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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맛집] 63 뷔페 파빌리온
 
주소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0
전화번호 : 02-789-5731~4
예산(2인) : 108,000~118,000
영업시간 : 12:00-22:00

 무한도전, 식신원정대 등을 통해 더욱 유명해진 63뷔페 파빌리온은 국내 최고 수준의 조리진들이 만드는 신선하고 다양한 200여가지 맛의 향연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파빌리온은 국내 뷔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매스티지(Mass+Prestige, 대중명품) 컨셉을 도입해 특급호텔보다 더 고급스럽고 뛰어난 수준의 서비스와 요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연채광의 인테리어 또한 여느 특급호텔들과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으며, 근처에 63씨월드, 63스카이아트, 63아트홀, 63아트뮤지엄 등이 있어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안성맞춤입니다!  특히 기념일 전날 예약하시면 국내 최고의 파티쉐들이 만든 기념케이크와 사진촬영 이벤트들을 서비스 해 특별한 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드립니다.

 아래 사진들은 제가 직접 찍어 야놀자닷컴에 제공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저작권 문제는 없습니다.

  파빌리온 입구 모습입니다. 어지간한 특1급 호텔 뷔페와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인테리어 입니다.

 천장에 창이 있어 63빌딩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자리도 있습니다.

 일식 코너입니다. 싱싱한 회들과 초밥, 그리고 정통 일식 우동이 있습니다.

 파빌리온에 진열된 각종 주류들. 최고급 와인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맛보실 수 있습니다.

 한식 코너 입니다. 개인적으로 맨 오른쪽의 도가니탕을 매우 좋아합니다. 

 양식 코너에서는 스테이크를 즉석에서 구워 줍니다. 위 사진은 접시에 담아온 모습.

 파티쉐들이 직접 만든 디저트입니다. 푸딩도 맛있더군요.

야놀자닷컴에는 이 밖에도 많은 맛집과 데이트코스 정보들이 있습니다.
http://yanolja.com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동 | 63뷔페 파빌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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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번 두사람은 해의여해했어요.귀항했을때 허리커인은 배를 때려부숴요.다행히 여자가 한 개 나판을 잡아서 두사람의 생명을 보호해어요.여자는 남자에게 "너 무서워?"하고 물었어요.남자가 칼 한 자루를 꺼내고 "네,하지만 상어가 있으면 내가 칼으로 사용해."여자가 그저 머리만 흔들고 쓴든 웃음이에요.그런데 한 척 화늘선은 두 사람을 찾았어요.기뻐 어찔 줄 모랐을때 한 때의 상어를 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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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답사기 - 신라의 천년고도를 만나다.

 


 우리가 처음 간 곳은 국립 경주 박물관. 도착하니 최경숙 교수님과 조교님이 우릴 기다리고 계셨다. 이 곳은 어릴 때부터 여러번 와본 곳이지만 그 날은 죽은 박물관이 아닌, 살아있는 국립 경주 박물관과 대화를 해 볼 참이였다. 그러나 내 노력이 부족했는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박물관을 잘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성덕대왕신종. 일명 에밀레종이다. 아이를 녹여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카이스트의 성분 분석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나는 예전에 들은 에밀레종의 소리를 잊을 수 없다. 직접 타종된 것은 아니고 녹음된 것이었지만 충분히 아름다웠었다. 시간관계상 나는 에밀레종 앞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에밀레종 이외에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두개의 금관이었다. 고등학교 때 읽은 ‘역사스페셜’이라는 책에서 본대로 금관의 모양은 사슴 뿔이 두 개 그리고 나무가 세 그루였다. 두개의 사슴뿔은 토테미즘의 흔적인데, 나무의 의미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또한 신라의 금관은 왕이 평소에 착용하던 것이 아니라 장례용이라고 한다. 역시 시간관계상 금관을 지나쳐 다른 것들을 차례로 보았다. 유홍준 교수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아는 유물에는 관심이 생겼지만 내가 전혀 모르는 유물은 그냥 보고 지나치게 되었다. 부산에 돌아가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을 나와 우리는 차도를 따라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넓은 터가 나왔다. 이곳이 반월성터. 신라 궁전의 일부였다는 이 곳이 지금은 숲이 우거지고 풀이 나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떠올리게 했다. 야은 길재의 ‘오백년 도읍지를’이라는 시조가 떠오르는 순간 이였다. 우리는 이 곳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먹고 월성 안에 있는 석빙고로 달려갔다. 한 여름에도 거의 완벽하게 얼음을 저장했다는 석빙고는 안타깝게도 입구에 철문이 설치되어 잠겨있었다. 사전조사에 따르면 선조들은 매년 2월말 강가에서 얼음을 잘라서 저장한 뒤 6월부터 10월까지 수시로 그 얼음을 꺼내 더위를 물리쳤다고 한다. 현존하는 6개의 석빙고의 하나인 이곳도 두 단계의 과정을 통해 얼음을 저장했을 것이다. 1단계는 얼음 저장에 앞서 겨울 내내 내부를 냉각시키는 것이고, 2단계는 얼음을 넣은 뒤 7~8개월 동안 얼음을 녹지 않게 저장하는 것이다. 우선 1단계의 과정에 숨어있는 비밀은 바로 출입문 옆에 있는 날개벽이다. 겨울에 찬 바람은 이 곳에 부딪쳐 소용돌이로 변하고 이 소용돌이는 빠르고 힘차게 내부 깊은 곳 까지 밀고 들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철 보통의 지하실 온도가 섭씨 15도인 것에 비하여 석빙고 내부 기온은 영하 0.5도에서 영상 2도라고 한다. 그 다음 단계는 얼음을 어떻게 보존하는가인데 실재로 석빙고 안의 얼음은 녹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거의 미미할 정도로 녹았을 뿐이다. 이렇게 찬 기온을 유지한 데는 3가지 열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절묘한 천장 구조이다. 화강암의 천장은 1-2 미터의 간격을 두고 4.5개의 아치형 모양으로 만들어져 그 사이에는 움푹 들어간 빈 공간이 있다. 이곳이 바로 내부의 더운 공기를 빼내는 일종의 에어포켓인 것이다. 두 번째는 바로 환기구이다. 위쪽에 설치된 환기구는 에어포켓에 갇힌 더운 공기를 밖으로 빼낸다. 이것은 바로 더운 공기는 위로 뜬다는 사실을 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석빙고 내부의 온도는 한여름에도 0도 안팎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다 3번째는 얼음에 치명적인 물과 습기를 빠르게 밖으로 빼내는 배수로이다. 또한 빗물을 막기 위하여 석빙고 외부에 석회와 진흙으로 방수층을 만들었다. 그리고 얼음과 벽 및 천장 틈 사이에는 밀집, 왕겨, 톱밥 등을 단열재로 채워 넣어 외부열기를 차단하였다. 거기에다 외부의 잔디는 햇빛을 흐트러뜨려 열 전달을 방해하는 효과가 있으니 석빙고의 얼음은 한여름에도 거의 녹지 않고 견디었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것들을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컸다. 석빙고 입구를 막고 있는 철문이 원망스러웠다. 어쨌든 선조들의 지혜에 경외감이 들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또 다시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 쯤 걸었을까. 우리는 곧 고풍스러운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김알지의 탄생설화와 관련된 계림이었다. 한번도 가본적은 없었지만 김알지의 설화는 익히 알고 있었다. 최경숙 교수님이 설명하실 때 박혁거세의 설화가 얽힌 곳이라고 해서 의아했었는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이 맞았다. 아마 교수님께서 잘못 말씀하신 듯 하다. 이미 녹초가 되어있던 나는 계림의 멋들어진 나무들과 사진을 몇 장 찍고 나서 벤치에 쓰러지듯 앉았다. 그러나 휴식도 잠시 우리는 또 다시 걸어야 했다. 좌우로 커다란 봉분들을 지나 도착한 것은 내물왕릉. 중․고등학교 때 많이 듣던 왕중의 하나 인데 별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냥 내물왕 때부터 중국문화를 수용하기 시작했다는 정도밖에는. 거대한 내물왕릉을 지나 천마총에 도착했다. 이 곳은 6학년 수학여행 때 한번 와 본적이 있어서 이번이 두 번째였다. 몇 점 안되는 유물들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천마총 입구에는 에어커튼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피곤과 더위에 힘겨워 하던 나에겐 에어커튼에서 나오는 바람이 감로수처럼 느껴졌다.

 


 다음 목적지는 안압지. 역시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와 본적은 있었지만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지금의 기러기와 오리가 노니는 연못이라는 뜻의 안압지라는 이름은 신라가 망하고 폐허로 변한 한참 뒤에 조선시대 묵객들이 갈대와 부평초가 무성하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다닌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삼국사기를 보면 674년에 안압지가 조성된 것으로 되어있는데 여기에 한가지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 674년이면 나․당 전쟁이 끝나지 않았을 때로 알고 있는데 그럼 전쟁 중에 대규모 공사를 벌인 이유는 무엇일까?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봤지만 아직 대답이 올라오질 않았다. 권덕영 교수님께서 내 글을 읽고 의문을 시원하게 대답해주시리라 굳게 믿는다.

 이번 경주 답사의 마지막 코스는 황룡사지였다. 한번도 가본 적은 없었지만 중학교 때부터 교과서나 여러 참고서에서 많이 봤었던 곳이다. 사진에서 보던대로 13세기에 몽고군의 침입으로 모든 건물이 불타버려 넓은 벌판에 주춧돌들만 보였다. 비록 실물은 볼 수 없었지만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지식은 나로 하여금 황룡사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백제의 미륵사와 비견될 만한 거대한 규모와 신라 삼보중 하나인 거대한 9층 목탑 등 신라 제일의 국찰의 기상이 느껴졌다. 하루 종일 정말 너무 피곤했지만 이렇게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는 경험을 나는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다. 내 젊음을 무기 삼아 앞으로도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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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경우
    왜 전쟁중인데도 그 곳에서 공사가 벌어졌냐 하는 의문은 그 때 그 전쟁이 그 곳과는 무관하였다고 보면 풀립니다. 신라는 경상남북도에 국한된 나라도 아니였고, 백제도 전라남북도와 충청남북도 정도 크기의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한반도 거의 전부와 중국대륙의 동해안지방까지 이르는 영역이 백제의 영토였고 신라는 더 윗쪽에 있는 큰 나라였을 것입니다. 고구려는 만주와 사할린 그리고 몽고지방까지 이르는 대 국가였어야 모든 의문이 풀립니다. 아끼히도 일본천황이 내한했을 때 자기의 조상이 백제의 왕손이라 하였습니다. 신라가 경상도지방에 있었다면 그보다 먼 백제의 왕이 일본에 가서 왕이 될 연관성이 멀어집니다. 경주는 당시의 전쟁과는 아주 먼 후방이었고 낙동강전선 이남의 백제의 영역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후 지금의 북한땅에서 벌어졌던 전투에서 백제가 항복하면서 전쟁은 끝났고 경주와 부산등지에 피신하였던 백제 왕실은 당시 백제의 식민지였던 일본으로 건너가 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일본역사선생으로부터 교육받은 역사선생님들로부터 배운 우리의 역사를 이제 이상한 점은 파 헤쳐 진실을 밝힐 때입니다. 임진왜란과 일제시대에 우리의 역사는 말살되고 조작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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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관 막아낸 민주당 법사위원들 인기몰이

 


 민주당 법제사법위원들이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유선호 위원장을 제외하면 불과 4명의 전력으로 2배가 넘는 여당 위원들에 맞서 천 후보자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날렸고, 결국 자진 사퇴로 이끌었다.

 사실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한나라당 법사위원들에 비해 전문성에서 열세이다. 민주당 법사위원들 중에 검사 출신은 한명도 없으며 박지원 박영선 의원은 아무런 법조 경력조차 없다. 반면 한나라당 위원들은 총 9명 중 6명은 검사, 2명은 판사, 1명은 변호사로 구성돼 전문성 면에서 민주당을 압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위원들은 문제의식과 집요한 추궁, 팀워크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춘석 의원이 첫 질의자로 기조를 세우면 박영선 의원이나 박지원 의원이 공세를 확장해 결정타를 가했고, 우윤근 의원이 마무리를 맡았다. 박영선 의원은 이들 4명의 역할을 '기승전결'에 비유하기도 했다.

 위원들간의 팀워크와 순발력 있는 대응도 주목할만 하다. 천성관 후보자가 자녀의 결혼식을 '작고 조용한 교외'에서 했다고 밝히자 박지원 의원은 박영선 의원에게 '6성급 W호텔'이라고 귀띔했고, 즉각 공세에 나서 결국 시인을 받아냈다. 박영선 의원도 천성관 후보자가 "400만원은 작은 돈"이라고 말한 것을 놓치지 않고 어떻게 그런 시각으로 서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겠냐며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한편 전력에서 우세했던 한나라당 위원들은 "검사생활 24년만에 15억대 재산이면 청렴하게 살았다"는 등 민심과 전혀 동떨어진 발언을 해 패배를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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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겨우 110원(2.75%) 오르는데 그쳐
 
 2010년 시간당 최저 임금이 올해보다 겨우 110원(2.75%) 인상된다.


 5150원(28.7% 인상)을 제시했던 노동계와 3770원(5.8%삭감)을 제시했던 경영계는 협상 초반부터 난항을 겪었다. 최종결정 시한이 다가오면서 4800원과 3840원으로 한발 양보했으나 합의해 실패해 결국 공익위원들이 내놓은 절충안을 두고 표결에 부쳤고 찬성 23표, 반대 4표로 통과됐다. 공익위원들이 내놓은 절충안은 2.75%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인상률이다.

 물가상승분을 반영해서 최저임금을 올려야 할 상황에서 도리어 최저임금을 삭감안을 내놓았던 경영계에 노동자들은 물론 네티즌들도 반발했었다.   

 
물론 세계적인 경제난으로 기업들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항상 허리띠 졸라매자고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가진자들이 고통을 분담해야 진정성이 나오는 것이다. 항상 사용자들은 고통 분담을 요구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고통을 분담한 적이 없다. 이번 경영계의 최저임금 삭감안은 이러한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편 현재 시점에서 최저임금 삭감안이 나왔던 나라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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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greed
    이럴줄 알았습니다. 최저임금깎아야 한다고 미리 수를 던져 이슈화 만든다음에 최저수준에서 합의를 봤군요. 저 장사치들은 정말 흥정을 잘 하는군요. 안 깎인게 어디냐고 생색이 대단할 겁니다. 정부도 할만큼 했다고 자화자찬이 늘어질 거구요. 있는놈이 더하다는건 정말 맞는 말같습니다.
  • 어짜피 인상을 해줘야겠지만, 그 상승폭을 낮추기위해서 처음부터 깍는다고 헛소리를 한게 아닐까요? "처음에는 깍으려햇지만 국민의 뜻에따라 인상하겠다"라는 정치적 쑈라고 보입니다.
  • 한나라씨발
    꼴랑 110원.. 장난하냐?? 5000원은 되어야지.. 미친 하여간 이 노무 정부 꼬락서니 보면 욕나온다니까... 아 진짜 완전 짜증남.. 애들 장난하니??
  • 그러면 최저임금이 3,840원으로 조정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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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정전협정, 그 역사적 의의는?
 

 “한국전쟁”은 먼저 양측에 엄청난 인명피해를 초래하였다. 통계를 보면 남한측은 민간인 사망 37만 여명, 부상 22만 여명, 실종 38만 여명이며, 군인은 사망 13만 여명, 부상 45만 여명, 실종 2만 여명으로 민간인과 군인을 합치면 약 160 여 만명이 피해를 입었다. 반면, 북한측은 민간인 사망 40만 여명, 부상 160만 여명, 실종 68 만 여명이며, 군인은 사망 52만 여명, 부상 22만 여명, 실종 9만 여명으로 합계 350 만 여명에 달한다. UN군은 사망 3만 여명, 부상 11만 여명, 실종 6천 여명이며, 중국군은 사망 11만 여명, 부상 22만 여명, 실종 3만 여명이었다. 위의 수치상으로 당시 남북한 전체 인구가 약 3천만명이라고 할 때 약 1/5이 피해를 입었으며 한 가족에 1명 이상이 피해를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막대한 인명피해와 함께,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었다. 남한의 경우 일반공업시설의 40%, 주택의 16%가 파괴되었고, 북한의 경우는 피해가 이보다 더 심해서 전력의 74%, 연료 공업의 89%, 야금업의 90%, 화학공업의 70%가 피해를 입었다. 한국전쟁은 양 측에서 600만 명이 넘는 인명피해를 입은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국전쟁으로 하여금 남북한에 공고한 분단체제가 성립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은 양 측에게 반공이데올로기의 강화와 반미이데올로기의 강화를 가져왔으며, 증오와 대립을 심화시켰다. 전쟁을 통해서 분단선을 제거하려던 애초의 목표는 사라졌고, 오로지 서로에 대한 증오와 공고한 분단체제만을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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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의 "이명박은 독재자" 발언, 민심을 들어보니


 김대중 전 대통령이 11일 현 정부를 거듭 독재정권으로 규정하면서 국민들에게 행동을 촉구해 논란이 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15 남북 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 강연에서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자.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살아나고 있고, 빈부 격차가 사상 최악으로 심해졌다"면서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이 돼 자유·서민경제·남북관계를 지키는 데 모두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피 맺힌 심정으로 말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惡)의 편"이라고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우리 국민은 독재자가 나왔을 때 반드시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성공시켰다"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세 대통령이 있었지만 국민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했다"고 했다. 그는 "선거 때는 나쁜 정당에 투표하지 말고 바른 정당에 투표해야 하고, 여론조사 때도 바른 조사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만일 현재와 같은 길을 간다면 국민도 정부도 모두 불행할 것이라는 걸 확신한다. 이 대통령의 결단을 바란다"고 했다.

이에 청와대는 12일 오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11일 열린 6·15 기념행사 특강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해 독재정권이라고 규정한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으며,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장광근 사무총장도 김 전 대통령의 ‘독재자 아부’ 발언에 대해 “침묵을 지켜주기 바란다”고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티워 리서치 결과에 따르면 약 65%의 국민들이 이번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선동발언이 아닌 국민의 소리라고 응답했다. 
 과반 수 이상의 국민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에 공감하고 있는 시점에서 청와대, 한나라당 의원들의 김 전대통령 비판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과잉 충성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한편
티워에서는 이 주제에 대해 1500여명이 티워 리서치에 응답했고, 수십명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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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 1500명??
    ...언제부터 저새끼들이 한국국민 전체 대변하는 인간이 된거냐???
  • 국민의 소리?..까고있네..
    여당이나 전라도..그리고 노사모들의 소리가아니고..독재? 미친대중이...지가 집권할때 개정일한테 그렇게 퍼주고도...정일이가 이상한짓하면 왜그래?라고만 하던인간이..개정일한테는 불평한마디안하던넘이..
  • 위엣놈들.
    니들은 이 글 추천수가 왜 계속 올라가는지 모를꺼다.
  • 호야
    친일한 자들이 독립운동가 후손을 매도하는 현실
    독재하는 자가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 현실.
    바른 소리가 빨갱이로 매도당하는 현실.

    참으로 불쌍한 대한민국. 어쩌다가 이지경이 된건지
  • 비비안
    이제 다음(Daum) 못 보겠다. 너무 편향되어 있고. 마치 발광하는 것 같애. 꼴 보기 싫어. 종일 정권 까대기만 하고 있구나. 그래서 대한민국 좋겠다. 미친 놈들.
  • 린다
    통일은 정권을 불문하고 이룩해야할과제다.같은동포가 굶어가고 있는데 좀 나눠주면 어떤가 10년동안 노력한 통일에대한 의지는 지금에와서는 찾아볼수없다.
  • 비밀댓글입니다
  • ezrakang45
    [일지매]에 보면 인조 때에 두 칼잡이가 있었는데 이쯤 되면 DJ는 베었어야 합니다.
  • 마음
    고언을 할 수 있는 어른이 계셔서 감사합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합니다.
    이명박 정권은 대한민국 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남겼습니다.
    언젠간 법과 국민앞에 고개숙이고 반성하는 날이 올것이라 믿어요.
  • 전문을 다 읽어보니 선동같은 대목은 별로 없던데, 구린 구석이 있으니 유난히 날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만 들더군요.
    • 대한민국
      찔리는 양심이 있기나 한 사람들인가요? 그들이 사는 방식인 거죠..보수단체 회원 혈서 쓰는 것보고 소름끼쳤습니다.
  • 허어... 이명박법이 헌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건 아는지 모르는지... 왜 이딴 댓글밖에 안달리지.... 김대중전대통령의 발언이 절대로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 rmfja
    전직이 독재라고 말할 수 있는 장이 있다는 것 자체가 독재가 아니지요. 독재냐아니냐를 관두고 그가 그의 입장에 해당하는 행동을 했느냐가 더 문제가 됩니다.나라가 어지러운 판에 선동하고 행동을 촉구하는 그의 행태는 전직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어떤자리인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국민을 분열시키고 현정권에 대한 행동을 촉구하는 자는 현직에 있을때 그렇게 잘했습니까?국민의 동의를 받지않고 맘대로 국가예산을 가져다 준죄, 기업을 맘대로 요리한죄,일개 여성을 농락한 죄,그의 아들들이 해먹은 죄. 그의 죄도 만만치 않습니다.
    • 마치 조선일보 다시보기 느낌을 주는 댓글이군요.
      정치인이 선동한다고 국민들이 일어섭니까 요즘? 요즘 국민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행동합니다. 그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맞아 떨어지는게 바로 촛불 문화제이구요.

      전직대통령,,,정치무대에 데뷔할 때 부터 과거 독재 정권에게 평생을 핍박받고 연금당하고, 고 노무현대통령의 수십배 수백배는 더 힘들었었던(그땐 인터넷이 없으니 국민들도 까맣게 몰랐죠) 분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 고초까지 겪은 분이 자칫 '겨우 이정도인데 뭐가 독재냐..'라고 생각할 상황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귀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 독재란
    이렇게 관리자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으면 발언권도 없는 상태가 독재입니다. 그는 하고싶은 말을 다하고 있습니다.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지요.
    • 하루 블로그 방문자가 1만을 넘기다보니 댓글에 광고글들이 너무 많이 올라와서 조치한 것입니다. 그 외글들은 모두 승인하고 있습니다^- ^* 인신공격은 자제부탁드립니다.
  • 박 영숙
    국민의 소리아님!1
  • PSA7747
    YS님 일본에서 DJ님을 심하게 욕을했을때 정말 나라망신이다.생각했었지요. 그렇게 심한 쓴소리를 하던 YS님이였는데도 한마디 대꾸도 안하시던 DJ님께서---. 글쎄요. 때론 독재라기 보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이끌어 가려면 때론 강하게-----.
  • 망망대해
    현재 우리의 가슴속에 묻고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 파이팅입니다.
  • 푸른하마
    조작이 있음이 틀림없다.....

    65%이라니...

    오노...

    80%는 넘을 것 같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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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에서 한반도 전쟁, 그리고 이명박 당선까지


1. 들어가며


 한반도의 일제치하에서의 상황부터 6.25 발발까지의 상황을 다룰 것이며, 이러한 상황들을 국제정치학적 관점으로 살펴보며, 한반도의 국내적인 상황보다는 한반도를 중심으로한 국제정치학적 지리를 주되게 다룰 것이다.

 한반도의 시대적 상황들로 보아 그 시기 한반도의 주된 영향을 끼치고, 흐름을 잡아나갔던 국가들은 미국과 소련이라고 판단된다. 그것은 한반도의 분단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국가가 이 두 국가이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한반도 문제를 다루었던 전시회담의 성격과  더불어 그들의 입장, 그리고 해방후의 그 두 국가의 입장의 변화추이들을 살펴볼 예정이다. 또한 한반도 분단에 있어서 그들이 어떠한 역할들을 하였으며, 그들의 입장 변화에는 어떠한 요소들이 놓여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2. 전시회담 

 미소 연합국은 두 경쟁적 사회 체제의 약점을 해결하고 전후에 분출할 혁명적인 사회 변화의 통제 가능성을 기대하면서 회담을 진행시켰다.  그러므로 전시회담에 임하는 국가들의 이해과 그에 대한 관철, 그리고 그들의 입장은 향후 세계질서재편과 밀접히 연관되어져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전후 처리 방안에 대해 연합국간의 논의가 시작된 것은 43년 11월 ‘카이로 회담’부터 이다. 이후에 테헤란 회담, 45년 2월 얄타회담  그리고 포츠담 회담 등을 걸쳐 한반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전시회담의 두드러진 특징은 ‘국제주의’적 정책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국제주의적 대회 정책의 핵심고리는 전면적인 문호 개방 정책의 추구하에 형성된 국제 협정에서 미국의 지배적인 위치를 전제, 폐쇄적이고 직접적이기 보다는 개방적이고 간접적인 접근 방색을 통하여 이해를 관철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련에 대한 입장도 직접적인 반공이라기 보다는 견제의 측면으로 주도하려고 하였던 것이며, 전후 식민지에 대한 처리 방시도 혁명과 전쟁을 방지하는 체제 통합 구상을 전제로 기존의 단독 식민 통치에서 다국 신탁 통치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합국의 국제외교의 변화는 미국의 세계 질서 재편 과정에서 미국경제의 확대 재생산을 위해 불가결한 세계적 외연으로 포섭하여야 하고, 동시에 세계적 차원의 계급 대항에 대응하여 미국을 본영으로 하는 경제․정치․군사적 통일체로서의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존립 요건을 보장해야만 했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의 세계 정책은 반공, 반혁명을 그 핵으로 하는 세계 전략 체제의 총괄로서 통일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 또한 수많은 식민지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던 반제 반파시즘 운동과 전시중이라는 상황이 고려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세계 2차대전의 종결과 미소의 정세․전략 

 세계 2차대전의 종결후의 국제정세는 간단하게 말해서 세계질서의 재편기라고 할 수 있고 이는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으로의 양분화와 함께 그 사이의 광범한 식민지․반식미지의 존재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간의 체제모순이 주요 모순으로 등장하게 된다. 한반도와 같은 경우 이와 같은 세계질서 재편과정에서 나타나는 제반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작용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세계질서 재편기의 국제정세에 대한 고찰이 해방후부터 한국전쟁 발발까지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이라 할 수 있겠다.

 1) 미국의 세계전략 

 미국의 세계전략을 올바로 알기 위해서는 미국의 국내정세를 더불어 알아야 하겠다. 미국은 세계 2차대전을 통해 경제적 발전을 향유, 이에 기반하여 종전 직후에는 비교적 유화적인 국제주의적 대회정책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국제주의 시기를 경과하면서 미국은 종전 후 급속한 동원 해제와 전쟁경제 해체과정에서 ①국내 독점자본의 생산기반이 위기에 봉착하고, ②국내 노동계급 등의 계급운동의 광범한 확산으로 점차 심각한 정치․경제적 위기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국내적 상황과 맞물려 대외적으로는 구식민지체제의 붕괴와 전세계적수준에서의 민족해방운동의 고양, 그리고 동구를 중심으로한 13개국의 자본주의 진영 이탈과 사회주의권으로의 편입으로 인하여 미국 독점자본은 상품시장을 상실할 위기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국내․국외 정세와 맞물려 미국은 더욱 공세적인 사회주의권 고립정책과 식민지․반식미지 민족해방운동 억압(그리스-필리핀 민족해방운동의 폭력적 억압), 독일․일본에서의 역전정책 및 이의 미국 헤게모니체제로의 편입 등을 추구하였다. 이로보아 미국은 대외적으로 사실상 제국주의적 지배전략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 소련의 세계 전략 

 이 시기 소련은 세계질서 재편에 있어서 미국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주체였다. 1945년 세계대전 종전의 시점에서 볼 때 소련은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미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열세에 있었다. 대전 당시 유럽에서의 주대립전선은 독소전선이었으며, 이 힘겨운 전쟁에서 미국이 전쟁기간 중 세게의 공장으로서 등장하는 동안 비교도 안 될 만큼의 많은 인적․물적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결과 종전시 소련은 일국수준에서의 최소한의 사회주의체제의 유지조차도 용이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종전 후 소련에게는 국내경제의 복구와 체제유지가 가장 긴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2차대전 후 한국전쟁 종결시까지 소련이 과도할 정도로 일관되게 견지한 수세적․대미유화적 국제협력노선과 국내적 억압통치는 경제와 정치․군사의 두 수준 모두에서 미국에 비해 엄청나게 열세에 놓여있다는 객관적 조건 아래 강화되는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공세에 대응하여 일국수준에서의 사회주의체제라도 보전하려는 고육지책의 결과로 이해된다. 스탈린주의의 대내외적 편향성이 초해한 결과는 식민지․반식민지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무지원과 제국주의와의 편향된 타협노선 그리고 대내적인 엄청난 강권통치노선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그것은 지역적으로 심한 차별성을 띠며 관철되었는데 유럽의 동구지역에 대한 상대적 중시에 비하여 유럽의 동구이외의 지역에서의 공산주의 운동, 예컨대 한국등에서의 공산주의 운동은 대미타협과 무지원으로 일관, 이러한 소련의 유화적 노선이 관철된 대표적인 사레였다. 소련이 미국으 분할 점령안에 수동적으로 동의한 것은 한반도에서의 미국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대신 일본 점령에 개입할 기회를 추구하고 만주에서의 이권을 확보하며 동유럽지역의 소련군 진주를 공고화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4. 미소의 대한정책 

 위에서 보여지는 미소의 국내․국제 정세속에서 연합국의 세계전략을 살펴 보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소의 세계전략은 한반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것은 어떠한 방식으로 드러났을 것인가.

  1) 미국의 대한정책 

 2차대전 직후 미국의 동북아정책의 핵심은 변혁을 추구하고 있던 동북아를 미국의 이해에 맞게 세계자본주의권내로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이러한 정책을 관철하는 데에는 몇 가지 장애가 가로놓여 있었다. 첫째, 한반도에 소련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만약 한반도가 소련의 세계질서재편의 범위에 편입된다면 이 지역은 제 2의 동구가 될 가능성이 많았다. 독일 패망후의 동구권에서의 움직임은 미국에게는 자본주의권의 축소와 시장경제의 축소를 의미하였으며 이와 같은 상황이 동북아에서는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또하나의 미국을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장애는 중국내전이 친미적인 국민당정부에게 점점 불리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한정책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대동북아정책의 기조위에서 이루어졌다. 게다가 한반도가 소련과 바로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지정학적인 특수성으로 인하여 한반도는 군사적으로 더욱 중요했다.

 그러므로 미국은 한반도에 있어서 반공친미국가를 한반도에 구축하는 것이 미국의 대한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 수 밖에 없었으며 이를 기본적으로 축으로 하여 대한정책이 수립되었다. 미소공동위원회에 참여한 미국의 한 관리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여, 미국의 대한정책의 핵심은 한반도가 소련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에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의 독립이 제2차 목표이므로 금후 수년내에 완전한 독립을 하게 될 한국 정부의 구성이 미국의 이익에 맞는 것으로 믿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유엔 기구의 침략을 방지할 수 있는 능력의 합리적인 증거를 보여줄 수 있을때까지 미국은 필요하다면 소련과 더불어 한국의 영토를 보전하며 한국의 국제관계에서 어떤 긴요한 특권을 행사하여야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한국 임시정부의 구성도 미국이 상당한 기간동안 적어도 최고위 수준에 있어서 어떤 형태와 위장된 지배권을 행사한다는 전제조건에 기초를 두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정책에 기초하여 38선 이남을 점령, 군정을 실시하고 직접통치하기에 이르렀다.

 2) 소련의 대한정책 

  전후 식민지 처리에 대한 소련의 입장은 1920~30년대 스탈린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외 정책의 이론적 근거로부터 연원한다.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속에서 ‘일국 사회주의론’으로 확립되면서 대 자본주의의 진영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일련의 자기 정리가 이루어졌다.

 이는 혁명 직후 불리한 국제 정치적 상황에서 소련의 안보를 확보하고 국력 강화를 위한 현실적인 필요성에 의한 것이었으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는 과제는 세게 혁명의 기지로서 소련 방위라는 임무가 국제 공산주의 운동 세력에 부과되었다. 그 결과 소련은 미국과의 유화정책을 택하게 되었고, 이는 한국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더더구나 군사 작전에서도 부차적이었던 한국 문제에 대해 독자점령의 구상보다는 미국의 신탁 통치 논의에서 몇 가지 확인 정도를 거치며 협조에 응했다. 결국 소련은 국경 주변의 완충 지대 형성이라는 정책 실현을 위해 한반도에서 비우호적 정부의 형성을 방지하려는 수준에서 머물렀을 뿐, 한반도 자체를 주전략 지역하하지는 않았다.

 5. 한국 전쟁의 발발 

  한국 전쟁의 발발원인으로 가장 크게 살펴보고자 하는 부분은 국내적 원인과 국제적 원인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기간의 미소의 대한정책에 있어서 한국전쟁 발발 원인을 찾아보고자 함이며, 또다른 하나는 이러한 국제정세와 맞물려서 국내적인 상황에서 돌아보고자 함이다.

 한국 전쟁의 발발의 원인중 가장 큰 역할을 해던 것은 미국의 이중적인 대극동-대한반도 정책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또다른 원인으로는 일제치하 후의 피폐한 상황과 이승만 정권의 한계와 위기를 꼽고 싶다. 

  한국전쟁의 발발까지의 미소의 대한정책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중국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혁명은 그간 부차적인 존재로 머물러있던 한국이라는 존재를 표면위로 부상시키게되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이 어떠한 위치였으며, 중국혁명이 미소정책에 있어서 어떠한 변화를 불러일으켰는지 살펴보자.

 중국혁명 이전에 중국에서는 공산당과 국민당이 큰 세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의 국민당은 미국이 친미적정부를 만들기 위해 지원을 하고 있었던 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중국에서는 공산화가 되었고, 미국이 중국 공산당내에서 벌였던 모든 공작 또한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중국혁명이 시사하는 바는 미국에게는 완충지대의 역할을 해줄 한반도라는 나라 역시 공산화의 가능성이 있다라는 것이며, 중국에서의 실패는 미국에게 ‘제 2의 중국’을 만들 수는 없다는 결의를 갖게 하기에는 충분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여기에서 아주 교묘하게 그들의 입장은 숨기고 난마하게 된다. 이 시기 미국은 중요한 이중적 외교자세를 보이는데, 그것은 즉 1948~50년 기간에 동아시아에서의 반혁명 정책을 한층 강화시켜가는 한편, 그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남한을 버린 것 같은 외교 자세를 취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미국은 중국혁명의 성공, 즉 미국의 국제전략의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중국혁명 당시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다. 그러한 모습 속에서 스탈린 혹은 김일성에게 한반도와 같은 상황에서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갖게된다.

 또한 소련은 중국혁명의 성공을 목도하게 되면서, 한반도와 같은 경우도 쉽게 소련의 세계재편의 질서의 범주하에 편입시킬 수 있으리라고 자신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미국의 미끼를 덥썩 물은 소련과 북한은 한국전쟁의 발발원인이 될 수 있다 하겠다.  

 그 태동의 과정에서 많은 정치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현한 이승만 정권은 초기부터 숱한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를 노정하고 있었다. 이것은 모두 정권의 정통성과 연결된 문제로써 하나는 사회 경제적인 수준의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 민족 이데올로기적 문제와 관련되는 것이었다. 사회 경제적인 수준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군정이 일제 시대의 모순과 착취구조를 거의 혁파하지 않은 데다가 이승만 정권이 이를 그대로 계승한 데서 연유한다. 이러한 문제점에다가 경제 상황 또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정부 수립 후 남한의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게 되고, 쌀값 또한 폭등하게 된다. 이같은 쌀값 폭등으로 도시와 농촌의 많은 사람들이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미국의 원조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미국의 경제 원조가 중단된다면 그 즉시 붕괴될 상황에 놓여 있었다. 또한 이승만 정권의 위기로는 정권의 한계로 인하여 생겨난 남한 농민들과 군인들의 자기 체제에 대한 저항도 꼽을 수 있다. 일제 시대 이래의 토지 모순 구조의 온존과 그것의 개혁에 대한 기대의 무산, 물가의 폭등, 절대 빈곤과 기아, 친일파의 발호, 정부의 무능, 점점 줄어드는 통일 정부 수립의 가능성...등등이 남한 민중들의 인내를 한계롤 내몰아 가고 있었다. 이들의 저항 또한 이승만 정권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6. 나가며 

 이상이 전시회담부터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까지 살펴본 결과이다. 전반적으로 국제정세를 지배하는 것은 패권이며, 이러한 나라들의 패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 여직까지의 국제질서의 모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한반도의 문제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는 한국전쟁을 발발하게 되었으며,
2009년 오늘까지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와 기록에 대한 정보는 국가기록원에서 더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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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롯데월드, LOTTE때문에 JOTTE겠네

 


 지난 7일 잠실 제2 롯데월드 신축을 허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물론 놀이공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작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처음 나온 얘기는 문제는 아니지만 서울공항 작전운영과 비행문제에 관련한 것들입니다.
작전변경이나 비행운영은 군과 정부차원에서 알아서 한다고 쳐도 활주로 각도를 3도 변경하기로한 대안은 결국 또 국민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겨우 3도 변경하는데 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활주로 3도 변경에 드는 비용이 대략 500~1000억 이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의 애매모호한 태도입니다. 공군과 롯데측에서 서로 얼마를 부담할지 논의중이라는데 서로 얼마를 부담하다니요? 공군에서 부담하는 것은 결국 우리 혈세에서 부담하는 것과 크게 다를바 없을텐데요.

 수익자 부담원칙,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요? 롯데월드가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이었나요? 재벌 기업에서 돈 벌겠다고 짓는건데 무슨 협의가 필요하다는건가요?

 제2 롯데월드가 모든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정부에서 돈을 왜 내냐는 겁니다. 결정은 정부의 권한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정부의 부담은 곧 우리의 혈세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친기업 정부라지만 그렇다고 국민들은 무시하겠다는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 이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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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사과, 그 진실은?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가 자신은 미국 서브 프라임 자산설계에 발을 담궜던 장본인이라며 한국에 사죄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글은 식어가던 미네르바 신드롬에 다시 불을 붙였고, 여러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관련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한편 이 글이 정말 미네르바가 쓴 것인지에 대한 진위여부 공방도 치열했습니다.
 
 아래는 관련기사와 미네르바의 글 전문입니다.

<미네르바의 진위여부 공방>


인터넷 경제 논객 '미네르바'가 5일 새벽 올린 글의 진위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절필을 선언했던 미네르바는 이날 포털사이트 다음 토론방 아고라에 '마지막에 기댈 것은 결국 희망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미네르바는 이 글에서 자신을 요양원에 거주하는 '늙고 초라한 노인네'라고 말하며 "6·25 전쟁이 끝난 1953년 지옥 같은 처참함을 겪었으며, 20대까지는 머슴살이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30살이 넘어서 미국유학을 떠나 고생하며 학·석사과정을 밟아 서른 중반이 넘어 학위를 받았고,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서브프라임 자산설계에 발을 담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997년 미국에서 한국이 IMF를 겪는 것을 지켜보고 방관했다"며 사죄했다.

이는 그동안 50대 초반 증권사를 퇴직한 직원으로 알려졌던 미네르바의 신상과 배치되는 점이 많다.

한 네티즌은 "미네르바가 1953년 20대였다면,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60대 초반이던 1990년대 초 서브프라임 판을 짰을 것"이라며 "미네르바는 1997년 IMF 때 60대 후반, 현재 79세 전후라는 계산이 나온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80세의 노인이 시중 자금사정을 빠삭하게 알고 각종 그래프를 분석하는 말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6·25를 겪었던 60~70 노인이 미국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에서 실무를 맡았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게다가 이 글은 미네르바의 정연한 글과 달리 띄어쓰기가 들쭉날쭉하고 맞춤법도 틀린 부분이 많아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네르바를 판단력이 흐린 노인으로 보이게 하려고 다른 사람이 쓴 계략적인 글이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한 네티즌은 지나치게 '...' 부호를 사용해 말꼬리를 늘이는가하면, 같은 단어를 반복한 것을 지적하며 "오늘따라 글이 감성적이다. 누군가가 미네르바 글을 섭렵해 끼워넣은듯 한 느낌이다"고 지적했다.

다른 네티즌은 "자기 인생에 대한 설명부터 피상적이고, 특유의 단호함과 비유가 전혀 없는 허술한 글이다. 어설프게 자기회상과 사죄로 범벅된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미네르바의 정체성과는 안어울리다"며 미네르바가 쓴 글이 절대 아니라고 단언했다.

이어 "뜬금없는 타이밍에 왜 굳이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자기 인생 얘기를 썼는지 이상하다. 미네르바의 최후를 알리는 뉘앙스가 교묘히 섞였다. 필체 등으로 보아 신변에 큰 변화가 있거나, 누가 강압적으로 시킨 것 같은 인상은 준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정체를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제기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의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는 이전부터 미네르바가 사용했던 것과 동일하다. 한 네티즌은 "IP 주소 뿐만아니라 태그에 11을 넣은 것은 미네르바가 확실하다는 증거"라고 반박했다.



<미네르바의 글 전문>

제목 : 마지막에 기댈 것은 결국 희망입니다.

안녕 하십니까.

늙고 초라한 노인네가 이제 제 이야기 하나를 하고자 합니다. 제목이 결국 마지막에 기댈 것은 희망이라는 단어라고 적었습니다.

사람이란 생노병사라는 거역할 수 없는 인생의 굴레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젠 의사가 술은 그만 마시라고 하는데 사람이란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는 것이란 본능적으로 아는 법.

그것은 젊은 사람들은 절대 이해 할수 없는 영역이지만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신체적 나이라는 걸 본인 스스로 체감하게 되지요. 한 마디로 사람이라는건 나이가 먹으면 자신이 대략 언제쯤 인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게 됩니다. 이것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

네...................그렇습니다. 전 치열하다면 치열하게 비겁하다면 비겁한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젊을 때는 고 정주영 옹께서 하신 것처럼 집에서 소를 훔쳐 온것 가지는 아니여도 젊은 혈기에 집에 있는걸 들고 도망치다 시피 나와서 말 그대로 서울땅에 올라 와서 사기라면 지금의 펀드를 날려 먹었다는 그런식의 사기를 당하고 나서 제 아버님으로부터...어머님으로 부터 다리 밑에서 빌어 먹을 놈이라는 모욕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네..... 그 시절에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후에 나중에 머슴살이라는 것도 했습니다. 머슴살이라는것이 예전 조선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젊은 친구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50년대...그리고 60년대 까지도 집 안에서 식모 살이 비슷한 그렇게 사는 머습살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전후 50년.... 직접 겪어 보지 못한 분들은 절대로 이해 할수 없는 지옥의 끝이라는 것을 직접 뼈를 깎는다는 처절한 인간의 마음 속 절망과 좌절의 시간들이 이 한국이라는 땅에 존재 했습니다.

전후 50년대. 전쟁은 53년 후에 끝나고 말 그대로 미군정이라는 것이 세워질 그 당시 서울의 모습이라는 것은 처참함. 그리고 아이들의 울부짓음.

 공중 폭격이라는 것이 지금 영화나. 저도 봤습니다만 밴드 오브 브라더스라고하나요?. 그런것과는 비교 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참담함....... 그 말로 밖에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되는 그런 시간들이였습니다. 그 때는 미국의 식량 원조로 살았습니다. 말 그대로 메이드 인 유에스 에이 라는 스탬프가 찍힌 것이 인천항에 미군 화물선에 양키 애들이 선적해다 주는 걸로 끼니를 해결하던 그 시절이였죠.

 저희 같은 늙은이들은 그런 시간을 전후 53년 이후............ 말 그대로 10년여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지방의 땅을 가진 지주들이나 원래 에전에 돈을 가진 그룹을 제외 한다면 거의 대부분 저와 같은 참담한 그 저주 받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과연 어떤 생각과 고민들을 했을까요.

 그렇습니다... 전 그때 오로지 살아 남아야겠다는 그 생각 밖에 안들더군요. 생존.... 그 생각 뿐이였습니다. 그 때는 서울에 3층 이상 건물이라는 것이 공중 폭격으로 없었던 시절이였습니다. 그래서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이 고국을 등 지고 독일로 미국으로 독일에는 그 당시 남자는 광부로 가서 지하 몇 백미터..아니면 노천 탄광이라고 땅을 안 파고 가는 프랑스 접경 지역의 알자스 지방으로 가서 달러 벌이를. 한국계 간호사로는 여성 분들이 무수히 가서 일을 하고 달러로 고국에 송금을 하던 시절이였습니다.

 네..... 그렇죠.. 그 전까지는 20대 까지는 군대에.. 흔히 예전 분들이 말하는 머슴살이라는 걸로 들어 가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전 학위라는 것도 30살이 넘어서 흔히 미국 유학 가셨다는 그 분들이 말하는 쌔 빠지게 고생 했다는 그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그런 류의 고생이라는걸 해서 학사 석사 과정을 밞아 가면서 말 그대로 학위라는걸 30대 중반이 넘어서 받은 비천한 인간입니다.

 그리고 말하는 그 말로 맞는 말입니다. 그 후에 전 그 당시로는 미국에서 성공 그 단 하나의 절대 명제 하에 돈이 안 되는건 가차 없이 짜르고 조립하고 M&A 라는 기업 인수 합병에 지금 이 저주 받은 굿판이라는 서브 프라임의 자산 설계라는데 발 담그면서 일반 가계 대출 수익 모델링...거기에 환율에 따른 주가 모델링까지.

 말 그대로 워렌 버핏이 말하는 그 파생 상품이라는 시함폭탄에 발을 담군 쓰레기라면 역사의 쓰레기가 저란 인간의 실체입니다. 97년 그 당시도 제 마음속에 남은 1%의 애국심이라는 것이 너무나 뻔히 월스트리스의 석양 저무는 마천루에서 티비 뉴스를 보면 너무나 뻔하고 당연하고.

 그리고 같은 한국인으로써 저래서는 절대 안 될 국부 유출과 외국에게 유린 당하는 창.녀와 같은 조국의 현실이라는걸 보면서 ..........

 한국에 와서............. 다 접고 단 하나의 회사라도 너무나 잘 아는 그 IMF 와 외국인 투기 자본과 그 저주 받은......그리고 그 저주 받은 악마의 도구라는걸 만든 그 장본인으로써..

 지금 와서는 비명과 눈물로 이....나라는 한 인간을 태어나게 해 준 이 나라에 사죄하고 용서를 하고 이 통한의 지금도 이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저 자신에 대해 ............

 97년.........98년 당시 저는 ...CNN과 블름 버그......일반 매체로 그 비명의 97년 IMF 라는걸 다 보고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 .....

 단 하나의 회사라도 살릴 수 있었음에도 그런 사실을 망각하고 모든 걸 방관자로써 ....그것도 외국에서 제 3자로써 있었던 제가............진짜 저 자신이 이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저라는 한 인간을 태어나게 해 준 이 나라에 씻을 수 없는 잘못 아닌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수 많은 자살자들........한강에서 시체를 건져 올린다는 말 그대로 저주 받은 6.25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라는 그 순간을 외면하고.

 조국이라는 곳에 비수를 꼽은 그 외국 애들....그 양키들이라는 애들 한 가운데 섞여서.........

저는... 제 본분을 망각했던 것입니다....지금 이 찟어 지는 마음의 후회와 죄스러움이라는건 말로 표현하지 못할 그런 사죄의 마음이겠죠.

 그래서......

 그래서...... 그 워렌 버핏이 말한 그 악마의 병기.....그 타로 카드에 그려진 사신이라 불리는 그 악마의 병기의 파괴적인 무서움과 허리케인의 무서움이라는걸 가장 잘 아는 제가 피가 터지도록.

 욕을 하면서 말을 했지만 이젠 되돌릴 수가 없는 시간적인 ......... 너무나 당연한 예상한 결과라는 것이 이제 현실화가 되는걸 두 눈으로 이 눈 내린 요양원에서....

 늙과 비루한 ......이젠 얼마 안 남은 이 늙은 몸으로 보면서........

 제발...............분명 피할수도 있었던.......

 아니면 최소한 이 악마의 병기라는 이 글로벌 월 스트리트 미국 세계 금융 자본의 시스템이라는 틀 속에서 뻔히 어떻게 될 거라는걸 알면서 방관자로 이 촌구석 시골에서 이젠 아무 도움도 못 되는..

 이 늙은이가 해 줄 말은..오로지 이것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보다 더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었고 각자의 가정을 지키면서 가정 파괴의 수순을 밟지 않고 그 고결한 인간의 존엄성을 단지 돈이라는 그 불로 태우면 타는 그 종이 쪼가리에 파괴 되는 이 실체화 되는 비극적 현실에 도와 드리지 못한 점을 진심으로...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죄드립니다.

 그와 더불어 간곡하게 말씀 드릴 것은..... 피를 토하면서 말씀 드릴 것은.....

 나이라는 숫자에 구애 받고 속박 받으면서 자기 자신의 미래 가능성을 포기 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제 인생에서 몇 번 안 되는 감명 깊게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 절대......절대 미래 가치를 지금 현재 기준으로 평가 하지 마십시요”

 그리고 나이라는 것에 구애 받지 마시고 개인의 미래를 활짝 여시기 바랍니다. 저도 32살에 미국이라는 이 기회의 땅에 건너 왔습니다.

 온 이유는 간단 합니다..... 너무 배고파서........그리고 그 젊은 나이에 단 1%의 희망....

 없어도 좋으니까.........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쌀 한톨의 희망이라도 좋으니까 그 희망이라는 걸 나도 꿈꿀 수 있다면 살아갈 희망이라는 것이...존재감이라는 것이있지 않을까 하고 와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연명하며 그렇게 살아 이젠 인생의 그 우여 곡절과 그 긑자락에 서 있습니다.

 나이에 구애 받지 마십시요..

 그리고 나이 때문에........ 단지 그것때문에 포기 하지 마시고....

 희망...... 안 되도 좋으니까...... 단 1%........아니면0.1%..........의 희망이라도 가지시고 이 시간들을 이겨 내시기 바랄 뿐입니다.

 97년..................

 

그 당시...... 전 방관자였습니다.........

 98년 그 당시 마천루 한 가운데에서 지는 석양을 바라 보면서 한국의 뉴스를 보면서 .......

그리고 옳지 못한 선택을 한 한명의.....부질없는 한명의 인간으로써.....그때 조금만 더 일찍 한국에 와서 도움의 손길을 내 뻗지 못한 한 명의 노인으로써........

 사죄 드립니다.........

 그리고 제발 미리 선제 대응으로 이 위기를 피해 가길 간절히 기도 했지만 이젠 현실이 되 버린 이 현실....

 부디....... 희망이라는걸 포기 하지 말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결정적인 시간에.............. 나 자신의 정체성의 뿌리와...부모의 나라와....... 나 자신의 영혼까지 져 버린..

 역사의 죄인...........

 사죄드립니다...........사죄드립니다........전 이제 죄송하다는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시스템적 경제 순환 구조라는걸........... 그걸 설계 하고 악마의 병기라는걸 만들어 내고 그 누구다 잘 이해 하고 있었으면서도 외면하고 져 버린 인간으로써...........

 백번 무릎 꿇고 .........사죄 드립니다.........

 제가 할 수 있는건.......... 오로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사죄....... 사죄입니다...........그 죄스런 생각과 방관자로써의 97년을 보낸 그 저주 받은 시간을 보낸 이 나라에.

 제 조국에 제 이 늙은이가 할수 있는건......이것뿐입니다....

 지금 그 죄스럼에......죄송합니다.......다만....이 죄 많은 늙은이가 할 말은....... 저와 같은 후회스런 저주 받은 인생은 없도록 예배당에 나가서 .,...

 간절하게 기도 드리는 것 뿐........ 그것 뿐입니다........ 부디.........가정과 가족들을 각자 ..그 소중한 가치라는걸 지켜 내시기를 ......

 백번...천번.......간절하게 기도 드릴 뿐입니다......죄송합니다.........

 이 죄스러운 마음.......씻을 길이 없어서 술을 다시 마셨습니다.

후회와 번민... 자만과 오만의 굴곡질 .......

자기 자신마저 속여야만 했던 그 시간들...나 자신까지 속여야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말 그대로의 동물적인 생존 본능이 꿈뜰대던 그 젊은 나날들의 시절들...

 후회와 번민.... 자만과 오만...... 자기 기만과 번뇌........

그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의 끝으로 몰아 넣은 최일선에 있으면서도 방관자였던 한 비천한 늙은이의 생애 마지막 자기 반성과 사죄.

 전........... 결과적으로는.........저 자신까지 속였던..........자기 기만이라고 불리는 삶을........ 인생을 살아 왔습니다.

 오로지 .........성공........전 성공이라는 그 단 두 글자에 전 악마에게 영혼까지 팔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비천하고 비루한 늙은이입니다.

 이젠..... 이 나라는..... 재생과 희망.......재건과 생존이라는 걸 다시 일어서서 .....

 나라를...경제를....... 망가진 이 나라를 재건할...........그 시간이 다시..또 다시 왔습니다......

 그건........여러분의 몫입니다.....저와 같은 얼마 안 남은........ 비겁자이자 방관자적인 늙은이의 몫이 아니겠지요.

 오늘도 눈 밭을 밟으며 전 기도 드리겠습니다...... 제발 돈이라는 악마의 요물과 이 저주 받은 시스템적인 악마의 금융 자본주의에..

 부디......부디 가족들이.........이 불에 태우면 한 줌의 재로 밖에는 가치가 없는 이 돈이라는 것 때문에.

 인간이라는.....저와 같은 삶을 살지 마시고..... 가족과 개인의..인간의 고결함을 각자 지키실수 있도록....

죽는 그 날까지.....사죄 드리는 이 마음............ 간절히 기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모든 인생의 업보를 등에 이고...악마의 무간지옥을 걸을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한국 경제는 반드시.....그 어떠한 댓가를 치루더라도 반드시..

 반드시 한국 경제는 재건 되야 합니다.

 이건 거론할 가치가 없는 절대 명제겠지요............ 지금 이 나라............이 불쌍하고....안타깝고....애증과 애욕이 교차하는 이 나라..

 이 나라 경제는 반드시 부활해야 합니다.

 포기 하고 자포자기 하기에는 이 나라는.....너무나 안타깝고.......지금도 박스를 주으면서...... 아니면 가스비가 밀려서 추위와 굶주림의 공포 속에서 사는 노인들과 젊은 애 아빠들.........애 엄마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반드시.........반드시 다....... 지금 이 나라에서 최상위....2% 가 말하는 예전 말 그대로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그 말로 치부하기에는........

 이 사회가.......이 나라가 다 끌고..데리고 가야 할 이 나라의 국민들이고 우리 이웃의 가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는 아직은....... 아직은 포기라는 단어는 너무나 사치 스러운 단어가 지금의 우리 현실입니다.

 다만......

 시간에 대한 잘못된 선택에 대한 그 결과라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대 자연과 인간 세상사의 당연한 순리.

 이제 시간적 선택에 대한 결과론적인 대가.... 대가라는걸 치룰 시간이 왔을 뿐입니다........

 다만............저는 그로 인한 그 고통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왜냐하면 그 추위와 배고품이라는 그 뼈에 새겨지는 가난의 공포라는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떄문입니다.

 한 겨울...... 창문으로 매서운... 살을 도려 내는 듯한 추위........ 굶주림..... 도저히 잠이 안 오는........ 잘 수가 없는..그래서 그 다음 날이 밝아 오는......

 그 기분과 심정이라는걸 이해 하는...단지 소설책에서 보는 활자로써의 감정적인 체험이 아닌...

 실제로 경험적인 그 생각조차 하기 싫은 가난의 공포와 뼈에 새겨지는 추위와 굶주림의 공포라는걸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이제 시작입니다.......... 그 시작의 스타트에 이제 여러분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서.......제발..........제발 그 희망의....... 사람이 사람으로써 살아 갈 수 있는 그 마지막....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 속여야 할 정도의 그 비참하고 참담함으로 부터 빠져 나와.....

 사람으로써의 존귀함고 고결함을 단지 종이와 잉크로 아로 세겨진 돈이라는 ...그 저주 받은쓰레기로부터 지키시길 바라며.....기도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술을 마시고 쓴 늙은이의 자기 푸념입니다......

 부디........부디......... 간절히 기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그리고............

 다시한번 사죄 합니다...... 죄송합니다...... 진짜로 죄송합니다................다시 말해도 죄송하다는 말 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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ؤرصة سيدة٠

ؤرصة سيدة٠ 

 2009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간 참 빠르네요.
블로깅을 시작한지도 오늘이 딱 한달째입니다. 겨우 한달이지만 즐거운 일도 많았고, 기분 상한일도 많았으며, 또 많이 배웠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학교 언론사 편집장을 하는 동안 글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알게된 저는 블로그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직접 블로그를 개설하는 것이 쉽지는 않더군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눈팅만 하다가 한달 전에 화현(직장동료?ㅋㅋ)님의 도움으로 티스토리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마침 디자인에 관심이 많던터라 아는 웹디자이너들에게 졸라서 마침내 내 머리속에 있던 디자인을 그대로 구현해내는데(블로그 상단 디자인) 성공했습니다ㅎㅎ 물론 모두가 제 디자인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만족했으니 된거죠ㅋ 그리고 블로그 개설된지 열흘만에 포스팅한 글이 다음블로거뉴스 베스트글이 되는 기쁨도 맛보았습니다. 역시 화현님의 도움을 받아 구글에드센스도 달아보고, 결국 다음 에드클릭스를 지금까지 달고 있습니다. 그렇게 블로그 만든지 2주만에 조회수 5만을 돌파하고, 파워블로거의 길은 순탄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저는 사소한 실수로 다음블로거뉴스 30일 발행정지가 되었고....
지금까지 다음블로거뉴스에 발행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다음블로거뉴스가 트래픽의 대다수를 몰아줬기 때문에 급격히 밑으로 떨어지는 그래프를 보면 한숨만...ㅠ_ ㅠ 그러나 그 동안의 애정 때문에 이 블로그를 버리진 못하고, 30일이 지나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중간에 테터캠프에 참여했던 일도 기억이 나네요. 테터툴즈나 텍스트큐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블로깅을 막 시작한 초보 블로거였지만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티스토리팀에서 발표하는 프로젝트 프로토스를 지금도 기대하고 있고, ck님의 강연 또한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2008년도  끝무렵에야 블로깅을 시작한지라 '2008 블로그 결산'과 같은 거창한 태그는 좀 부담스럽습니다만, 그래도 이벤트를 위해!ㅋㅋㅋㅋ
 2009년도에는 꼭 파워블로거가 될겁니다! 블로거 여러분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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