히 2세가 십자군 파견을 약속했으나 이행하지 않아 파문을 받았다. 원정군은 동유럽의 신흥 그리스도 국가의 약소한 군사력으로 편성되어 이집트를 공격하여 다미에타를 공격하는 적은 성과를 거두었을 뿐이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성지 재탈환을 복음 정신에 따라 평화로운 포교로 해야 한다는 본래의 정신에 따라 무방비 상태로 성지에 가서 술탄을 설득시키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술탄이 성인을 너그럽게 대우하여 풀려났고, 이것을 계기로 프란치스코회의 평화로운 선교활동이 성지에서 시작되었다.

제 6차 원정(1228~1229년)은 교회 당국과는 무관하게 파문 중에 있는 프리드리히 2세 황제의 개인적인 원정이었다. 그는 이집트 술탄과의 담판을 통해 예루살렘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반환시키는데 성공하였지만, 그후 1224년 결정적으로 다시 잃게 되었다.

제 7차 원정(1248~1254년) 및 8차 원정(1270년)이 모두 실패함으로써 실제적인 원정은 모두 끝났다. 프랑스의 성왕 루이 9세는 우선 이집트를 정복한 후에 성지를 점령하려 하였으나 1205년4월 카이로에서 완패 당해 후퇴했는데 그의 군대에 전염병이 돌아 전의를 상실하고 포로가 되었고 그의 부하를 위해서는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고 그 자신은 이슬람에게 다미에타(Danietta)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풀려났다.

서방에서는 차츰 십자군 원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조성되고 비폭력적인 설교를 통해 이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려는 운동이 일어났으며 유럽 자체 내에서는 이교도 문제, 즉 스페인의 무어인, 이교 슬라브인, 프랑스 남부의 알비파 이단등 더 현실적인 문제들이 다가왔다. 이로 인해 십자군 원정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사실 십자군 전쟁은 모든면에서 성공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십자군전사들이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데다 무장마저 허술 했던 것, 당시의 교통통신 수단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먼 지역으로 원정한 것, 국왕과 대영주들이 참전해 지휘부가 대립한 것, 중동 이슬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데다 심자군 원정의 기본 이념마저 변질된 것 등을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라 하겠다.

십자군운동은 우선 유럽에서 교황권의 후퇴, 국왕 권력의 강화와 중앙집권화, 도시와 상업의 발달, 이슬람문화와의 접촉에 의한 문화의 발달 등 모든 일과 관계가 있다. 즉 교황에 의해 제창된 운동의 실패는 그대로 교황의 권위를 약화시켰다. 전사(戰死)에 의해 단절된 귀족 가의 소유영지는 왕령(王領)에 편입되어 왕권의 기반을 강화하였다.

십자군운동으로 최대의 경제적 이익을 본 것은 북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였다. 십자군에 참가한 유럽인들은 미지의 이질적인 세계를 발견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영향을 과대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왕권의 강화는 봉건사회 내부 전개에 기본적 요인을 가지고 있었다. 봉건적인 분열상태에 있을 때에만 유럽세계를 관념적으로 통합할 수 있었던 교황권은 왕권에 의한 중앙집권화와 더불어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와 상업의 발달은 십자군운동의 전제조건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대규모의 군대를 먼 곳까지 보낼 수도 없었고 다량의 식량과 무기를 모으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동방문화 유입의 중심지는 시칠리아와 에스파냐였다. 유럽인은 이교문화(異敎文化)에 접하면서도 최후까지 관용의 정신을 배우는 일이 없었다.

또한 제4회 십자군에 의해 와해된 비잔틴제국은 다시 부활하지만 이미 소국에 지나지 않았으며 몰락은 결정적이었다. 그 때문에 비잔틴제국은 이제까지 수행해오던 유럽의 방벽 역할을 잃게 되었다. 이슬람세계에 대한 영향도 컸다. 이슬람교도는 관용의 정신이 풍부했다. 그러나 십자군의 공격을 받게 되자 그들 사이에 점차 비관용성과 민족의식이 고취되었으며, 성전(聖戰)에 대한 정열은 높아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중해를 배경으로 비록 무력을 동원한 충돌이었지만 두 문명이 교류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책 또한 그동안 읽었던 많은 십자군 전쟁에 관한 책들과 마차가지로 지나치게 유럽의 관점에서 쓰여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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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최초! 성에 대한 설문조사!

중동최초 성에 대한 설문조사의 결과

 중동에서 사상최초로 행해진 설문조사의 결과입니다. 세계적인 콘돔회사 듀렉스(Durex)가 행한 이번 설문조사에는 아랍권 10여개국에서 3189명이 참여했습니다. 이 중에는 642명의 여성이 참여해 전체 응답자의 18%를 차지해 아랍권 여성들도 점차 성생활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아랍인들이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연예인 1위, 레바논의 가수 엘리사)

다음은 주요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1. 주요 피임방법은?

콘돔: 44.9%
피임약: 10.9%
질외사정: 10.7%
사용하지 않는다: 11.5%
참는다: 6.9%

 (역시 콘돔이 가장 응답률이 높았습니다. 참는다는 대답도 6.9%나 나왔네요ㅋㅋ)

 2. 얼마나 자주 섹스를 하는가?

하루에 한번 이상: 12.8%
일주에 5-6번: 9.2%
일주에 3-4번: 14.6%
일주에 두번: 15.1%
일주에 한번: 11.5%
이주에 한 번: 5.8%
한달에 한번: 3.3%
2-3개월에 한번: 3.4%
6개월에 한번:  1.6%
거의 하지 않는다:  7.3%
한번도 해본적 없다: 15.0%

(마지막 응답을 보면 역시 성에 대해 비교적 폐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3. 몇살때 공개적인 성교육을 받았는가?

 10살 미만 5.9%
11-13세 18.8%
14-16세 26.0%
 16세 이14.2%
 전혀 받은 적이 없다 27.1%

4. 성교육은 누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부모: 36.4%
학교 41.6%
 의사/간호원 4.5%
 정부 3.9%
 잡지/서적/인터넷 4.7
 기타 5.0

 5. 처음 만나거나 잘 모르는 사람과 섹스를 해본 경험이 있나?

 있다 39.9% 
 없다 60.1%

6. 섹스 상대를 잘 모를 경우 우려되는 것은?

에이즈 53.1%
걱정되는 것 없다 21.0%
매독, 임질 등 성병 14.2%
임신 11.7%

7. 상대방을 가장 섹시하게 보이게 하는 부분은?

가슴 18.7%
피부 색 15.7%
얼굴 12.3%
눈 11.7%
히프 8.9%
유머 8.7%
지성미 7.8%
미소 7.0%
다리 4.4%
나이 2.0%
돈 1.6%
키 1.1%
머리 색 0.2%

(우리나라나 서양과 달리 각선미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 안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중동의 경우 풍만한 여성을 아름답다고 여긴다고 알고 있습니다.)

 8.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연예인은?(Top 5만 적습니다)

 안젤리나 졸리 11.1%
 엘리사 (레바논 여가수) 8.7%
 캐서린 제타 존스 7.6%
 제니퍼 로페즈 6.4% 
 낸시 아그람 (레바논 여가수) 6.1%

 9. 중동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는?(Top 4만 적습니다)

 레바논 베이루트 36.2%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14.1%
 모로코 카사블랑카 12.8%
 이집트 카이로 10.8%

10. 가장 섹시한 머리 색깔은?

 검은색 36.3%
 갈색 26.6%
 금발 21.7%
 빨간색 10.0%

 11.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경험은?

  있다 21.2%
  없다 78.8%

(자료참조:서정민 기자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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