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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가끔 엿볼 수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사실 현실속에서, 특히 우리나라의 상류층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기대하는 사람은 몇 안될 것이다.

 혹시 조선시대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비슷한 개념이 있었을까?


 놀랍게도 있었다. 조선왕조 실록 정조편에 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사례가 잘 나타나 있다.

우연히 발견한 조선왕조의 독특한 기록을 읽으며
대한민국의 상류층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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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과 세종대왕의 거짓말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짱와로 서로사맛디아니할새

이런젼차로 어린백셩이 니르고저 홇베이셔도

마참내 제뜨들 시러펴디 못할노미하니라

내 이랄위하야 어엿비녀겨

새로 스물여듫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수비니겨 날로쑤메 편안케 할 따라미니라

 위의 글은 세종어제훈민정음의 내용으로,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는 이 글에 세종대왕의 애민정신, 자주정신, 실용정신, 창조정신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중 애민정신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과연 세종대왕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글을 만들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세종대왕은 조선 초기의 왕으로 조선왕조의 정당성을 만백성에게 알려야했다. 그러기위해서는 백성들 모두가 보다 쉽게 볼 수 있는 새로운 문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훈민정음으로 쓰여진 최초의 문헌은 '용비어천가'이다. 그 내용은 역성혁명이 천명임을 백성들에게 알려 조선건국의 합리화를 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세종은 조세제도를 바꿨는데, 이를 알릴 문자가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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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트
    생각지도 못하던 사실이네요;
  • 안타깝습니다.
    당시 세종대왕은 자신의 조부가 건국하고 아버지가 기틀을 잡은 조선을 이끌어가야 하는 숙명을 어깨에 지고 군주자리에 올라섰습니다. 당연히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백성들의 마음 속 깊이 새겨넣어야만 했습니다. 그건 거부 할 수 없는 과업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이 쉽게 익힐 수 있는 훈민정음으로 알리는건 당연한거 아닙니까~ 그리고 세종은 재위기간동안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근데 고작 용비어천가를 통해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알리려 했다는 사실과 조세제도 사례만으로 그의 마음을 폄하하는건 그저 졸렬한 수작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세종대왕이 언급한 그 이유들보다 더 큰 이유가 숨어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뿐입니다.
  • Fashion community attracts numerous teenagers today not simply given that it is a alternatively new career, but additionally it really is intended to realise person's likes from the field of trend. Furthermore, it can be really a high-paid profession currently. Any time a younger human being decides to link her or his exercise using the vogue market place next to nothing arrives to thoughts apart from an individual its part - style layout. In all probability, several persons in fact know that it truly is a separate discipline of vogue industry. Believe it or not, you can find a fantastic quantity of other professions and specialties in such as creating clothing, design and style, selling, merchandising, and s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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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전통예술, 나전칠기

우연히 나전칠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만으로는 조금 부족한감이 국보이야기(ww.kookbo.com)라는 사이트를 운영하시는 유수근 실장님(명인 선생님의 조카라고 하십니다)께 메일을 보내 문의한 결과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螺鈿漆器라 함은 잘 건조되고 눈매가 고운 목재(고사목)를 이용하여 물건의 모양을 제작한 뒤(일명 백골이라고도 함) 여기에 헝겊과 여러가지 材料를 첨가한 뒤 옻칠을 한 뒤에 전복, 소라, 진주, 조개 등의 자개를 갈고 세공하여 수놓은 제품을 통털어서 螺鈿漆器라 합니다. 하나의 완전한 제품이 완성되기까지는 3~6개월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한국의 螺鈿漆器의 起源을 살펴보면 樂浪時代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古證과 遺物에 의하면 7~10世紀의 統一新羅時代에 螺鈿漆器가 성행하기 시작하였으며, 11世紀나 高麗文宗때

조정에서 螺鈿漆器 제품들을 제작할 수 있게 工房制度를 두어 운영하였고 이곳에서 제작되는 螺鈿漆器들은 외국의 사신들이나 왕에게 선물로 보내졌다고합니다. 오늘날 일본, 독일,

미국, 영국, 화란 등지의 박물관에 소중히 소장되고 있는 것들은 그 당시의 선물로 보내졌던 것으로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螺鈿漆器工藝品이라 할 것입니다.

螺鈿漆器에 사용하고 있는 옻칠은 그 强度가 漆중에서 가장 강한 것이며, 그 壽命 또한 永久不變일것입니다. 光澤은 온화하면서도 유유하고 은은히 빛나는 영롱한 색상입니다.

Najeon Chilgi, the wooden 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of-Pearl, is truly a cultural asset of Korea. The art of Najeon Chilgi is used to make items from jewelry boxes to chests, dressers and desks.

The two main materials used in making Najeon Chilgi are the lacquer coating and mother-of-pearl. Korean mother-of-pearl made from the shining, unchangeable beauty of pearl oyster or abalone, is considered to be the jewel of the Orient.

Traditional technique is a complicated and painstaking process consisting of more than twenty steps. The manufacturing can be roughly divided into several processes; pasting hemp cloth on the surface of the wooden frame; coating the surface with natural lacquer; spraying powdered ox bone on the surface;

inlaying the patterned mother-of-pearl on the pitch black background; and then repetition of lacquering and polishing. It takes 3~6 months to complete a product.

The art of Najeon Chilgi dates back to the Nakrang period.

According to research, Najeon Chilgi already prevailed in the period of Shilla(7~10AD). Then the government operated a workshop system to make Najeon Chilgi products in the reign of King Munjong in Koryo(11AD). The Najeon Chilgi made there were presented to foreign Kings and envoys. Art pieces of Najeon Chilgi are kept in museums of Japan, Germany, U.S.A, England, Netherlands and many other countries all over the world. The varnishing with lacquer is the strongest among varnishes, which makes life of these pieces perman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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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shion community attracts numerous teenagers today not simply given that it is a alternatively new career, but additionally it really is intended to realise person's likes from the field of trend. Furthermore, it can be really a high-paid profession currently. Any time a younger human being decides to link her or his exercise using the vogue market place next to nothing arrives to thoughts apart from an individual its part - style layout. In all probability, several persons in fact know that it truly is a separate discipline of vogue industry. Believe it or not, you can find a fantastic quantity of other professions and specialties in such as creating clothing, design and style, selling, merchandising, and so on.
  • Fashion community attracts numerous teenagers today not simply given that it is a alternatively new career, but additionally it really is intended to realise person's likes from the field of trend. Furthermore, it can be really a high-paid profession currently. Any time a younger human being decides to link her or his exercise using the vogue market place next to nothing arrives to thoughts apart from an individual its part - style layout. In all probability, several persons in fact know that it truly is a separate discipline of vogue industry. Believe it or not, you can find a fantastic quantity of other professions and specialties in such as creating clothing, design and style, selling, merchandising, and s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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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의 흑인병사 화제


 임진왜란 때 흑인병사가 참전했었다는 기록이 화제다.



그 흑인은 파랑국(지금의 포르투갈) 출신이었는데, 조선왕조실록은 그를 조총을 잘 쏘고 여러가지 무예를 지녔다고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포르투갈 출신의 흑인이라니...정말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이 밖에도 조선왕조실록에는 시선을 끄는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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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레즈비언이 있었을까?

놀랍게도 조선왕조실록에 레즈비언에 대한 기록이 있다.

세종의 맏아들인 문종의 두번째 부인인 봉씨가 궁궐의 여종을 사랑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  레즈비언은 비가시화되어 있다. 1996년 서울방송의 <송지나의 취재파일>을 통해 전해성과 이해솔 등 여러 명의 레즈비언이 커밍아웃했다. 그러나 이들의 커밍아웃이 다른 레즈비언들의 커밍아웃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아직까지 레즈비언은 사회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끼리끼리'와 같은 레즈비언 인권 운동 단체들은 레즈비언들이 여성임과 동시에 성적 소수자이기에 이중 억압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청소년 레즈비언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훈육과 교정이 필요한 존재들로 타자화되고 있다. 2006년에 문화방송은 청소년 이반에 관해 왜곡된 보도를 내보낸 바 있어 성적 소수자 인권 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각각 2005년과 2006년에 제작된 단편 다큐멘터리 <이반 검열>과 <이반 검열, 두 번째 이야기>는 학교 안팎에서 일어나는 청소년 이반 억압 사례를 다루고 있다.

제대로 정체성을 드러내고 활동할 수 없게 하는 현실과는 달리, 인터넷은 레즈비언들에게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있다. 다음, 네이버 등 여러 포털 사이트들에 레즈비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건설되어 있다. 티지넷이나 미유넷은 레즈비언들을 위한 사이트로서, 많은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주로 신촌이나 홍대, 이태원 지역의 레즈비언 전용 클럽들이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중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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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 한반도 긴급회의 소집…대체 왜?

유엔(UN;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가 현지시간으로 18일 갈등이 악화되고 있는 한반도 현 상황과 관련해 긴급회의를 소집할 것으로 예상돼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유엔 안보위 관계자는 남북한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문제를 다룰 안보리 긴급회의가 토요일에도 불구하고 이날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고, 또 다른 외교관은 오후 3시에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습니다.

18일에 예정된 연평도 사격훈련에 대해 북한이 "우리 민족이 핵으로 뒤덮일 것"이라고 경고했고, 러시아와 중국 또한 반대 의사를 밝힌 가운데 네티즌들의 갑론을박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다수 네티즌들이 "No War"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훈련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주장하는 네티즌들도 상당 수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정치적 외교적 명분도 한반도의 평화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며, 어떠한 군사적 행동도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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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상징후로 군 비상…멀어지는 통일, 문제는?

최근 발생한 서해 대청도 교전 이후 북한과의 갈등이 고조 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5일 오후 북한군의 해안포 레이더가 작동한 사실이 포착돼 군 당국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1시경 북한 황해남도 지역에서 해안포 사격 레이더의 작동 징후가 포착됐는데요. 이에 군은 즉시 경계태세에 들어갔고, 대청도에 정박해 있던 참수리호도 비상상황에 돌입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군 관계자는 "서해지역의 북한군에 이상징후가 포착돼 전방경계 중이던 우리 함정이 일부 남하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전했습니다.

걱정이 됩니다. 북한이 남침할까봐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평화통일과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2000년도 초반에는 마치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을 앞둔 지금은 오히려 통일이 보이지않는군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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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깽수
    지금으로서는 통일이 멀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통일이라는게 국제정세도 중요하고

    당사국의 입장에서 본 타이밍과도 맞아야 겠지요.

    독일만 보더라도 통일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경제수준도 다시 돌아오고 했다더군요.

    우리나라는 지금 통일 해 봐야 더 후퇴되면 후퇴되었져.

    요점이랑 멀어졌네여;; 답은 하나에요. 대화or전쟁. 뻔히 아는데 몽니를 부리는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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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생체실험 보고서 파문, 신생아 살해도?


북한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했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와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5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미국 피터슨연구소의 마커스 놀랜드 선임연구원은 최근 KDI 세미나에서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경험한 억압과 처벌'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이 같은 설문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번 설문 조사 결과는 2004년 8월~2005년 9월 중국 11개 지역에 거주하는 1천346명의 탈북자와 2008년 11월 한국에 거주하는 300명의 탈북자를 일대일 인터뷰해 작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두 차례의 조사에서 중국 거주 탈북자의 55%는 '북한 수용소에서 생체 실험을 당했다'고 답했으며 '신생아 살해를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5%에 달했습니다. 한국 거주 탈북자 중 7%도 '신생아 살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또한 '처형을 목격했다'는 한국 거주 탈북자가 응답자의 51%에 달했고 '고문으로 인한 사망을 봤다'는 중국 거주 탈북자는 60%에 이르렀습니다. '급식 박탈'은 중국 및 한국 거주 탈북자 대부분이 겪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사실이라면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1세기에 생체실험이라니요.
하루 빨리 통일의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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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카페] 휴 카페, 신촌 최고의 룸 카페

 커피한잔 가격으로 커피, 차, 아이스크림 등 무제한 리필가능한 카페휴입니다. 카페휴는 룸카페 형식으로 2시간에 1인 6,000원에 커피, 음료, 차, 아이스크림 등 여러가지 메뉴를 셀프바에서 이용 가능하고 여러가지 다양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크고 작은 룸은 좌식으로 TV가 설치되 있는 편안한 공간에서 68개의 채널을 시청 할 수 있고 무선인터넷철치로 노트북을 가져오시면 인터넷 이용도 가능 합니다. 야외 테이블은 시골 원두막에 온듯한 느낌을 주어 시원하고 답답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 글에 게재된 모든 사진들은 커플&데이트코스 포털인 야놀자닷컴(http://yanolja.com)에서 제공 받은 것으로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휴 카페의 셀프바, 뭐든 다 가져다 드셔도 됩니다!ㅋ

 휴 카페의 예쁜 복도! 공주님 방 같네요~

 룸입니다. TV가 있으며 무선 인터넷이 깔려있어 인터넷 사용도 가능합니다.

  휴 카페의 고급스러운 장식들입니다. 꼭 한번 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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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광복절, 8·15광복에 대해 알아보자!

 8·15 광복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의 패전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일본의 강제합병(1910.8.22)이후 해방 전까지 계속된 우리민족의 독립투쟁이 큰 역할을 하였다. 1910년 이전에는 애국계몽운동·독립협회운동·반침략호국운동이, 이후에는 대한제국의 부활을 위한 복벽운동이 전개되었으며, 1919년 3·1운동이후에는 민족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독립투쟁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다.

 1919년 3·1운동을 시작으로 전개된 우리민족의 독립투쟁은 현대적 국민국가수립을 위한 준비단계였다. 해외에서는 3·1운동 직전 2월에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의회가, 3·1운동 직후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1919.4.13)되었다. 국내에서는 임시정부선포문을 발표(1919.4.23)하는 등 곳곳에 정부가 설립되었다. 1920년대는 민족유일당운동이 전개됐으나 성공하진 못하였다. 한편 1910년경 만주지방에서는 독립군의 무장항쟁이 활기를 띠었다. 간도 삼원보(三源堡)의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는 독립군 3,500명을 수료시키고, 김좌진(金佐鎭)은 간도에서 1,600여명의 독립군을 양성하였으며, 연길현(延吉縣)에서는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이 활동하였다.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 이후에는 독립군부대가 통합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설립하였다.

 국내의 광복운동은 사회운동의 형태를 취하였으며, 민족주의노선과 사회주의혁명노선으로 양분되었다. 1927년 2월에 재통합을 위해 신간회가 조직되었으나 1931년에 해체되었다. 해외에서는 정치단체가 1935년 7월에 민족혁명당으로 통합되었으나, 1938년에 좌익계 독립운동단체가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함으로써 민족진영과 좌익사회주의진영으로 양립되었다. 그러나 1939년에 김구(金九)와 김원봉(金元鳳)이 민족적 통일기구로 전국연합전선 협회를 성립시켰으며, 1940년에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으로 발전하였다. 1940년 9월에 충칭(重慶)에서는 광복군이 창설되어 대일 무력항전을 전개하였다.


 광복 등 우리 역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국가기록원(http://archives.go.kr/)을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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